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디페렌테'(다른 삶) 01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일하게 된 동네, 로스팔로스에 처음 와 2달 정도 지났을 때 일이다. (2013년 8월)
수도 딜리에서 TV를 사 왔는데, 설치작업이 만만치 않다.
- TV와 같이 사온, 무지막지한 사이즈의 위성접시 안테나 (이것이 없으면 TV 채널을 잡을 수 없다. 대략 지름 1.5m 정도) 설치를 우선 해야 한다. 일단 땅을 판 후, 안테나의 기둥을 묻은 다음 시멘트를 부어 굳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성접시 안테나를 도난당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안테나 설치가 끝나면, 무슨 부속장치 같은 것을 조립한다. 그러고 나서, 채널을 탐색해 잡는 작업이 이어진다. 이 작업을 위해선 2인 1조가 필요하다. 한 명은 실내에서 셋톱박스를 만지고, 한 명은 밖에서 같이 동시다발적으로 접시 안테나를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시멘트 단계 설명에서 K와 나는, 파랗게 질렸다 - 딜리에서 TV만 사 오면 간단할 줄 알았더니! 그냥 방에 놓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복잡하고 힘이 들어가는 작업이니, 현지 직원분께 지인을 소개받아 작업비를 드리고 부탁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해서 마웅 줄리오께, 이러이러한데 아는 사람을 소개해 주실 수 있느냐, 여기 시세를 모르는데 작업비는 얼마 정도 드리면 좋겠냐 하니, 마웅 줄리오 표정이 영 안 좋게 변한다.
평소와는 달리, 대답도 하시는 둥 마는 둥~
'왜 그걸 남에게 시키냐'는 말을 하시는데...
우리가 뭘 실수했나 싶은데, 알 수가 있나!
뜨뜻미지근한 대화가 몇 번 오고 간 후,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것 같아 터놓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 마웅 줄리오께서는 좀 섭섭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직장동료, 게다가 어쨌거나 상사인 내가 직원에게, '어이, 누구누구 씨~ 우리 집 일손이 필요한데 좀 도와줘'라고 개인적 업무를 부탁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소위 '꼰대질' (번역이 어려워 대충, '힘을 남용하는 옳지 않은 일이다~'정도로... 도착 2개월 테툰어 수준에서 '꼰대질'같은 고급어를 번역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직장 동료가 아닌) 다른 분에게 일을 부탁하고 돈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다, 정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 마웅 줄리오께서 해주셔도 되는데, 그래도 돈은 드리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일이 너무 많다!"
라고 안 되는 테툰어, 간혹 한국어 (K 통역), 손짓, 영어를 다 섞어서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좀 수줍어하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신다.
(***사실 점잖게 표현하느라 "예의에 어긋난다"라고 했지만, 완전 세상 갑질 아닌가!
상사가 직원에게, 우리 집 TV 달아야 하는데... 와서 땅도 파고, 기둥도 묻고, 시멘트도 굳히고 해 줘..라고 얘기를 하다니~~!!! 큰일 날 일이다.)
마웅 줄리오 왈,
"마나가 말한 부분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일단 마나 (*여자에 붙이는 존칭. 당시 우리 한국인 3명을 지칭)들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이 섭섭하다. 왜 우리 직원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가? 그리고 내가 일이 많을 때는 물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일이 바쁘지 않은 시간에 마나들을 위해서 일 해주는 것은 친구를 위해 일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난 절대 돈을 받은 적이 없고, 받을 수 없다.
옳지 않다. 그러니 우리 직원들이 일을 도와주는 것이 맞다."
대충 대화의 요지가 이러했는데,
어허 참~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K 말을 들어보니 이전에도 비슷한 맥락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집의 갤런 물통 (*생활용수 용도로 쓰는 물. 18kg 정도 나가는데, 당연히 혼자 들기에는 제법 무겁다)을, 대략 2주 1회에 정기적으로 리필해서 가게에서 들고 온다. 1회에 10개 정도를 리필하기에, 가게에 돈을 좀 더 주고 배달을 시키려고 한다, 얼마 정도 더 줘야 하는 것이 적당하냐 라고 물어보니,
마웅 페드로께서 아주 정색을 하면서,
그런 건 우리가 도와주면 되지, 왜 돈을 더 쓰냐, 그리고 그렇게 하면 가게 사람들이 우리를 욕한다
(동료인데, 게다가 외국인 동료인데 제대로 돕지 않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취지로 이해함),
우리가 당연히 도와주면 되는 일이다 라고 하셨다고.
애매한 듯하면서도 무슨 이야기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 한국 직원 셋이 다 현지에 가족과 연고라고는 없는, 말도 안 통하는 (우리는 다 공용어인 테툰어만 할 수 있는데, 로스팔로스는 동티모르 각 지역별 20개 정도 되는 방언 중 하나인 파탈루꾸어를 모어로 하고, 테툰어는 학교나 관청에서만 쓰는 편이다) 외국인이기에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기 때문에 도와주어야 한다는 차원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옛날/농촌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랬겠지만, 여기선 씨족-친족 중심 마을 커뮤니티 중심으로 서로 쫀쫀한 관계를 유지한다. 내가 어려울 땐 같이 도움을 받고, 마찬가지로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땐 나 역시 도움을 주고 하는 일이 꽤 보편적이다.
