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 Lee Nov 17. 2020

옆에서 누군가 힘들어한다면, 양꼬치로 위로해주세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직장인으로서 4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2020년도 어느덧  마무리되어가고 있습니다.

한 해가 벌써 저물어가는 것이 아쉬운건지, 나의 30이 과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마주하는게 아쉬웠는지 꽤나 뒤숭숭한 하루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속에서 화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육두문자가 입으로 쏟아져 나올 만큼의 상태가 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럴 때 저는 제 입에서 어떠한 단어도 나가지 못하도록 입을 다물곤 합니다.   


제가 화가 났을 때,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냐면,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상대방에게도 제 자신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뱉어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감정에 휩쓸려 비겁하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마구 쏟아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밝고 기분 좋은 긍정적인 말이야 언제 들어도 또 듣고 싶지만, 힘듦, 지침, 부정, 자책처럼 들어도 썩 유쾌하지 않은 말들을 듣게 된다면 어느 누가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요.


그날도 입을 굳게 다물어야만 하는 날이었습니다.

제 말로 누군가가 상처를 받거나 혹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제 표정과 몸짓은 제 분노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열심히 표현했나 보더라고요.

(이러한 점이 간혹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고,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어요.)


그때 저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갑자기 제안을 가장한 강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함께 먹자고요.


사실 저는 이날 저녁에 필라테스를 예약해 둔 상황이었습니다.

제 경험상으론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를 때, 운동이 그렇게 잘되더라고요. 그리고 운동을 하기 전에는 답도 없던 고민들이 운동을 하는 동안에 굉장히 명쾌하게 결론이 나곤 했습니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으로요. 그래서 전 스트레스를 받을 땐 무조건 몸을 움직여요. 찰나의 좋지 않은 생각들이 제 일상을, 제 신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이번에도 필라테스로 남아있던 힘을 다 짜내고, 러닝머신으로 숨찰 때까지 달리면서 속에 담긴 화를 왕창 풀 생각이었습니다. (이미 예약한 수업이라 취소도 안돼요....)

더욱이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고 해서 기분이 쉽게 좋아지거나,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나이니까요.


그런데 이 친구는 계속 저와 같이 가겠다더라고요.

아직 1시간 정도 시간이 있으니 식사가 부담스러우면 편의점도 괜찮다면서 대뜸 제 동네에서 같이 내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못한 척, 이왕 시간을 함께 하기로 했으니 이 친구가 좋아할 만한 저녁을 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식당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역에 내렸습니다.

몇 개의 가게를 지나친 후, 비교적 한적해 보이는 양꼬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양꼬치의 좋은 점은, 

꽂아놓으면 알아서 구워집니다. 달리 신경 쓸게 없으니 상대방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죠.

다 구워진 꼬치는 상대방을 위해 건넬 수 있습니다. 챙김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살코기가 적당히 소분되어 있으니 이야기가 많이 필요한 밤에, 한점 한점 천천히 먹는 행동으로 이야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습니다.

또 맥주와 잘 어울리니 위로가 필요한 밤에 그렇게 찰떡인 메뉴일 수가 없습니다.


양꼬치로 위로받기


양꼬치가 돌아가는 내내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전 마음 한켠이 훅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앞에 앉은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저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준 것보다, 제 앞에 앉아서 좋지 않은 감정을 받아준 것보다

혼자 집에 들어가서 화를 삭히지 않도록 해 준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따뜻했고, 고마웠습니다.


양꼬치 집에서 무려 5시간을 함께 웃고 즐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약해둔 필라테스는 쿨하게 제꼈어요.)


시간이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서로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진정성 가득한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

그렇다고 구구절절한 위로는 건네기 싫을 때에는


꼭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야만 한다는 것을,

혼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 참 소중하고 따뜻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제가 이런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회사 개발자와 대화하기 위한 나의 피나는 노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