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세계의 아이들 09
주로 아이들과 놀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을 조금씩 이어 붙였습니다. 그러다 보면 희한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들은 소소한 이야깃거리나, 뉴스에서 보는 현실의 이야깃거리들도 같이 달라붙었습니다. 이야기들이 점점 더 머릿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소위 '저 세상' 존재들은 왜 우리 옆에 있으려고 하는 걸까?'와 같은 단순한 질문에서 가지치기를 한 머릿속 상상은 자꾸 커져서, 나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두리뭉실 덩어리였는데, 자꾸 이런저런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그 모양새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모험도 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한 번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첫째가 8년 후쯤에는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꼬리표를 붙이자면 '아동 판타지 소설'이 되겠지만, 엄마인 어른의 입장에서 던져보고 싶은 현실의 문제들, 어른의 문제들도 같이 들어 있습니다.
아마님은 보비가 목격한 일을 상세하게 올리 씨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올리 씨는 역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웃음기를 거두고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이 되어 열심히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올리 씨는 말이 없었다. 셋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차를 마셨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마침내 올리 씨가 말을 꺼냈다.
“이상한 일이네요. 거기엔 캅투 씨 말곤 아무도 없는데. 보비가 들은 건 여러 명의 비명소리였다고 했잖아요. 게다가 지난번, 제가 역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이랑 너무 비슷해요. 그때도 위층에서 펑하는 소리,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고 비명소리가 들렸거든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러게요.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겠죠.”
아마님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얼굴은 딱딱히 굳은 채였다.
“캅투 씨는 알고 있을 겁니다. 그때 저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는데, 다들 놀랐거든요. 그리고 캅투 씨가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전기 합선 때문에 뭐가 터졌다고 했어요. 오래된 집이라서 문제가 많다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리고 어찌나 안절부절못하던지. 평소엔 그렇게 냉정한 사람이 말입니다. 누구라도 캅투 씨가 뭔가 무척 당황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데다가, 기차가 오는 바람에 다들 그냥 으쓱하고 말았죠. 돌아오는 날에는 혹시 뭘 더 알아챌 수 있을까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요. 평소처럼 조용했죠.”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이 잠시 가만있다가, 올리 씨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상해요. 우리 마을에 이런저런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죠. 하지만 항상 일어나는 일들, 일상적인 일들이었어요. 역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은 그런 일이 아니에요. 여러 명의 비명이라니요! 그리고 또 생기 탱크에서 일어난 사고도 그렇고. 그것 역시 설명하기 힘든 일이에요. 생기 탱크는 몇십 년 동안 아무 일 없었다고요. 그렇게 설계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게 몇 번씩이나 다 쏟아지다니요.
제가 두 번이나 먼저 발견하고 신고를 했었잖아요. 저는 항상 아침 일찍 충전하러 가니깐요. 아무튼 신고하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생기 회사가 청소하고 다시 정비하러 올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쏟아진 생기가 정상이 아니었다고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런 배합의 생기라니! 기준을 맞추지 않은 생기였어요. 기준에 맞춰서 골고루 잘 섞은 생기가 아니었다고요. 한두 종류의 생기만 들이부은 것이었어요.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씁쓸하고 어두울 수 없을 거예요.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리는 다 어느 정도 알 수 있잖아요. 대충 누구한테서 온 무슨 생기인지. 그런데 그건... 정말 이상했어요. 게다가 더 이상한 건, 그 전날 탱크에서 충전한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걸 못 느꼈단 거예요. 평소와 다름없었다고요. 라니 씨가 전날 충전했다길래 제가 물어봤거든요. 하긴 그렇게 이상한 것이었으면 분명 다들 금세 느꼈을 거예요.”
“누가 몰래 뭘 넣은 거 아닐까요? 아님 바꿔치기했다거나요?”
보비는 생각나는 대로 질문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대체 누가? 왜?”
