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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지 않기를

우리는 끝을 알고 있다.

by 차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 벨라는 성인의 몸을 통해 눈을 뜬 신생아다. 그녀는 신체 발달과 정신 발달 사이의 불균형, 세상의 질서에 대한 무지로 인해 어색하고 가여운 존재였다가,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난 후, 욕망으로 고통받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여워하는 존재가 된다.


지난 밤 남편과 모처럼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곁에서 잠들었다가, 새벽 전화 벨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통화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놀라고 떨렸다. 잠이 달아난 자리에,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은 소식이 전해졌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늘 정신이 맑고 건강하셨던 시아버님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지셨고 심정지가 와서 응급처치를 시도하였다고 했다. 폐와 주변 부위에 출혈이 심해 긴급 수술을 진행하였고 이후,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으시단다.

아버님은 늘 젊잖으셨고, 나와 딸들을 볼 때면 염치를 잘 아는 데서 오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너무나 신사적이신 아버님이어서, 나는 ‘저는 아버님이 좋아요.’라고 적극적인 사랑을 생신카드에 담아 표현하고, 딸들에게 할아버지께 먼저 다가서도록 독려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서로를 어려워하면서도 기꺼이 호감을 표현하는 관계였고, 나는 남자 시어른과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이 정답이라 여겼다.


의도적인 거리두기 때문인지 나는 아버님을 잘 모른다. 긴 대화를 나눠 보지 못했고, 제주에 오고서는 일년에 두 번, 명절 때만 뵈었다. 그럼에도 아버님의 위독함을 안 나는 순간 온 몸이 차가워지며 어지러웠다. 곧 섬망이 보여 베개 위에 쓰러져 누웠다가 나에게도 엄청나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남편의 마음은 어떨지,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겠다 싶어 얼른 일어나 항공사 어플을 켰다.


마침 여름 극성수기의 일요일이어서 육지로 향하는 항공권은 모두 매진이었다. 지역 까페를 검색하여, 새벽에 항공사 데스크가 열리면 현장 대기표를 구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곧 출발해야할 남편을 욕실로 보내고, 든든하면서도 소화가 잘 될 듯한 황태 미역국을 끓였다. 대단한 메뉴도 아닌데, 힘든 맘으로 집을 떠날 남편에게 해 줄 음식 재료가 지금 집에 있는 것이 감사했다.

일주일 간 휴가를 쓰고 육지에 올라가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급하게 짐을 꾸리다 어떤 옷을 입고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는 남편의 모습.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비하면서도 가까스로 희망의 끈을 쥐고 있는 위태로운 그 마음을 함께 느끼며 나도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처절한 마음이 나보다 더할 그를 위로해야지, 각성하며 한 발짝 물러서 울음을 참았다.

항상 곁에 있겠다는 말로 애써 웃으며 남편에게 인사를 전하고, 곧 해맑게 일어난 아이들에게 간단히 슬픈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가 저절로 흘러 나왔다.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말.


생사의 강에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전기충격과 삽관, 개복, 투석, 온갖 힘든 일을 감내하고 계실 아버님께 죄송한 맘으로, 나는 남겨질 우리를 위한 기도를 했다. 늘 현재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한 사람을 가까이 두자고 쉽게 말을 내뱉고는, 아버님이 늘 우리 곁에 계실 것처럼 멀리 두고 지내온 우리. 서로를 바라보며 후회 없이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아버님,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세요, 염치도 없이 간절하게 청했다.

새벽 5시에 열리는 공항에서는 이미 남편 앞에 대기자 열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몇 시간 째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는 남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저려왔다. 오늘 올라가기 힘들겠다고 풀 죽은 목소리를 전해 오던 끝에, 열한시 쯤 남편은 표를 구했다고 했다. “오늘 아버님 뵐 수 있겠네! 너무 기쁜데... 너무 슬퍼.”


서울에 갈 때마다 다른 일정으로 바빠 어른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우리. 그 많던 비수기의 항공권과 여유로운 주말들. 함께 걷지도, 대화를 나누지도 못할 아버님조차도 이렇게 힘들게 뵈어야 하는 오늘이 오기 전, 건강한 아버님과 함께할 그 쉬운 기회들을 외면하며 우리는 무엇을 했나.

아버님의 신사다움과 수줍음을 아는 나는, 아버님이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오셨는 지, 은퇴 후에 서예와 독서를 하시며 삶을 당당히 즐기셨음을 알고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길목에서 당신의 삶에 대해 결코 억울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을 아버님 앞에 다만 가여운 것은 남겨질 우리다.


나의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소중한 사람의 죽음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살아가다 결국엔 스스로 남겨진 자가 되는. 어쩌면 늦어버린 마음들을 만약이라는 말에 가두며 이제 와서 겨우 죽음을 기억해내는 가여운 우리에게 남겨진 기회를 늦게나마 애써 지키려 한다.

사랑의 대상은 영원히 내 곁에 있지 않고, 소중한 순간은 변하고 마는 것을, 끝을 알기에 더욱 소중한 지금을 잊지 않기를, 앞으로도 세상을 여행할 내가 더 이상은 가엾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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