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싸 May 07. 2021

'빈' 시간의 바쁨

'모리스디페렌테'(다른삶)07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건기의 절정에는 햇빛이 무척 뜨겁다. 

가벼운 산책을 하러 나가는 것도 살짝 두려울 정도의 강렬한 햇빛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다행인 건, 분명 서울에서보다는 즐길 거리들이 훨씬 덜 한 환경 -영화관, 쇼핑, 박물관, 공연장, 맛집 등등 모두 다 없으니깐-은 맞지만,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것!

서울에서 살던 집보다 훨씬 더 큰 집을 청소하는 시간, 세탁기가 있는 옆집으로 빨래하러 다녀오는 시간 (이웃의 얼굴을 보면 수다도 떨어야 하니깐!), 서울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더 잘 챙겨서 하게 된 운동 시간 등 - 실질적인 의미의 할 일 하는데 시간이 든다.

 

서울에선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는 시간도 있다. 

어느 날 밤엔 샤워하고 잠시 베란다에 앉아 있는데 무언가 반짝거리는 불빛이 눈에 확 띄었다. 전기합선인가 싶어 후딱 달려갔더니, 조그마한 벌레가 동동 움직이고 있는 것! 벌레의 배 쪽에서 불이 반짝반짝 난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반딧불이인가 싶어서 순간 자동적으로 카메라를 가지러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멈췄다. (내가 얼마나 사진을 잘 찍는다고! 게다가 이런 깜깜한 밤중에... 그냥 이런 순간을 내 마음에 새기는 게 낫다) 벌레가 날아갈 때까지 유심히 봤다. 파리만 한 크기의 벌레  배 쪽에서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빛이 반짝반짝거렸다. 생각보다 밝아서 놀랐다. (형설지공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세...) 어떻게 이런 조그만 벌레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일까! 네이버에 찾아보니 '산화질소가 미토콘드리아의 활동을 중지시키면, 산소를 사용해 세포 에너지를 생성하는 일이 중지되고,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산소가 빛을 발하는 연료로 쓰인다. 반딧불이는 200여 종이 각자 빛을 발하는 게 다르고, 암수 교미의 신호로 빛을 발한다"라는 것이, 반 정도만 이해한 설명. 

과학적 원리를 알아도 신비는 여전하다. 특정 방식을 취하는 생물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미처 상상하기 어려운, 무수하게 다르고 아름다운 생물체들의 모습이 주는 경외감은 무척 크다. 교미의 신호로 산소를 태워 빛을 깜빡깜빡거린다니! 깨끗하고 심심한 이 곳이 아니었더라면 못 보고, 못 느꼈을 것들이다.  


로스팔로스에서 살던 집. 중심가였는데 이 정도 - 나무들 사이에 집이 간간히 있다.


언젠간 그런 적도 있다. 

퇴근 후 한참 운동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엄청 큰 소리가 들린다. 

뭔가 하고 내다보니 집집마다, 큰 소리들을 내고 있다. “우~우~”하는 함성소리, 냄비나 통 같은 것을 두드리는 소리, 북 같은 것을 두드리는 소리들이 나길래, “오늘 무슨 경기가 있나?”, “축제가 있나?”, “결혼식 같은 행사인가?” 하고 머리를 굴려 봤지만, 혼자 궁금해 봤자 알리 없다. 한참 궁금해하던 중에 ‘로스팔로스 한인 단체 카톡방’에 K가 문자를 보내온다.

“지금 집집마다 소리 내는 건 월식 때문이랍니다. 달이 사람을 잡아갈까 봐 저렇게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하네요” 란다. 

언젠가 1분 정도 지진이 느껴졌을 때에도, 사람들이 벽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고 소리를 내더니, (다음날 이웃에게 물어보니, 아직 사람들이 여기 살아 있으니 땅이여, 잡아가지 마시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 비슷한 맥락인가 보다.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자연현상에 대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개기월식에 대해 뉴스 본 것이 기억나서, 부리나케 현관문 앞으로 나섰더니 마침 딱 달이 잘 보이는 위치다. 요즘 보이던 휘황찬란한 노란색 둥근달이 아니라, 붉으스름한 기가 돌며, 이제 지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는지 아주 아주 서서히 초승달 모양에서 커지고 있는 중이다. 한 10분, 15분 정도를 보는 동안 이웃집에선 계속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다음날 마웅 코스토디오 왈,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이 사라졌지. 우리는 모두 소리를 지르고 땅을 두드려.” 라신다. 나는 개기월식을 뉴스 보고서야 알았는데, 어떻게 “달이 사라지는 것”을 아셨냐고 물어보니, 그것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단 눈치다. "당연히 하늘을 보면 달이 사라졌잖아!"라는 식으로 대답을 하시는데, 그렇구나 싶다. 


도시에 살면 하늘을 자연스럽게 보거나 하지는 않으니 (올려다봐도 볼 것도 없다, 하긴.), 개기월식, 일식 같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도 뉴스에서 “몇 년 만의 일식, 월식”이라고 말해야지 안다. 여기에선 하늘을 보는 일이 좀 더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달과 별이 조금씩 바뀌는 당연하고, 표 나는 자연현상을 굳이 어떤 '관찰' 행위로 하지 않는다. 그냥 일상적으로 편하게 보게 된다. 

일전에 전기 들어오지 않는 오무까누 마을에서 잤을 때 쏟아지던 수많은 강렬한 별빛들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처음 접한 광경이기에 압도적으로 느끼고, 의식을 하면서 봤지만,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리면 그 정도의 강렬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도 가릴 것 하나 없는 하늘을 외면하거나 안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시야에 쏙 들어온다. 그런 환경에서 달과 별을 안 보고 지나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12시쯤 야옹이 변기 흙을 갈아주려고 마당에 나갔더니 달이 정말 휘황찬란하게 머리 꼭대기 위에 떴다. 정말 달빛에만 의존해서 길을 걸어도 충분할 정도로 밝다. 새벽에도 얼핏 잠이 깼는데 침대가 달빛에 훤하다. 비몽사몽간에 고개를 젖혀서 보니, 그새 넘어가려는 달이 크게 보인다. 


로스팔로스에서의 '비고 심심한' 순간들은, 이런 식으로 쑥쑥 채워진다 - 동이 터오거나 해가 질 때 베란다에 앉아서 살짝 멍 때리며 야자수 나무 위로 햇빛이 펼쳐지는 순간들을 보는 시간, 고양이와 노는 시간, 눈부시게 뜬 별이나 새침하게 뜬 초승달을 보는 시간, 반딧불 꽁무니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신기해하는 시간, 베란다 너머로 비가 무섭게 내리는 광경을 보는 시간, 더운 오후에 25분 달게 낮잠 자는 시간, 가게에서 살 수 없는 것들을 직접 만들어 먹는 시간... 전체적으로 내 머릿속의 잔상에 많이 남아있을 것 같은 순간들을 새기느라 시간을 쓴다. 


해서, 서울 대비, 무언가 없는 것들이 많아 거기에 소비하는 시간만큼 비는 것도 사실, 또 그만큼 많은 것들이 있어 거기에 채우는 시간만큼을 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 충실하게 채우고 있는데도, 편하게 멍 때릴 시간은 더 많다. 무언가 정신 놓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통에, 시간에 끌려 다니는 느낌이 덜 하다. 

이전 19화 비자발적 '에코'슈머 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