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최고의 장난감

포르투갈 시골 일기 23 - 일상, 여름, 흙장난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7월 말, 알비토 도착.

(동티모르에서 포르투갈까지, 다시 리스본에서 알비토까지,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총 30시간 정도가 걸렸다)

오후 6시에 도착. 긴 비행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다들 다음날 새벽 5시 조금 넘은 시각에 일어났다.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 같고 분명 피곤한데,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 - 시차 상태 특유의 쨍쨍한 피곤함.

다들 누워 있어 봐야 잠을 더 잘 수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일찌감치 산책을 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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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서히 떠오를 무렵, 오렌지 나무 과수원과 올리브나무 밭, 나무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또렷해지고...

사람을 알아본 양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매일 먹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분명 아닌데, 웬 어른 둘에, 아가 둘이냐? 먹이를 주려나 안 주려나? 하면서 슬금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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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과수원 울타리 쪽으로는 분홍색 야생 장미가 쨍하게 피었다.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새벽녘 색감 속에서, 장미만 어찌나 생생하게 도드라지는지.

한 송이를 따서 루이지냐에게 보여주고, 내 머리에 꽂았다. 신랑 말로는, 이 야생 장미로 몇 년 전에 리큐르를 만들었는데, 다른 허브나 레몬이나 과일 리큐르를 통틀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단다. 신기하게 처음 땄을 때보다 점점 더 향이 진해진다.


20171113_233652.jpg 장미 리큐르는 이미 동이 났고, 레몬, 자두, 체리 등등의 리큐르가 남아 있는데,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허브 리큐르! (페니로얄 이라는 허브로 만들었다고.)



오렌지 과수원, 올리브나무 밭, 목초지를 돌고 텃밭 쪽으로 나오니 해가 완전히 떴다.

아침을 먹고 다시 산책하러!

헤롱헤롱대는 어른들과는 달리, 보배는 긴 여행이 힘들지도 않은지,

집 현관 바로 옆, 조그만 흙더미에 완전 신이 났다.

물탱크 끝쪽을 마감하는 작업을 최근에 했는데, 그때 쓰고 남은 모래가 아직 쌓여있던 것.


흙, 모래가 그렇게 좋을까.

조물락 조물락,

찔러보고, 쥐어 보고, 던져 보고,

혼자서 종알종알하면서 흙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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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노는 것을 보니, 흙장난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장난감 불도저를 가지고 나와 옮기는 공사장 놀이?, 집짓기 놀이, 소꿉장난 그릇에다가 담아내는 요리 놀이, 이리저리 휘젓고 파보기, 여기저기로 옮겨보기 등등 별별 것을 다할 수 있으니 말이다. 주위에 죄다 흙이고 돌이고 풀이니 걸릴 것이 없다.

집에서 놀 때의 제약도 하나 없다. 막 던져도 되고, 쏟아도 되고, 흘려도 되고, 더럽혀도 된다.

한여름 포르투갈 남부 시골 날씨는 기저귀 하나만 딱 차고 놀아도 되니 무척 편하기도 하다.

모래더미 하나만 있어도 쉽게 질리지 않고 놀겠다.


자갈 역시 마찬가지.

텃밭 가는 길과 잔디밭 옆에 깔려있는 자갈은 또 얼마나 좋은 장난감인지.

장난감 트럭 뒤에 실었다가, 쌓기 놀이를 했다가, 장난감 위에 가득 쌓아보다가...

모래와 자갈만으로 놀 거리가 무궁무진이다.


휴가 후, 흙이나 돌을 볼 일이 잘 없는 도시로 다시 돌아가면 우리 보배, 많이 심심해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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