게다가 그 커뮤니티라는 것의 범주가 우리나라의 직계가족이나 친한 친척들보다는 좀 더 범위가 확장된다
- 비록 직장동료이긴 하지만, 서로 정을 주고받으면서 개인적인 일도 도움이 필요하면 그냥 같이 해 줄 수도 있는 것,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또 반대로 도움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그런 사이에서 서로 “당연한 부분”을, 잘 모르는 남을 불러 돈을 주고 시킨다 라는 것에 대해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 “그럼 너와 나는 같은 커뮤니티가 아니냐, 우리가 남이냐?”라는 정서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나의 직장상사가 나한테, 퇴근하고 우리 집 와서 안테나 설치하는 것 좀 도와줄래?라고 한다면, "어허허~ 거 참~~~ 뭐라고요?"라고 하거나, 직장 내 고충센터나 직장 갑질 119에 올리거나 하겠지...
그리고 아마 요즘엔, 여전히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겠지만, 점점 더 갑질을 의식하고 바꿔나가자 하는 부분이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는 측면도 있으리라.
특히 이 정도 일이라면, 너무나도 명백한 갑질인데, 나에게는!
라고 해도, 마웅 줄리오 께서는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웃으면서, 서로 문화가 다르다 라고 이야기하며 화기애애하게 마무리했다. TV 설치는 결국, 그냥 마웅 줄리오께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대신 우리가 나중에 선물을 하는 것으로 합시다 라고 K와 이야기했다. 돈은 받지 않으실 테니.
고마우면서도 무언가 따뜻하긴 한데, 참 이렇게 미묘하게 하지만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공적인 관계, 특히 상하관계를 이용해서 개인적 부탁을 하는 것의 위험성과 부당함을 조심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동시에 남발이라던가, 악용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항상 일방적으로, 주로 윗사람의 갑질이나 권력남용 형태로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함정!)
전자가 극으로 간다면 부패나 추태는 없겠지만,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차가운 기계 같은 느낌의 사회생활이 될 거고,
후자가 극으로 간다면 직장이나 개인 생활이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불편해질 수도 있고, 특히 약자에게 불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선 그 “공적과 사적인 부분의 경계”라는 것이, 내가 직장생활을 8년 동안 했던 서울에서보단 훨씬 더 애매모호하다. 당연히 이곳의 구성원들은 그에 대해 별로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 듯하다. 좋게 말하면 덜 빡빡하고 정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우리 사이에 뭘”이라는 일들이 (내게 익숙한 수준 대비) 좀 많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그 전주에 있었던 옆집과의 일도 비슷하다.
우리 집은 집 앞마당의 우물에서 발전기로 물을 끌어와 집 수도에 연결해 쓰고 있다. 우물서부터 나온 물 연결관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발전기는 돌아가는 데 집안 수도에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해서 손재주 좋은 옆집 랜디 아빠에게 좀 봐주실 수 있느냐 했더니, 미안할 정도로 혼자서 끙끙대며 고치려고 애를 쓴다. 서울 기준으로는 출장비 드려야 할 것 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어찌어찌 다시 물이 나오게 되었다. 돈 드리겠다니, 안 받으신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반대일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우리는 이웃이니깐, (당연히) 서로서로 간에 나눌 수 있다!"가 양쪽에 다 해당된다는 말.
우리의 어려운 부분을 그때그때 잘 봐주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리 집 수도 물 연결관에 구멍을 내어 물을 받아서 쓰신다. (랜디네 집은 수도나 우물이 없다 - 공용 우물에서 길어다 쓴다) 물론 우리는 어쨌거나 우물과 수도가 있고, 우리가 출근이나 출장으로 집에 없어 물이 필요하지 않은 때에는, 랜디네가 써도 된다.
내가 당황했던 부분은, 왜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것! 평소 오고 가며 건네는 인사들과 대화를 생각해 볼 때, 경우 없거나 이상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뭐지?!
좀 더 생각해보니... 랜디네에게 “그 정도는 그냥 말 안 해도 이웃끼리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조금 뚫어서 물을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저 집에선 그대로 물을 쓸 수 있으니, 이웃끼리인 우리가 그냥 써도 되겠지. 정도가 아닐까.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무언가 쉬쉬할 텐데 그런 기색 없이,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대놓고 구멍 뚫어서 쓰는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우리 사이에 그냥 이 정도는”이란 게 아닐까.
해서...
이래저래 공평하다.
상대방에게 내가 송구스러울 정도의 친절을 받아서 뭉클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시에, 내가 자라오고 경험한 기준에서는 다소 어리둥절하고 황당하고 불편한 일, 훅~ 내 공간을 치고 들어오는 일도 같이 겪게 된다.
이런 “우리 사이”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참 극적이다.
서로 간에 항상 적당한 거리를 뚝뚝 잘 지키는 곳에서는 예의 바르게,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내 영역과 너의 영역은 항상 잘 구분을 지어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내게 된다. 상호작용 역시, 정해진 영역과 범위에서만 이루어지는 편이고, 그래서 단정하고 거의 예측 가능하다.
“우리 편”으로 정해진 범위가 넓고 쫀쫀한 곳에서는 그런 단정하고 예의 바른 것은 상대적으로 좀 덜한 대신, 무언가 애매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하면서,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는 경험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