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이 제일 좋아 보일 때

포르투갈 시골 일기 40 - 일상, 마실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2019.8


새벽 6시 30분 조금 전.

시댁에 아이들을 맡기고 신랑과 둘이 리스본에 마실 가기로 한 날.

"아침 8시 40분에 알비토에서 떠나는 기차를 타려면?

일어나 아이들 먹이고 옷 입히고, 우리도 씻고 준비하고, 아이들 가방을 정리한 후 시댁에 아이들 맡겨놓고 기차역으로 가야 해. 그러려면 늦어도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해!"라며 알람을 맞췄었다.

오랜만의 대도시 나들이 생각으로 흥분했는지, 아이들을 하루 종일 맡긴다는 생각에 긴장했는지, 아니면 둘 다 인지, 잠을 좀 설치다가, 알람 시간 전에 눈이 떠졌다.

그때부터 정말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무척 빠듯하다. 게다가 신랑은 이럴 때 보면 한없이 느긋하다. 나만 종종 거리는 거 같아, 괜스레 한 번 성질 빽 낸 후, 출발!


다행히 기차역에 여유 있게 도착. 15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탔다.

허허벌판에 덩그머니, 역사도 없이 표지판만 붙어있는 알비토역에서 4~5칸짜리 기차를 타고, 까사 브랑카Casa Branca까지 30분 정도를 천천히 달린다. 내리면 바로 건너편 플랫폼에서 리스본행 기차를 탄다. 아이들이 없으니 완전 여유가 있다 못해 허전할 지경이다. 둘 다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호사를 누리며 리스본 도착.

세뜨 리오쉬Sete Rios 역에 내려, 에스프레소 한 잔을 후딱 마신 후, 볼트Bolt로 차량 호출.

볼트는 처음 써 봤는데, 편하다 - 카톡 택시처럼 목적지를 주소나 지도나 검색으로 지정할 수 있고, 차량 배정도 무척 빨리 된다. 신용카드로 연동해서 자동 결제되는 것도 편하다. 사전에 뜨는 예상금액 대로만 지불하면 되니 그것도 좋다.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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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적지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식물원 근처의 포르투갈 올리브 오일 전문 가게.

작지만 알찬 가게로, 주인장님의 설명이 열정적이고 재미났다. 실컷 구경하고 설명도 듣고, 올리브 오일과 스프레드까지 구매 완료하고 나니 정오가 다 되었다.

식물원 옆길을 따라 제로니무스 수도원까지 걸어 내려오는데, 옹기종기 주르륵 이웃한 집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리스본 중심가의 다닥다닥하고 정겨운 느낌과는 또 다른, 좀 더 널찍하고 조용한 주택들이다. 리스본 중심가 집들은, 무슨 냄새나 소리가 언제든지 날 것 같다 - 이웃 간의 수다, 개 짖는 소리, 누군가 틀어놓은 TV 소리가 들리고, 음식 하는 냄새와 빨랫줄에 널기 전의 갓 한 빨래 냄새가 날 것 같은 느낌.

반면, 이 지역은 좀 다른 느낌이다. 산책 나서는 노부인과 애완견이 나오고 들어가거나, 우체부가 오고 갈 때를 빼고는 항상 나른하고 조용한 오후 3시의 느낌인 것만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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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걸어 제로니무스 수도원 도착.

정면과 광장의 많은 관광객들을 흘끗 구경한 후, 그 유명하다는 벨렘 에그타르트 가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줄이 정말 길긴 길다. 호기심은 좀 생겼지만, 에그타르트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 데다가,

"여기? 맛있지. 맛있긴 한데... 다른데도 웬만큼 맛있어."

라는 신랑의 말에 동의하는 바, 바로 다시 볼트를 타고 점심 먹으러!


자유로Avenida da Liberdade 뒷골목, Goa 음식을 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고아는 인도의 한 지역으로, 마카우나 동티모르처럼 포르투갈의 과거 아시아 식민지였던 곳. 그래서 포르투갈과 자체적인 고유의 문화가 여러모로 섞인 곳이라고. 음식 역시 그렇단다.

