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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Oct 21. 2021

없으면 보이는 것들 2

'모리스 디페렌테' (다른 삶) 35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동티모르에 온 지 3달 만에 인터넷뱅킹을 성공했었다! (2021년 7월 현재는 동티모르에서 영업철수한) ANZ 은행이 있는 수도 딜리에 있었더라면 한 달이면 할 수 있었을 것이나, 시골 로스팔로스에서는 좀 더 걸렸다.  

ANZ 은행 기준, 인터넷 뱅킹 사용을 위해서는 우선 계좌 열 때 인터넷뱅킹 신청서를 작성한다. (혹은 기존 계좌가 있으면 그냥 인터넷뱅킹 신청만 하면 된다) 신청서에는 직업과 직장, 결혼 여부 등 시시콜콜한 정보를 다 적게 되어 있다. 

한 10여분 걸려 신청서를 작성하고 등록하면 은행 직원이 2주일 안으로 뱅킹 신청이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절대 오지 않았다. 


대충 2주일이 지나면 은행에 가서 내 인터넷뱅킹 신청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나는 한 달 정도 뒤 딜리에 갈 일이 있을 때 들렀는데, 그때 정도엔 신청완료가 되어있다. (온다던 신청완료 안내 문자가 왜 오지 않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은행 직원이 봉투 더미를 한참 뒤적거려서 내 이름이 적힌 봉인된 고지서 같은 용지를 건네준다. 거기엔 내 인터넷 뱅킹 아이디가 적혀 있고, 인터넷뱅킹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서포트센터”에 전화를 걸어라 라고 적혀있다. (아니, 그럼 "신청 완료"에서 완료라는 건 무엇??? 뭐가 신청이 되었다는 건지?)


서포트센터에 전화를 한다. 참고로 서포트센터는 자동화된 콜센터가 아니다…전화를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를 건다. 마침내 누군가 전화를 받으면 나의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싶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무언가 다시 확인 등록 절차가 전화로 계속되는데, 내 주소와 전화번호, 계좌번호, 고객 ID(이것은 뱅킹아이디와는 또 다른 아이디임), 뱅킹아이디 등등을 주욱 불러주고 나면 은행직원이 전화로 내 인터넷뱅킹 패스워드를 불러준다! 아니 그럼 은행직원은 내 뱅킹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게 되어버리는데, 이거 좀 이상한거 아님? 

하여간… 전화로 패스워드를 받고 나면 드디어 사이트에 접속하여 인터넷뱅킹을 쓸 수 있다. 패스워드는 바로 바꾸라고 안내가 나오기는 한다.


휴~~~ 왜 신청하고 나서 한참 있다가 뱅킹 아이디가 나오는 걸까? 로또처럼 일주일간의 신청서를 받아서 랜덤으로 번호뽑기한 다음에 그 번호대로 아이디를 주는 걸까? 백번 양보해서 그건 다 그렇다쳐도 아이디 줄 때, 임시 패스워드도 같이 주면 어디 덧나나? 신청하고, 받으러 가서, 다시 전화하고, 패스워드 받고… 이 시스템은 뭥미? 


어쨌거나 인터넷 뱅킹을 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 저게 2013년도의 일이고, 8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뱅킹 사용은 더 쉬워졌다. 포르투갈계 은행인 BNU를 쓰는 남편의 경우, 바로 등록 및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곤 해도 지방은 여전히 더 열악하다. 


같이 일했던 한국인 직원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수도나 우물이 없으니깐, 매일 물을 길으러 간다던가, 은행이 없다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 상상이 쉽지 않다고. 물론 전자의 경우가 훨씬 더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은행 (혹은 은행으로 대변되는 금융 인프라) 역시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진 나머지, 없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쉽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예컨대 돼지를 팔아 300달러가 생겼다고 치자. 그 중 100달러는 당장 필요한 일에 쓰고, 200달러가 남았는데 은행이 없다면 일단 집안에 보관해야 한다. 예금이나 적금 상품과 같은 기본적인 형태의 금융투자는 차치하고라도, 그냥 안전하게 돈을 보관하는 기본 기능 면에서, 은행이 아쉽다. 2013년 당시, 로스팔로스 시내에는 은행이 딱 2개 있었는데, 은행에 가기 위해 시내에 나오는 것도 여간 번거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집안 비밀의 장소에 꽁꽁 돈을 숨겨 놓는 모양인데, 도둑이 들어 훔쳐가는 경우도 있단다. 현금으로 돈을 보관하지 않으면 벽돌을 사서 집을 새로 고치거나, 가축을 사거나 하기도 한다. 


필요할 때 돈을 빌리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야기를 들어본 바에 의하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불가능 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무원, 교사 등 급여가 보장되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 '보통 시골 사람'들이 돈을 빌리기는 정말 힘들다. 복잡한 각종 서류 준비와 작성은 물론, 공무원 재직 중인 가족이나 지인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고. 은행 외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은, 소액대출기관 (Microfinance institutions) 인데 현지 기반의 2개 기관이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 역시 절차가 쉽지는 않다. 개인으로 돈을 빌릴 수는 없고, 10명 내외의 그룹을 만들어 대출 신청을 하면 (이 그룹은 연대 보증의 책임을 지게 된다) 우선 2~3일 정도의 관련 OT를 들은 후, 제안서를 제출해야만 초기 100달러를 빌릴 수 있다. 객관적인 신용도 평가라든가, 담보 설정이 애매한 등의 한계가 있기에 시스템 상으로 상환 위험을 최소화 하려는 의도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사실상 급전이 필요할 때 이용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래서 보통 가족들이나 친척들끼리 돈을 빌리는 데, 대략 10% 정도 비율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가까운 지인에게 돈을 빌리지 못하면, 이 나라에서 현금이 남아도는 특수계층 '국가유공자' Veteranus 에게 어마무시한 이자를 내고 빌린다. (베테라누스는 인니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에 참여, 혹은 기여한 독립군이다. 독립 후 특별연금을 지금받는데, 동티모르 평균 급여를 훨씬 웃도는 연금을 지급받는다.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고,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베테라누스 선정이 공정하게 되었는지와 부정수급에 대한 잡음이 많다는 것이 문제! 취지는 좋지만, 실제 정당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많이 나오는 편... 이전에 로스팔로스에서 한국으로 오는 고용허가제 노동자 청년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최초로 한국에 갈 때의 비행기 등 여비마련을 하느라고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척이나 가족이 돈이 없어서, 동네 베테라누스한테 돈을 빌렸는데, 이자를 80%가까이 냈다고 해서 네다섯번 되물었었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돈이 필요하면 어떻게든 해 나가긴 하겠지만, 은행의 아주아주 기본적인 기능 - 돈을 맡기고 빌린다- 이 없기에, 그냥 장롱 어딘가에 넣어놓고, 친구한테 돈 빌리고 하는 식으로 꾸려 나간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 사실. 게다가 은행을 통해 여웃돈이 곳곳에 재투자 되어 경제가 활성화 될 수도 있는 기회, 예금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자율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답답하다. 들으면 머리가 아파지는 각종 파생 금융상품과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이리저리 바뀌는 실제감 없는 금융 거래가 가끔 지나치게 느껴지지만, 반대로 최소한의 기본적인 금융 접근권이 제한된다는 것 역시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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