보비는 말문이 막혔다. 보비뿐만이 아니었다. 아마님과 올리 씨 모두 다 똑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것을 대변하듯, 혹은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듯 올리 씨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생기 탱크는 마을 사람 모두가 필요할 때 이용하는 거라고. 언제든 필요할 때 누구나 가서 충전할 수 있지. 거기에다가 몰래 무언가를 넣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물론 밤에는 할 수 있지, 우리 모두 거의 다 밤에는 집에들 있으니깐.”
“보비야, 우리는 몸이 없으니 굳이 잠이 들 필요는 없지만, 우리도 많이 활동하고 나면 피곤함을 느낀단다. 밤에는 우리 역시 잠이 들지. 인간일 때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영혼 역시 쉴 필요가 있거든.”
아마님이 잠시 끼어들어 보비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 밤에는 넣을 수 있다고 쳐.”
올리 씨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뭘 넣는다는 거죠? 내가 느꼈던 것은...”
올리 씨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적당한 단어를 찾는 듯이 이마를 찡그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법 씁쓸했어요. 공포의 느낌이 강했거든요. 제법 강렬한 것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 혹은 꽤 심한 공포의 감정으로부터 나온 생기인 것 같았어요. 또 한 번은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공포가 느껴졌고, 또 증오도 느껴졌고... 하지만 분명 환희의 생기도 있었고요. 한두 군데서만 추출한 생기인 것 같다고 느낀 이유는, 나이 때가 다 비슷한 생기였거든요. 확실히 아기들은 아니었고, 노인이나 중장년도 아니었어요. 아주 젊은 청년들이거나 청소년들에서 나온 생기에요.”
“와, 그런 것을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보비는 저도 모르게 놀라며 물었다.
“그럼. 우리는 여기 머무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기를 섭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으니깐. 사람이었을 때 음식 맛을 아는 것과 똑같단다. 하지만 생기 탱크의 생기는 보통 적절하게 잘 섞여 있어서, 개별적인 특징들을 하나하나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지. 하지만 그날 내가 느낀 것들은 아주 분명했어. 그날 쏟아진 생기 탱크에서 나온 생기들은 한두 집단에서 어떤 특징적인 순간에 추출한 거야. 특징이 아주 분명했거든. 그런데 생기 탱크의 생기는 결코 그렇게 채우지 않아. 그러니 이상한 거지.”
“그렇군요.”
“이상해서, 청소와 재보수를 하러 온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봤지. 쏟아진 생기를 한 번 맛보라고. 이상하지 않냐고. 두 번 모두 서로 다른 팀들이 왔었는데, 다들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렸어. 이건 우리 회사 배합이 아닌 것 같다면서 말이야. 이런 식으론 배합해서 넣지도 않고, 넣을 수도 없다고 했지. 당장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것이니 말이야. 그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거짓말을 했다면 정말 연기상 감일 테지. 다들 모두 좀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별로 이상하게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단다. 그저 ‘아마 쏟아져서 휘발된 게 아닐까요? 좀 무거운 성분만 이렇게 남아있고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행복한 생기와 아이들의 생기는 아주 가볍고 순식간에 스며들잖아요. 쏟아지면서 날아간 게 아닐까요?’라는 게 그들의 말이었지. 나도 그런 건가 하는 생각에 좀 긴가민가 했고 말이야.”
셋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역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이 생기 탱크 사고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라고 아마님이 잠시 있다가 말했다.
“글쎄요... 펑하는 소리와 비명 소리, 분명 이상한 일이죠. 그리고 생기 탱크가 쏟아진 것 역시 이상한 일이고요. 둘 다 절대 우연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 두 가지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아니면 별 관련 없이 그냥 우연하게 일어난 서로 다른 사건들일까요? 무슨 관련이 있다면, 누가 무슨 이유로 한 일일까요? 펑하는 소리와 비명 소리는 도대체 뭐지요?
이렇게 같이 이야기를 해 봐도, 딱히 그럴듯한 대답이 떠오르질 않네요. 오리무중이긴 마찬가지예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란 겁니다. 저와 보비가 경험한 것은 분명 비슷한 거예요. 우연이기엔 지나치게 비슷하죠. 그리고 또 다른 일도 있잖아요. 약간 멍해 보이는 아이들이 목격된 거요. 전 정말 걱정돼요.”
