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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Aug 30. 2020

비자발적 '에코'슈머 되기

덜 사면 될 걸...

7년 전, 평생을 한국의 대도시인으로 살다가 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 시골로 일을 하러 갔다.  3개월 후, 2주간의 휴가를 보내러 서울로 왔을 때, 가장 먼저 간 곳은 대형마트였다. 그중에서도 청소 세제 코너! 넋을 잃고 이 세제들로 청소를 하면 얼마나 깨끗하게 바닥이 닦일까, 별별 종류가 다 있네 하면서 거의 20분을 보냈다.  

섬나라 시골에선 세제 선택의 폭이 무척 좁다. 하루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비행기가 2~4대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섬나라의, 인구 30만의 수도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7시간 정도 운전해서 가야 하는 시골 (하지만 이 나라에선 인구 3만의 제3의 '도시')에선, 당연히 모든 물건을 수도에서 운반해 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주 한정된 종류의 물건을 운반해 온다. 살 집을 구하고 필요한 청소도구와 세제를 사러, 나름 동네에서 제일 큰 가게에 처음 간 나는 좀 당황했다. 대걸레는 딱 한 종류, 세제는 몇 종류가 있었는데, 향 차이가 날 뿐 같은 브랜드의 세제였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 때는 청소도구와 세제를 살 때 따질 것들이 많았다. 가성비는 물론이고, 친환경세제인지 아닌지, 환경호르몬이나 또 다른 해로운 화학물 검출 여력이 없는지, 성분은 무엇인지도 따져 보았다. 온라인 검색창에 '친환경세제'라고 치면 나오는 선택지들은 무척 많고 다양했다 - 독일 수입 친환경세제, 내 아이가 사용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착한 성분으로 만은 착한 친환경 세제, 천연 00으로 만든 천연 친환경 세제 등등, 혹하게 만드는 제품들 천지였다. 게다가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찾아보기 전엔 미처 생각도 못한 것들을 알게 되면서 더 선택이 복잡해졌다. (독일 수입이라고? 국산이 더 좋은 것 아닌가? 아니야, 왠지 독일 하면 친환경이쟎아! 독일에서 만든 것이면 제대로 친환경이겠지? 아니, 근데 또 이건 천연 00을 사용했다쟎아...) 검색은 검색에 또 검색을 낳았고,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대충 괜찮아 보이는 것을 사면서도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더 좋고 더 친환경적인 다른 물건들이 있는데 내가 못 사는 걸까 봐!      


그러다가, 섬나라의 시골 가게에서 서로 다른 향기별로만 선택할 수 있는, 그나마도 5종류 미만의 세제를 마주 대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안전한 성분일까, 친환경 인증마크가 있는 제품일까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고 불안해 보였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아쉬운 건 나인걸. 조심스럽게 마음에 드는 색깔로 하나를 들고 왔다. 한국에서 쓰던 것에 비해 거품도 많이 나고, 향도 무척 인공적이었다. 찝찝했다. 수도에 갈 일이 있을 때, 큰 슈퍼에 들려서 세제를 둘러보았다. 거기서 거기였다. 시골보다는 다양한 브랜드가 눈에 보였지만, 친환경 마크니 안전 성분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기에는 다 너무 똑같은 제품들이었다. 

사실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고 살던 시골의 현지인 이웃들을 보면, 세탁 세제로 그릇도 닦고, 아이들도 씻기고, 투계용 닭의 목욕도 시키고, 오토바이도 닦는 광경이 흔했다. 처음에는 기절할 만큼 놀랐지만, 여기선 무척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하긴 아직 전 국민의 50% 정도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나라에서, 세제를 종류별로 골라 사는 것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한 일일 경우가 높을 것이다. 게다가 세제 제품들은 100% 수입이다. 공장이 없는 이 곳에서는, 모든 공산품을 수입에 의존한다. 중저가의 많은 물품을 대량 구매, 수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 세제가 사고 팔릴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따로 가져오지 않는 한, 이곳에서 친환경 세제를 구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당황스러웠다. 거품이 너무 많이 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인공적인 향이 싫었다. 그렇다고 물로만 닦기엔 또 충분하게 청소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코웃음을 치며 말하셨다. 

"그냥 식초로 닦아라. 식초가 살균도 되고, 딱 천연이고, 구하기도 쉽고 얼마나 좋냐?!"


유레카! 


엄마는 집에서도 청소할 때 곧잘 식초를 물에 타서 싱크대며 바닥을 닦으셨다. 식초 냄새난다고 타박하며, 요즘 얼마나 좋은 친환경 제품이 많은데 사주겠다고 하는 나에게도, 엄마는 시큰둥하셨다. '그런 건 괜히 돈만 비싸고, 좋은 것들이 실제로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엄마의 의견이었다. 엄마는 구식이야라며 구시렁대었지만, 사실은 엄마야말로 진정한 에코슈머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단 왠지 '세련된' 에코 슈머라는 내가 만든 이미지를 혼자 깨기 싫었을 뿐. 그리고 새롭고 멋진 제품을 고르고 사는 즐거움도 포기하기 싫었을 뿐.  

