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좋은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이미 그리워지는 음악 아닐까요.’
-루시드폴, 『모두가 듣는다』, 돌베개, 2023, p.127
제주의 뜨거운 태양과 바다를 머금은 바람,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오름의 억새와 눈부시게 푸른 하늘. 20대 초반, 여행을 와서 제주의 풍경을 마음으로 만난 후, 여러 해 동안 이 곳을 그리워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역시 서울 출신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으니, 나의 삶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도시 생활이리라 생각했다.
유년기, 영덕에 사시는 외할머니댁에 가서 여름을 보내곤 했다. 집 앞 개울에서 가재와 미꾸라지를 잡고, 옆집 외양간에 들러 소들을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밭에서 옥수수를 따 화덕에 굽거나, 오이를 씻어 그 자리에서 베어 먹었다. 어느 날 밤, 어른들의 대화에 끼기가 머쓱해 마당에 나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온통 검은 어둠 속에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생각의 입도 조용히 다문 채, 깊은 우주 속에서 하염 없어졌다. 처음 만난 그리움, 아름다움에 숨이 막히고 멀리 있음에 먹먹해지는 그 마음.
어른이 되자, 동해안 개발로 영덕 외갓댁의 모습도 많이 변하였고, 여러 어르신들은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거나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마음의 고향을 잃은 채, 주말마다 교외로 드라이브를 떠나거나, 휴가철 바다에 다녀오는 것으로 목마름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기간 제주에서 일하던 남편의 선배 분께서 은퇴하게 되셨다면서, 그 자리에 남편이 와줄 수 있는지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직장도, 살 곳도 옮겨 떠나보자는 큰 결심을 하루 만에 했다. 제주의 자연을 향한 십 년이 넘는 그리움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두 딸들에게 풍요로운 고향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제 제주도민이 된 지 5년 째, 제주의 편의시설이 부족해서, 자녀 교육의 선택권이 좁아서, 원가족과 멀리 있어서 불편하겠다고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편의시설의 부족은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지키기 위한 조건이며, 아이들과의 생활을 즐겁고 알차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가족인 나의 몫이고, 부모님과는 명절이나 생일에 만나 서로 감사하고 기특해하고 애틋할 수 있어 더욱 좋다. 무엇보다 이 섬의 신비로운 전설과 아름다운 풍경이 내게 준 영감은 내 삶을 정말로 살아있게 했으므로,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의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제주에 살며 나는 아직도 제주가 그립다. 한 때 멀리 있던 사랑이라 그 마음을 떠올리며 그립고, 아직은 건강하신 부모님을 떠올리다가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슬픔이 드리우면 언젠가는 이 섬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그리워진다.
우리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매일 만나는 풍경을 매일 새롭게 볼 수 있다. 매 순간 달라질 나와 그들, 내가 만날 수 있는 오늘의 풍경들. 순간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영원한 그리움이 될 것이다.
내 눈에 담고 내 손에 쥔 살아있는 것들. 변하는 것들. 멀리 있지 않아도, 떠나오지 않아도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기꺼이 그리워 할 줄 알게 된 ‘그리움 력(力)’. 나의 삼 십 대, 제주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