아마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보비야,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너를 처음 만난 날 내가 잠깐 얘기했었잖니? 너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몇 번 이곳을 거니는 것이 목격된 적이 있단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마을 사람들 몇 명이 본 모양이야. 그래서 나도 너를 처음 봤을 때, 혹시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인가 하고 잠시 생각했었지. 금방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야. 이상한 일이야, 정말.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이 최근에 일어난 일이거든.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무슨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란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보비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님과 올리 씨의 걱정과 불편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확실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 역에 가보면 안 되나요? 그게 제가 여기에 들어온 그 집 맞죠? 펑 소리와 비명 소리가 거기서 난 거잖아요. 한 번 가서 살펴보면 더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보비는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대담하게 이야기했다.
아마님과 올리 씨는 보비를 쳐다보고, 다시 서로를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올리 씨가 이야기했다.
“그래, 보비야, 네 말이 맞아.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논리적인 결론 같구나.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볼 필요가 있어.”
올리 씨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님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역이 아무나 돌아다닐 수 없는데라는 거야. 사람들의 세상에 있는 역과 마찬가지란다. 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플랫폼이나 대기실, 식당 같은 공공시설에는 자유스럽게 들어갈 수 있지만, 역 사무실이나 관리실 같은 곳엔 갈 수 없잖니. 여기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거기 갈 때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때뿐이거든. 그러려면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아, 물론 그 허가가 아주 까다롭거나 하지는 않아.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어디건 갈 수 있단다. 다만 어디론가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생기를 충전하거나 해야 할 수 있으니, 미리미리 그런 부분을 서로 파악하기 위해서 그런 거지. 어떤 곳에 갑자기 많은 사람이 방문하게 된다면, 그곳의 생기 탱크를 더 자주 충전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미리 자기의 계획을 알리는 거야.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은 바로 허가가 나오지. 허가를 받고 역에 가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일단 역에 가서 위층으로 올라가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우리는 거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단다. 사실 올라갈 필요도 없고 말이야. 그 건물은 캅투 씨가 관리 책임자고, 우리는 그냥 승객일 뿐이니깐 말이야.”
“역에는 항상 승객들이 많나요?”
“오, 아냐. 이 마을의 역은 아주 작은 역이거든. 나가는 사람이나 오는 사람, 모두 별로 많지 않단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는 좀 더 큰 역도 있어.”
“그럼 승객들이 없을 때 한 번 가보면 어떨까요?”
보비는 또 대담하게 물었다. 아마님과 올리 씨와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보비는 왠지 무서우면서도 흥분이 되었다.
“그래...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일 수도 있어.”
올리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 그런데... 여기는 경찰이 있나요? 경찰에 신고하면 안 되나요?”
라고 보비는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경찰은 아니지만 방범대가 있지. 우리 마을은 작은 편이어서 방범대가 있단다. 경찰은 좀 더 큰 도시에 있어. 경찰에 신고하려고 해도, 좀 애매하단다. 생기 탱크가 쏟아진 사건은 이미 경찰이 조사를 했어. 드문 일이기도 하고, 생기 탱크에 관련된 일은 중요하니깐 처음 사건이 일어난 날, 바로 신고를 했지. 그런데 아직까지 뭐가 특별히 밝혀진 것은 없다는구나. 경찰도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사건의 경위를 밝히는 데 집중했지. 신고자인 나를 비롯해, 전날 생기 탱크에서 충전해 간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듣고 주위 조사도 했어. 그런데 별 소득이 없었다는구나.
무엇보다 동기가 애매하단다. 생기 탱크는 훔쳐 갈 수도 없고, 훔쳐 갈 필요도 없거든. 어느 마을 사람이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우물 같은 거니깐. 누가 굳이 우물을 파괴하거나 없애고 싶어 하겠니? 혹시나 그렇다고 쳐도, 너무 뻔하잖아. 당장 발견될 게 너무 분명하게, 그렇게 쏟아놓고 넘어뜨려 놨는데 말이야. 경찰은 그냥 이유를 알 수 없는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라고 올리 씨가 말했다.
