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길에 들리는 사이

포르투갈 시골 일기 31 - 일상, 이웃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2019. 8


아직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의 아침엔 정원일을 한다.

(물론 아침 먹고, 산책 느긋이 하고, 동물가족들 먹이 주고 난 다음의 일!)

꽤 중노동!

오래되고 시든 잎들을 잘라내고, 너무 웃자란 가지들을 자른다. 정원 가위를 들고 힘을 주어 잘라내다 보면 손목과 손가락 마디가 꽤 아파온다. 그나마 아이가 하나일 때는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은 아이들을 보고, 한 명은 쉬엄쉬엄 정원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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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는 이제 알아서 흙장난, 돌 장난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지만, 그래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집 뒤 잔디밭이나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곳에는 항상 말벌들이 웅웅대기 때문에 행여나 실수로 근처에 가기라도 하면 큰 일. 주의해야 한다. 루이지냐는 선베드 위에 눕혀 놓으면 혼자 나무랑 하늘을 보면서 옹알옹알하며 발차기를 하지만, 혹시나 갑작스럽게 뒤집을 수도 있으니 봐줘야 한다. 게다가 계속 맴도는 파리와 모기 같은 벌레들을 쫓아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상은 무척 평화롭다 - 신랑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정원 일하는 것, 보배가 혼자 뭐라고 열심히 이야기를 하면서 흙장난하는 것을 나무 그늘 아래서 지켜본다. 루이지냐와는 계속 눈을 맞추면서 서로 웃어준다.

이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무척 잘도 간다.


정원일 후엔 아이방 옷장 정리.

구석에 오래 쌓아 놓은 옷들을 정리해야지 하고 옷장 문을 활짝 열었는데, 신랑 할아버지의 오래된 정장이 나왔다. 딱딱하고 높은 모자까지.

침대 시트를 보관한 서랍에는 몇십 년 전 손자수로 만든 침대 시트들도 고이 개켜져 있다. 신랑의 할머니께서 손자수를 놓으신 시트들이다. 무척 오래되어서 하얀 면 천은 색이 바랬지만, 단순하고 섬세한 꽃무늬 자수가 예뻐서 아직까지도 올 때마다 감사하면서 꺼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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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한 숨 잔 후에는, 새로 사 온 대형 튜브 시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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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탱크에 띄워놓고 올라탔는데, 보배는 아빠 등에, 새끼 거북이, 아니면 코알라처럼 찰싹 붙어서 떠 간다.

마음에 드는 눈치다.

저녁 해가 질 무렵에는 파프리카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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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란 놈으로 한 10개 정도를 땄다. 피클을 만들어야지.


밤 9 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는 샤워를 하고, 신랑은 보배를 재우는데, 밖에 누가 온 소리가 들린다.

신랑의 오랜 친구 떼쥬.

직장 업무를 마친 후 (떼쥬는 공무원이다), 텃밭에 가서 농장일을 하다가 집에 가는 길에 들린 거라고.

첫 해, 둘째 해까지는 이런 방식이 무척 낯설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 친구들끼리 서로 연락을 따로 하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 들려서 인사하는 방식.

들르는 사람도, 집에 있는 사람도 은근 별로 부담이 없다.

커피 한 잔, 혹은 와인 한 잔을 놓고 몇 시간씩 이야기할 때도 있고, 10분, 20분 간단한 인사만 하고 헤어질 때도 있다. 들렀는데 집이 빈 것 같으면, 그냥 으쓱하고 다음에 또 오지 뭐~ 하고 만다.

그야말로 '지나는 길에 들렸어요~~!'

내가 살던 서울에서는, 서로 미리 약속을 정하고, 적당한 밥집을 찾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한 잔 하고 등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도시에선 나도 친구들도 다들 왠지 바쁘다. 미리 정하지 않으면 만나기도 쉽지 않다), 여기선 무척 다르다.

시골생활이 주는 느슨함과 여유 때문이기도 하고, 평생 보고 알아온 관계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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