지금, 여기에서
지난봄, 남편은 파리 가족여행에서 돌아와 족저근막염을 앓게 되었고 여름이 되어도 통증은 여전했다.
더운 날씨, 많이 걷지 못하는 그와 나들이할 곳을 고민하다 삼양 해수욕장에 갔다. 집에서 멀지 않고 주차장이 해변과 가까우며, 지난달 미조 작가와 함께 가본 근사한 브런치카페가 근처에 있다.
올여름, 주말마다 육지 일정과 당직으로 바빠, 제주에 살면서도 바다에 가지 못했던 남편. 우리는 나란히 해변 벤치에 앉아 짙은 회색빛 모래가 파도에 흩어지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바람이 몸을 감싸자, 벤치 아래 그늘에 신발을 벗어두고 바다에 발을 담갔다.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우리 옆으로 수레에 서핑 보드 여러 개를 실은 강사와 중년의 부부, 갓 어른이 된 듯한 남자와 여자가 지나갔다. 수강생들끼리 고개를 돌려 서로를 보며 웃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니 가족인 듯했다.
뜨겁게 머무는 공기와 차갑게 간질이는 파도가 번갈아 발가락에 닿는 것을 느끼며,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섬 북부의 파도는 잔잔하고 바다는 여름 태양을 받아 빛났다. 이런 평화와 아름다움 속에서 성공적인 서핑을 할 수 있을까. 어느새 물속에 들어간 모녀와 부자는 한 편에 무리 지어 서고, 강사는 파도가 밀어주는 보드에 올라서 해안까지 수면을 타는 법을 선보였다.
이제 수강생들 차례. 젊은 남자가 먼저 보드 위에 엎드려 파도를 기다리고, 강사는 파도의 속도에 맞게 보드를 힘주어 밀었다. 파도에게 받은 보드의 관성력에 종아리 힘을 더해 일어나는 남자, 얕은 파도에도 그는 균형을 잡고 꽤 긴 거리를 버티었다.
다음 차례가 궁금해졌다. 우리 집이라면 나-남편-큰딸-작은딸의 순서로 도전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십오 년 전에 서핑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몸에 생긴 근육은 출산과 함께 상실했지만, 마음의 근력 같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 든 남자는 한창때인 아들에 비해 구부정한 몸과 나이 든 팔다리를 가졌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키워 낸 사람. 조금 비틀거리다, 일어서서 버텨냈다. 아들이 보여준 가능성에 힘입고 아직 해낼 수 있음을 가족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지탱한 두 다리. 일행이 환호하고 안경 뒤로 아버지의 두 눈은 가득 웃는다. 딸과 엄마가 차례대로 도전을 하고 그때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같은 편에 서서 도전을 응원하는 가족들.
보기 좋다, 남편이 말한다. 오래전, 엄마 아빠가 없는 곳에서 서핑을 할 때, 나는 잘 해내고 싶었다. 그만큼 두려웠다. 서핑 강사가 서비스로 찍어준 사진 속, 보드 위에 선 나의 얼굴은 긴장과 욕심으로 찡그리고 있었다. 친구가 사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후에야 나는 이완했다.
엄마, 아빠가 옆에 있어 주었다면. 먼저 도전한 오빠가 있어 주었다면. 한 편에 서서 나를 응원하고, 내가 넘어질 때 웃음을 터뜨려 줄 가족이 있었다면 사진 속의 내 표정은 더욱 맑고 환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훌쩍 커 넷이 함께 응원하며 서핑할 그날을 기대한다. 보기 좋게 올라타고 보기 좋게 허둥대다가 결국, 보기 좋게 넘어져도, 긴장과 실패와 찡그림마저 보기 좋게 웃어넘길 수 있는 그날을.
그러다 생각한다, 오늘도 보기 좋게 망치고, 틀리고, 쏟고, 깜빡해도, 아프다고 엄살을 부려도, 보기 좋게 웃어줘야지. 아이들이 훌쩍 크면 그리워할 그 장면이 오늘임을 기억하고 하루하루 가득 서로 보기 좋아야지.
아픈 발로 오래 걷지 못해 짧은 거리도 차를 타야 하는 남편을 보고 말한다. 오늘 보기 좋다. 우리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