“그리고 역에서 일어난 펑 소리와 비명 소리 역시 마찬가지야. 신고를 한다면 조사를 하러 오겠지. 하지만 일단 캅투 씨가 우리에게 말한 것과 똑같은 변명을 할 거란다. 전기배선 문제에, 고양이들이 깜짝 놀라 지른 소리라고. 경찰이 건물을 보겠다고 하면 보여주겠지만, 이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정리를 해 놓았을 거야. 그 사람은 아주 계획적이고 철저하거든. 그러니깐 역을 관리하고 있는 거고 말이야.”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별로 없어서 좀 불편할 때도 있지만, 역 관리는 아주 잘하고 있죠. 깨끗하고, 쾌적하게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 세상에서 볼 때도 너무 튀지 않게 잘해 놓고요.”
“너무 튀지 않는다는 게 어떤 거예요?”
아마님의 말에 보비가 물었다.
“너무 집이 좋거나 화려해 보이면 자칫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러 들어오려고 할 수 있지. 한편으로 집이 너무 허름하거나 비어 보이면, 노숙자들이 들어오려고 할 수 있단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마구 들어오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방어막을 쳐 놓기는 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지. 물론 우리는 그냥 통과할 수 있어. 그렇지만 살아있는 사람들한테는 튕겨내는 작용을 하지. 그런데 가끔씩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 드물지만 가끔씩 있단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계에 편히 오고 갈 수 있는 데 비해,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쪽으로 마음대로 올 수 없거든. 아마 우리가 한때는 살아있는 몸을 가졌었던 데 비해, 그쪽 사람들은 아직 이쪽의 경험이 없기 때문일지도 몰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올 수 있단다. 우리 쪽 학자들의 연구로는, 선천적으로 양쪽 세계에 편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는 거야. 뿐만 아니라, 이쪽 세계에 올 뻔했다거나 왔었던 경험이 있는 자들 역시, 이쪽으로 오는 것이 가능하다는구나.”
라고 말하며 아마님은 보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보비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음... 제가 기억하기론 여기에 전에 와 본 적은 없어요. 있다면 분명 기억했을 거예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면 보비 너는 선척적으로 양쪽을 오고 갈 수 있는 아이인가 보다. 아니면 네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기에 왔을 수도 있지.”
셋은 모두 잠시 생각에 빠져 조용히 있었다.
“자... 다시 캅투 씨와 역 이야기로 돌아가서...”라고 아마님이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역에 가서 볼 수 있을까요?” 바로 올리 씨가 이어서 말했다.
“저는 갈 수 있어요! 사실 좀 가보고 싶어요. 궁금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비명소리를 분명 들었거든요. 고양이 소리가 아니었어요.”
보비는 재빠르게 말했다.
아마님과 올리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가 곧 다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보비야, 넌 솔직하고 용감하구나. 아, 우리가 웃은 건 네가 우습게 느껴져서 그런 게 절대 아니란다. 너도 알겠지만 말이야. 네가 너무 확신에 차서 용감하게 말을 하는 바람에, 왠지 기특해서 웃은 거야.”
“저도 알아요. 두 분이 절대 저를 비웃거나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알아요. 그런 건 느껴지잖아요.”
보비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마님과 올리 씨도 보비에게 마주 미소를 보였다.
“그래, 좋아. 나도 당연히 너와 같이 가고 싶단다.”라고 아마님이 말했다.
“나도.” 올리 씨가 말했다.
“좋아요, 좋아. 그럼 우리 셋이 같이 가는 걸로 하고. 언제가 좋을까요?” 아마님이 말했다.
“수요일에는 역에 아무런 일정이 없지요. 화요일에는 오후에만 한 번 나가는 기차가 있고요.”
“그럼 수요일에 가야 되겠네요. 기차가 없을 때는 역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괜찮겠죠? 그러니깐 갈 필요가 없는 날 간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흠...”
