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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21. 2021

아픈 것도 서러운데

'모리스 디페렌테'(다른삶) 14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로스팔로스의 임시 하우스메이트이자 친구인 개비가 몸이 안 좋아졌던 일이 있었다. 열, 근육통, 두드러기, 두통 등등... 익숙한 증상이건만, 뭔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느낌으로 희한하게 아프단다. 고향인 호주로 휴가 가는 길에 병원을 들렸는데, 역시 이웃인 호주인 루시아 아줌마와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희귀한 열대 기생충 감염이란다!

다시 로스팔로스로 돌아왔을 때, 자기팔을 보여주며, "이게 이번에 진단받은 열대기생충 증상 중 하나야"라고 이야기하는데는데, 와, 정말 순식간에 한쪽 팔에 두드러기가 확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냥 두드러기라기엔 무슨 물고기 비늘처럼 촘촘하게 주욱 올라와서 너무 놀랐다. 놀라고 있으니, 개비가 이 정도는 양호한 거란다. 보통은 다리쪽으로 올라오는데, 오늘은 팔이라네. 한참 심할때는 자기가 봐도 자기 몸 같지가 않아서 사진을 찍어 놓는단다. 이러다가도 또 들어갈 때는 싸악 들어간다고. 정말 무슨 에일리언 숙주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섭고도 개비가 안쓰러웠다. 위생상태가 안 좋은 곳에서 발병되곤 한다는데, 듣기만 들어도 무섭다. 

저녁 준비를 하는데 개비의 상태가 영 안 좋다. 눈이 충혈되고, 열이 엄청 오르고 무척 추워하길래, 급한 대로 긴팔 옷을 둘러 주고, 두피와 이마 마사지를 살짝 해주었다. 개비 말로는 이러다가 아침이 되면 또 열이 내리고 멀쩡해졌다가 다시 저녁 때 몸이 떨리고 한다는데... 영 걱정이네.

약을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주별로 처방받은 약을 차례대로 먹고 있단다. 호주에는 약이 없어서, 스위스에서 실어 온 약을 먹는다고. … 루시아 아줌마나 개비는 모두 AusAid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나와있는데, 당연히 의료시스템이나 지원이 꽤 잘 되어 있다. 모든 의료비용이나 안전 관련 문제 해결은 호주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또 다른 이웃인  차일드펀드의 S씨 역시 무척 아팠었다. 수도 딜리에 갔다가, 제대로 된 처치는 커녕 진단도 나오지 않아서 싱가포르를 갔었나, Chikungunya 치킨구냐라는 모기 매개 질병의 진단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긴 했는데, 관절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기운이 없어졌다. 손아귀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병뚜겅이나 문 손잡이도 잘 못잡는다고. 딜리에서 한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낫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었다. 

 

우리 현지인 직원 한 명은 희귀 열대 기생충이 아닌, 평범한 치통 때문에 완전 울상이다. 다른 직원이 입안을 살짝 보았더니 어금니가 다 썩었단다. 지역 병원에 다녀왔는데, 진통제만 주고 근본적인 치료는 안 해, 아니 못 해 주었다고 한다. 치통이 도저히 심해 안 되겠다며, 그냥 뽑아 버려야되겠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해서 한국인 직원들이 정색을 하고 말리긴 했는데… 딱히 대안은 없다, 사실. 

"그냥 뽑아야되겠어" 라는 멘트에 반사적으로 안된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인터넷에서 치아 이미지를 찾아 보여주며 

“보이죠? 이게 어금니입니다. 어금니는 음식을 씹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뽑으면 안돼요. 이빨은 뽑아도 다시 자라나지 않는 것은 알고……있는 거…지요?? 치아가 썩었으면 썩은 부위를 제거하고 치료한 후, 거기에 아말감과 같은 금속제로 충전하면 됩니다!”라고 완벽하게 설명을 했지만… 내가 가진 그런 지식과 설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로스팔로스에선 기본적인 치과치료를 받을 수 없는데! 로스팔로스 현지 병원에서는 진통제 처방과 이빨 뽑는 것 정도를 한다. 우리 현지 직원분들 봐도 다 이빨이 좋지 않고, 나이가 40대를 넘어가면 이빨이 한 두개 없는 경우는 보통이다. 딜리의 외국인 대상 병원을 알아보긴 했는데, 딜리까지 왕복 8시간으로 다녀오는 건 그렇다 쳐도, 치료비는 또 어떻게 할런지. 십시일반이나 내 개인적으로 이번엔 도움을 준다고 쳐도, 다른 직원들의 충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에선 충치 치료 정도야 쉽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게다가 아말감 충전제는 의료보험 적용이 되어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회 인프라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한국에선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유용함을 인식조차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들이, 실상은 꽤 오랜 시간 동안의 제도적 보완과 투자, 재정적 뒷받침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것, 좋은 사회는 단순히 부의 총량의 증가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소소한 생활과 건강, 교육 등에서 재정적, 행정적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으면서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여기도 기본적으로 공공의료 시스템과 의료접근성에 대한 기본은 건실한 편으로, 의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며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하지만 그 범위나 기술 수준은 아직까진 아주 아주 제한적이기에,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도 실질적인 서비스 질은 아주 낮은 편이다. 이번 치과 치료에서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미국 같은 경우, 최첨단의 의료시설과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면 실제로 아파도 비용 때문에 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갈 수 있는데 무언가 다 없는 현실과, 있어도 그림의 떡에 불과할 수 있는 현실… 부의 차이에 의해 이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과 질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만, 그 부분이 기본적인 생존과 욕구에 직결되는 건강, 보건,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 교육과 같은 쪽이라면, 일방적으로 돈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는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 


개비는 며칠 후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서 순간 정말 숨을 못 쉬고 죽는 줄 알았다고 하는데, 완전 놀라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담당 간호사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비행기로 후송 서비스를 해 줄까 하고 물어 보길래 개비가 완전 식겁했다고. 나 역시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띄울 수 있는 비행기가 가능하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나, 혹은 친구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면 극히 안심이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낯설기도 하다. “외국인” 한 명을 위해서는 비행기도 띄울 수 있지만, 현지의 수많은 사람들은 아주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 그 어찌 할 수 없는 “간격”이 이럴 때 너무 크게 느껴지니깐, 그리고 나는 우연히도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라에 태어났으니깐, 다행이면서도 불편하고, 감사하면서도 “이건 뭔가 정의롭지 않아”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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