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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21. 2021

구걸, 달달한 담배, 미세먼지

'모리스 디페렌테'(다른삶) 18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어느날 오후, 물을 사러 나가는 길에 집 앞 나무 아래 앉아 있는 7~8살 또래 여자아이들 둘과 마주쳤다.  “돈을 주세요”(Foo osan) 라고 소리를 친다. 가끔 이렇게 무심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돈 달라고 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아주 심각하게 구걸을 한다기보다는 장난 삼아 낄낄거리면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무시하거나, 아니면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아이들도 처음엔 무시하다가, 또 다시 돈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에, "너네들 아무한테나 그렇게 돈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 했더니 수줍게 웃으면서 “죄송해요”(desculpa)라고 한다.  너네 여기서 뭐하니 하고 이야기를 건넸더니 “돈을 구하고 있어요”(buka osan)이라고 답을 한다. 너무 명랑하고 천진하게, 마치 “그냥 놀아요”라고 하는 것과 똑 같은 톤으로 이야기를 하길래, 그 말이 가진 무거운 의미와 묘한 부조화에 순간 놀라서 말문이 잠시 막혔다. 어떻게 돈을 구하는데 라고 물어보니,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야생 허브(야채?) 종류를 찾아서 캔다고 한다.


한 가족에 아이들이 보통은 5 이상, 8~9까지도 있는 이곳의 환경에서 엄마, 아빠, 아이들 전 가족이 다 생계에 달려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일방적이거나 구조적인 아동 노동의 착취는 아니다. 엄마가 시장에서 야채 파는데, 아직 미취학 나이대인 아이들이 같이 엄마 옆에서 놀고 자고 하다가, 엄마 도와서 물건도 담아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창피한 일도 아니고, 자연스럽다. 옥수수 수확과 탈곡, 염소나 말을 아침에 풀밭에 매어 놓는 일 등은 거의 아이들의 몫이다. 아빠는 소떼를 몰고 가고, 엄마는 요리를 하고, 아이들은 다같이 물을 길으러 간다. 온 가족이 자연스럽게 농장일과 집안일에 동원되는 것이다. 공장이나 산업, 상업화된 시설이 전무하기에, 일방적으로 기계적으로 착취적으로 아동 노동이 이루어질만한 구조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당연하게 아이들이 농사일이나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풍경은 아직까지 심적으로 낯설다. 나는 그냥 한국에서 평범하게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그냥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책 읽고, 친구들과 놀면서 지냈지, “돈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며 생업에 참여한 적은 없다. 집 형편이 풍족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할 정도의 경험은 없었다. 있었던들, 걱정은 부모님의 몫이었을 터, 나에겐 그 부담을 비추신 적은 없다. 

일방적으로 여기 아이들이 불쌍하고, 안 되었다거나, 아이들은 노동이나 경제활동이 아닌 공부와 놀이에만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단 어떤 절대적인 빈곤이 분명 존재하며, 아이들을 포함한 모두가 생활의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환경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빈곤 환경 차원에서보다 훨씬 더 악독하게 아이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S 간사가 호주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들었다며 흥분해서 전해준 이야기. 여기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피우는 LA 담배의 추악한 사실! LA담배는 현지에서 많이 피우는 인도네시아 수입산 담배로, 한 갑에 1달러이다. 담배나 주류에 대한 특별소비세가 아직은 없는 이곳에서는, 말보로도 한 갑에 1.5달러 수준이다. 국민건강을 목적으로 담배에 대해 특별 과세를 하는 국가정책이 없는 이곳에서, 그런 정책이 있는 타국 대비 상대적으로 담배가격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나라 전체적인 소비나 임금 수준을 생각할 때 담뱃값이 마냥 싼 것 만도 아니다. 그러나 담배는 누구나 알다시피 중독성 물질이라는 것. 건강에 좋지 않고, 소모성 지출이라는 것을 알아도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LA담배를 피워보면 달달한 맛이 난다고 하는데 (실제로 한국인 방문자 중 몇몇 흡연자들이 담배가 왜 이렇게 다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필터에 단 맛 내는 성분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때문에 한참 호기심이 왕성한 청소년이나 어린 아이들이 담배를 처음 피웠을 때, 씁쓸하고 매큼한 맛이 아닌 달달한 맛 때문에 쉽게 담배맛에 길들여 지게 된단다. 관련 규제가 있는 나라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담배 제조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고 하는데, 왠지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규제가 딱히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결과로 “달달해서 어린이도 피기 좋은 담배” LA가 동티모르 전역에 엄청 수입되서 팔리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도 중학생 정도 되면 담배 피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는데, 물론 개인이나 가정교육의 문제도 있겠지만, 상술과 (아마 정부 대상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했을) 술수가 결합되어, 많은 사람들, 특히 아직 나이가 어린 친구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역시, 다른 의미에서,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게 아이들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아는 언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5살인가 된 아들내미가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슨 요즘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 주말에도 잘 못 놀러 나간다고. 주중에는 죙일 어린이집 다니고, 주말에는 집에 있어야 한단다. 문제는 그런 생활이 언니 아들내미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란 데 있다. 서울이나 한국 대도시에 사는 대다수의 어린이들은 아마 비슷할 테지. 그나마 나가 놀 수 있는 곳도 제한되어 있을테고 (마트나 패밀리 레스토랑? 키즈클럽? ), 나가서 놀 수 있는 곳은 사람들로 북새통일테고, 그나마 미세먼지 때문에 제대로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 할 테니 말이다. 코로나 발발 이후에는 실내 장소도 나가지 못하니, 아이들은 물론 가족도 몽땅 고생이다.  


서울이나 여기나, 아이들의 안타까운 생활의 양상은 매우 다르지만, 그 문제의 원인이 모두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의 횡포, 부정의한 체제, 구조적 탐욕 등이 불러 일으킨 빈곤과 환경오염은, 어린이나 노인과 같은 제일 약자들에게 제일 먼저, 다양한 형태로 고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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