올리 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말입니다... 역이 제일 붐비는 날이 언제죠? 토요일인가요 일요일인가요? 토요일 오후에 3번인가 4번인가 기차가 있지 않나요? 차라리 그때가 어떨까요? 기차가 없을 때는 말씀하신 대로 역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그런 날 캅투 씨가 역에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모릅니다. 기차가 없더라도 캅투 씨가 역에 갈 수 있어요. 집을 손본다거나, 청소를 한다거나, 관리라는 게 그렇잖아요. 게다가...
라니 씨가 캅투 씨 이웃에 살잖아요. 라니 씨가 몇 번 말했던 적이 있어요. 캅투 씨는 매일 같은 시간에 나갔다가 같은 시간에 집에 들어온다고. 라니 씨가 인사하면서 매일 무척 정확하시네요라고 하면, 캅투 씨가 역 업무는 정확해야지요라고 대답한다고... 명랑하게 인사하면서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하는데, 얼마나 심각하게 대답하는지 내가 뭐라고 더 말을 할 수가 없다니깐요라고, 라니 씨가 얘기했죠.”
약간 하이톤의 명랑한 목소리를 꾸며내며 올리 씨가 말하더니 곧 씩 웃었다.
아마님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라니 씨 성격에 별로 기가 죽었을 것 같지는 않네요. 라니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매일 똑같이 명랑하게 이야기를 걸 거예요.”
“분명 그럴 겁니다. 하하하하. 어쨌든 라니 씨 말대로라면, 캅투 씨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갑니다. 역으로 갈 게 뻔해요. 캅투 씨가 어디 놀러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하러 간다는 것은 잘 상상할 수가 없어요. 캅투 씨가 역으로 간다는 가정 하에, 아니면 언제든 역으로 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예 처음부터 역이 붐비는 날에 가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적어도 캅투 씨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짤 수 있으니깐요.”
“그러네요. 그 말이 맞아요. 그럼 토요일 오후에 가도록 해요. 그때가 제일 바쁠 때거든요.”
그때부터 셋은 작전을 짜느라 바빴다. 올리 씨와 아마님은 보비를 위해 우선 역의 도면을 대충 그리고, 플랫폼과 창구, 사무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사실 별로 알려줄 게 없구나. 꽤 오래된 집이고, 몇십 년 전엔 사람들이 살았던 집인데 빈 집이 된 지는 꽤 되었다고 들었단다. 1층은 그냥 빈 공간이야. 그리고 3층은 사무실과 관리실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가본 적이 없어. 필요가 없으니깐 말이야. 2층에 플랫폼과 창구가 있지. 사실 플랫폼이라고 해도, 네가 상상하는 그런 플랫폼은 아닐 거야. 기차가 들어오고 나갈 때만 열리는 플랫폼이니깐 말이야. 사실 방 하나로도 충분하단다.”
셋은 3층을 살펴봐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보비가 번쩍이는 빛을 본 창문도 3층이었고, 올리 씨가 역에서 소리를 들은 날, 캅투 씨가 안절부절못하며 올라간 것도 3층이었기 때문이다. 셋은 역할을 나누기로 했다. 아마님은 2층에 있으면서, 캅투 씨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계속 캅투 씨를 지켜보다가, 행여나 3층으로 움직이려고 하면 올리 씨와 보비에게 신호를 보내고 캅투 씨의 주의를 돌리는 역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보비와 올리 씨는 3층을 살펴보기로 했다.
“저기 그런데...”
셋이 한참 이야기를 하던 도중 보비가 말을 꺼냈다.
“두 분은 그냥 벽을 통과해서 갈 수 있지 않아요? 그러니깐 제가 이전에 아마님께 한 번 여쭤봤을 때, 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원하는 곳은 들어갈 수 있다고요. 그러면 두 분은 그냥 막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단다.”
올리 씨가 대답했다.
“아마님도 나도 벽을 통과하거나 아무 곳이든 들어갈 수 있어. 네가 온 세상에서는 말이야.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있지. 은행 금고나 핵 실험실이나, 아니면 온갖 보안장치가 된 기밀 취급소나 제한 없이 들어갈 수 있단다. 그건 우리가 몸이 없는 일종의 기로만 이루어진 존재이고, 네가 사는 세상의 보안이나 제한 장치들은 다 몸이 있는, 실체가 있는 그곳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는 거지.
