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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Feb 05. 2023

초를 태우고 불꽃을 옮기다.

세상에 나온 나의 아이에게

작년 초 문을 연 우리 동네 책방에서 한 달에 한번 주말 독서 모임이 있다. 시간 특성상 성별과 나이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이야기의 흐름이 예측 불가하고 서로 다른 입장과 시각에서 본 세상을 나눌 수 있어 흥미진진하다. 지난달에는 신형철 님의 신간을 읽었는데 특히 상대를 사랑, 혹은 필요로 하는 관계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에필로그가 화제였다. 사랑과 필요가 엇갈리며 유지되는 관계라면 역시 부모와 자녀간이라, 이야기가 그리로 흘렀다. 책모임에 참여한 분 중 신혼 생활 중인 여자분은 요즘, 아이를 가질 것인지 혹은 2인 가족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 중이라고 하며 나를 비롯한 자녀가 있는 참여자에게 아이를 왜 낳기로 결심했는 지를 물어왔다. 남편과 나를 닮은 2세를 갖고 싶은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니까, 둘만 살기에는 재미가 덜해서,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동경해서 등 대답은 각기 다르면서도 그럴듯했지만 또한 그 모든 대답들이 석연치 않았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내는 일이란 여전히 녹록지 않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르는 세상도 아니며, 무엇보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 개체수의 기하급수적 증가가 야기한 환경 파괴로 지구 생태계 전반이 위협받고 있는 시점에서 또 다른 생산은 그만큼 비장한 목적이 아니고서는 권장하기 어려워 보였다. 집에 돌아와 여느 때처럼 아이들과 아름다운 시를 읽고 소박한 저녁 식사를 나누어 먹은 후 통통한 두 발등과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머리칼을 씻기었다. 그러는 동안 나와 남편이 아이를 낳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 종일 떠올리고 골똘히 생각했다.


두 아이에게 팔 베개를 하고 이부자리에 누운 나는 초가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몸과 맘이 쉽게 파이고 부러졌지만 내 부모는 자신의 몸을 태우는 불꽃으로 내 맘을 녹이고 붙여 크고 단단한 초가 되도록 나를 키웠다. 나는 자라며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색과 투명도를 지니고 무슨 종류의 향을 내는지. 곧이어 궁금해졌다. 불꽃으로 타오를 때 나는 어떤 색이며 얼마나 주변을 환하게 하는지. 나와 함께 은근하고도 충분한 불꽃을 만들어 서로를 밝힐 사람을 찾아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내 사랑의 빛깔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알았다. 우리의 뜨거움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녹일 차례라는 것을. 그동안 소스라치게 데일만큼 뜨거운 사랑이 나를 키웠음을. 이제 주변을 조금 밝혀내고 촛농이 되어 사라질 운명을 앞두었으니, 나를 닮았으나 전혀 새로운 향을 가진 초에게 불꽃을 옮겨 세상을 밝혀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새로 태어난 초는 심지가 짧아 불꽃을 옮기기 어려웠고 작은 불꽃은 금세 꺼지기 일쑤라 늘 눈길과 돌봄이 필요했다. 이제 어느 정도 자라 제 몫의 불꽃을 자그마하게 태워내는 것을 보며 우리는 두려워진다. 언젠가 네 불꽃이 꺼질 때, 네 몸과 마음이 부러질 때 우리가 다 타버리지 않고 네 곁을 지킬 수 있을까. 너를 녹여 다시 살게 하고 불꽃을 옮겨 줄 수 있을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라 마지못해 나를 대신할 세상을 믿어보기로 한다. 내가 네 곁에 없는 어느 날 따스하고 향기로운 초하나가 네게로 와서 온기와 불꽃을 나누어 줄 거라고. 그런 생각을 붙잡고 하루를 보내면 우연히 마주치는 모르는 초하나, 불 꺼지고 부러진 초하나도 모르는 초가 아닌 것이 되어 얼른 다가가 온기를 나누고 불꽃을 옮겨주게 된다고.

그것이 내가 아이를 낳은 이유라고 용기 내어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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