포르투갈 가정식이야 매일 먹는 것이니, 뭔가 수도 리스본에서만 먹을 수 있는 데로 가보자라고 이야기하다가, 이전에 같이 본 적이 있는 Somebody feed Phil의 리스본 편에 나온 식당으로 결정했다.

한 번에 16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무척 조그만 식당인데, 재미나고 화려한 스타일의 벽화로 답답한 느낌이 별로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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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가 들은 사모사를 전채로 먹고

(뜨겁고 양념 가득한 것이 맛있었다),

버섯과 밤 카레,

(오, 버섯은 그렇다고 치는데, 밤이라니! 하면서 시켜봤는데 생각보다 조화가 괜찮았음!),

돼지고기 각종 부위 카레, 코코넛과 고수 쳐트니, achar (일종의 피클)을 시켰다.

모두 모두 향신료 풍미 가득!

향신료를 좋아하는 우리는 만족.

당연히 와인을 곁들여 폭풍 수다를 떨며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 완료.

("어머, 루이지냐 응가하나 봐."

"그래? 기저귀 줘 봐 봐. 화장실 어디지?"

"보배, 왜 그래? 뽀로로가 안 나와?"

"보배야, 턱받이가 비뚤어졌네. 이렇게 해야지"

등등의 상황 속에서도 나름 정신줄을 놓지 않고, 대화를 해가며 식사하는 우리지만...

이런 상황 없이 오롯이 둘 만의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음식과 대화의 밀도가 높아지고, 와인이 더 맛있게 넘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점심을 먹고, 리베르다드에서 호시우쪽으로 걸어 내려와, 시아두 역까지 오면서 쇼핑을 했는데, 어찌나 관광객이 많은지!

호시우와 시아두의 번화가 골목은 관광객과 공연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 와,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사람들에게 치여보는구나 싶었다.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시아두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에도 사람들 한 가득!

Sete Rios역에 내리니 퇴근시간이 되어서 그런가 여기도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내 몸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는 땀냄새와 온갖 냄새들, 끈적거리는 더위에 불쾌지수 완전 상승!

게다가 또 기차는 30분 연착.

(하지만 중간에 기관사 아저씨가 속력을 좀 내셨는지 도착 시각은 10분만 늦었음.

나름 임기응변에 강한 포르투갈 기차 운영 속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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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 알비토역에 딱 도착해서 내리는데 너무너무 상쾌했다.

시댁으로 바로 가서 반가워하는 아이들을 안으니 또 얼마나 좋은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 같이 과수원과 올리브 밭쪽으로 산책을 나가니 또 얼마나 좋은지 - 이제 막 지는 해를 보고, 양이 매매 거리는 소리를 듣고, 바람을 느끼고, 건초 냄새를 맡으니 또 얼마나 좋은지.


여기에 집이 있어서 다행이야! 했더니,

신랑 왈,

자기가 옛날에 리스본에서 일하던 시절, 금요일 저녁 퇴근 후면, 바로 알비토로 운전해 내려와 주말을 지내다 갔단다.

"... 그때 말이지, 리스본을 벗어나는 순간, 백미러로 보이는 뒤로 멀어지는 리스본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스본의 모습이었어 - 아, 이제 리스본을 떠나는구나!라고 좋아했지"라는 것이, 천상 시골 사람인 신랑의 말.

아, 오늘 같은 날은 완전 공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시적인 풍경의 리스본, 기차를 타고 리스본에 갈 때 다리 위에서 보이는 리스본,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보는 리스본, 늦은 오후의 알파마나 그라사 등등, 내가 좋아하는 리스본의 여러 모습과 풍경들이 있긴 하다. 모두 나름대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풍경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내게 리스본이 제일 좋아 보일 때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는 순간이다 - 시골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개와 고양이, 양과 돼지, 꽃과 나무들, 그 냄새와 결을 곧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면서 감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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