하지만 여기는 달라. 여기는 다 우리와 같은 기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사는 세상이고, 따라서 제한이나 보안 조치도 거기에 맞게 되어있지. 여기도 경찰서, 관청, 은행, 공공건물이 있고, 또 일반적인 보안이 필요한 개인 사무실도 있어. 이런 곳들은 다 특수한 재료로 보안을 한단다. 너 하얀 집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니? 그래, 아마님이 설명해 주셨구나. 이 하얀 집에서 나온 물질로 벽이나 막을 만들어서 보안을 하지. 그러면 우리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단다. 역도 관청의 일종이고, 또 승객들의 정보나 통행 정보가 보관되고 있기 때문에, 기본 보안을 하는 곳이란다. 정도에 따라 아주 강한 정도로 보안을 하는 건물들도 있어. 역은 제일 약한 수준의 보안을 하지만, 어쨌거나 여기도 보안이 이루어지는 곳이야. 그래서 나나 아마님이 함부로 제한된 곳에 들어갈 수 없단다. 물론 역 전체가 그렇지는 않아. 어쨌거나 승객들이 오고 가는 곳이니깐 말이야. 역 중에서도 사무실이나 기록보관실처럼 일부 보안이 필요한 곳만 제한이 있을 거야. 내 생각엔 말이다, 3층 전체를 보안 구역으로 해 놓지는 않았을 거야. 사무실과 기록보관실 정도만 접근 제한이 있고, 나머지는 둘러볼 수 있을 거야.”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런데 그 보안이라는 게 어떻게 되는 거예요? 비밀번호로 열리는 문 같은 건 아닐 거 같아서요.”
“그래, 비밀번호는 아니란다. 여기 보안은 주로 보안막이지. 그건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하고 확실한 편이야. 예를 들어 역의 사무실은 보안 장소지. 그럼 우선 보안막을 설치해. 보통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다만 분명히 느낄 수 있어. 그냥 들어가거나 통과할 수 없지. 투명한 장벽 같은 게 느껴져서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단다. 하지만 캅투 씨는 공식 관리인이니 접근할 수 있어야 해. 아마 또 다른 관련자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러면 적용 해제 등록을 하는 거야. 이러이러한 자에게는 보안막이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말이야, 미리 관청에 신청을 하고, 승인이 나면, 담당 관리 3인 이상이 입회해서 적용 해제 등록을 한단다. 그렇게 되면 보안막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아.”
“보비 너는 어떨지 모르겠구나.”라고 아마님이 말했다.
“너는 여기에 속한 존재가 아니니깐 이런 보안막에 영향을 받지 않을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막 벽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너는 어쨌거나 몸이 있는 존재이고, 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강력한 거란다. 실체가 있다는 것 말이야. 이 세계에서나 네가 속한 세계에서나 벽을 막 통과할 수는 없지만, 보안막은 좀 다르지. 그건 실체가 없는 우리를 대상으로 만든 거니깐 말이야.”
“가서 보면 알겠지요.”
올리 씨가 말했다.
“우리가 역의 3층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어요. 가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죠. 한 번 가서 보면 좀 더 알게 될 겁니다.”
셋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올리 씨의 말대로 아는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부분을 계획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마님은 자연스럽게 캅투 씨의 주의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생각해 보고, 올리 씨는 캅투 씨의 퇴근 시간 이후 역에 가서 한 번 더 점검을 해 보기로 했다.
“잘하면 빈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깐. 왠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라고 올리 씨가 생각에 잠긴 어조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토요일에 친구 집에 가겠다고 미리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되겠어요. 그리고 친구한테도 말해 놓고요.”
아직 빈틈이 많은 작전이었지만, 보비는 흥분되기 시작했다. 아마님과 올리 씨도 약간은 흥분한 것인지, 말이 빨라지고 더 자주 웃었다. 셋은 간식을 좀 더 먹은 후, 토요일에 다시 볼 약속을 했다. 올리 씨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아마님과 보비는 나무집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