    

다음날 동네 가게에 가서 식초를 샀다. 식초도 역시 딱 한 종류밖에 없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닥 청소용인데, 양조식초니 천연식초니 유기농 식초니 다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초를 물에 조금 섞어서 닦기 시작했다. 시큼한 냄새가 당장 나기 시작했지만, 냄새라는 게 그렇다. 조금 맡다 보면 무디어진다. 인공적인 딸기향보다는 훨씬 나았다. 게다가 청소 후 창문을 활짝 다 열어놓으니 냄새는 금세 날아갔다. 

엄마한테 다시 이야기했더니, 엄마는 예의 쿨한 어조로 이야기하셨다. 

"얘, 거기는 넘쳐나는 게 레몬이나 라임이라며. 열대라서. 신 냄새가 너무 난다 싶으면 그거 몇 개라도 짜 넣어라."


또다시 유레카!


매주 토요일 열리는 마을장터에 갔다. 공산품은 수입하고, 채소나 과일은 거의 반 채집, 반은 경작으로 기르는 이 곳에서 모든 농산물은 자연스럽게 유기농이다. 살충제니, 무슨 촉진제니 하는 것들 역시 다 수입해야 할 텐데, 이 시골에서 그런 것을 쓰는 집은 본 적이 없다. 잎채소를 사면 벌레가 갉아먹은 잎이 한두 개 있고, 씻다 보면 배추 애벌레 종류의 애벌레나 민달팽이가 꼭 한 두 개씩 나왔다. 징그러웠지만, 정말 깨끗한 채소라는 거겠지 하면서 익숙해져 갔다. 레몬이나 라임은 이 곳에서 따로 경작하지 않는 과일이었다. 그냥 집 앞뒤에 있는 나무에서 열리면 따서 먹거나 파는 거였다. 자연채집 상태의 레몬과 라임은, 한국에서 본 것들과는 좀 달랐다. 훨씬 작고 단단하고, 향은 무척 진했다. 10개를 사면, 한 두 개는 벌레 먹은 것들이 꼭 끼여 있었다. 라임을 사 와서 2개를 짠 후 물에 섞었다. 바닥을 닦는데, 먹을 때완 달리 향이 막 진하게 나지는 않아서 좀 실망했다.       


그 이후로 계속 식초와 레몬이나 라임 중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청소를 했고, 나름 만족했다. 청소가 안정되고, 다른 일상들도 서서히 익숙해져 가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서울 살 때는, 나름 깨어있는 그린슈머, 에코슈머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에코보다는 '슈머'에 많이 강세를 둔 생활이었던 게 아닐까. 도시에선 나름 의식 있는 (또 쿨하고 깨어있고, 트렌디한) 소비자로 친환경제품을 사고, 유기농 식품을 먹고,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으나, 어쨌거나 전제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골라 사는 소비자라는 것. '슈머'에 방점이 많이 찍혔다는 것.      

뭐가 너무 없는 환경에 갑자기 떨어지게 된 생활은 불편한 것 투성이었지만, 오히려 덜 소비하거나,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슈머’보다는 좀 더 '에코'에 방점을 둘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 상태는 한국에 들어오게 되는 경우가 되면 순간 바뀌었다. 대형마트만 가도 무척 많은 물건들이 있었고, 온라인 시장까지 확대하면 선택지는 더 많아지니, 사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게다가 사기는 또 얼마나 편한가. 택배는 또 얼마나 빠르고 좋은가. 많은 유통기업들이 친환경 포장재로 전환했거나, 전환할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 역시 전제는 '소비'다.      

사지 말자고, 편리함을 포기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반드시 '나에게 정말 꼭 필요한 것'들만 소비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기분전환용 아이템의 쇼핑도 지나치지 않으면 순기능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다가도, ‘이토록 많고 다양하고 멋진 물건들’에 금방 적응이 되는 데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고 싶어 진다. 물건들이 너무 없는 것도 불편해서 문제이지만,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내가 스스로의 욕망을 현명하게 잘 다스리면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훌륭하지 못하다. 너무 다양하고 반짝이는 물건과 서비스를 접하면 눈이 막 돌아가고,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한국 대비, 무언가 많이 없는 곳, 쇼핑의 다양성과 택배의 편안함이 없는 곳에서 좀 살다 보니, 이런 ‘비자발적’에코슈머로 사는 것에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사실 그건 별 게 아니다, 그냥 덜 사고 안 사는 것일 뿐. 이젠 한국에 들어갈 때도 이전보단 훨씬 덜 산다. 물건들에 의해 내가 욕망하는  정도를 사실상 간섭받는다고 해야 하나, 즉 보이면 생각지 않는데, 눈에 보이는 순간 “어머, 멋지다. 나 저거 사야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메커니즘이 이젠 썩 마땅치 않다. 이런 식으로 계속 더 살면, 어느 순간엔 내 소비 욕망을 잘 다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조금씩 든다. 출발은 비자발적이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엔 자발적 에코슈머가 될 수 있길, 그래서 안 사고, 덜 사고, 나아가선 내가 기르고 먹고 쓰는 삶을 조금이라도 만들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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