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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나 Dec 14. 2023

운명의 아이러니

#6

'운명의 아이러니'라는 러시아 고전 영화가 있다.


새해 전날 만취한 남 주인공이 자신의 집을 착각해 다른 집에 들어갔고, 그곳에 사는 여 주인공과 얽히고설킨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이다.


하필 주소가 같았고, 아파트 외관도 동일했고, 열쇠도 맞아떨어졌고, 인테리어도 비슷했다는 점에서 '어떻게 그런 운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 '운명의 아이러니'를 이 글 제목으로 꼭 갖다 붙이고 싶었다.







#

융모막 검사 결과를 갖고 담당 의사와 상담을 하려고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간호사가 복도로 나와 어떤 산모의 남편을 불렀다.

문 열린 틈으로 찬 심장소리가 들렸다.


'처음 심장소리를 듣는 날인가 보다.'


얼마나 좋을까.

나도 얼마 전에 그랬는데..


놀랐고, 신기했고, 가슴 벅찼고, 낯설었고, 감격했던 그날



그날 같은 공간에 2개의 운명이 있었다.




#

우리의 결심을 들은 담당 선생님은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이미 유산을 하고 정밀 검진 결과에서 모자이시즘이 나왔다 몇 달 전 어떤 부부 사례를 덧붙이셨다.


- 1차에서 다확진을 받더라도 최종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나요?


선생님은 멈칫하시더니 그럴 경우 결과가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셨다.




#

외출이라도 하면 산후조리원 간판이 눈에 띄었다.

몇 번이나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마치 산후조리원 간판을 감지하는 안테나라도 장착한 것 같았다.




#

올해에도 대입 면접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중 어떤 학생은 간호학과에 입학하고자 했다.


- 왜 ○○대학교 간호학과에 가고 싶어?
- 신생아를 돌보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요.


그는 자신이 아주 아기였을 때 간호사들 덕분에 안정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지켜온 올곧은 마음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서 아픈 아기들이 건강해지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도 곧은 마음으로 출산을 선택했더라면 잘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

엄마가 최근까지 열심히 들으셨던 교육이 있다.


그 교육은 '가톨릭 조부모 신앙학교'였다.

등록해 드릴 당시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이거야말로 운명의 아이러니 아닌가^^;)



모교였던 곳에서 열심히 배우며 얻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단풍이 짙은 가을이어서 바람 쐬며 오가는 길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집으로 가시는 길 전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가 힘차다.


언제 이 배움을 실천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쁜 순간을 마련해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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