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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나 Dec 31. 2023

23년을 보내며

유산을 하고 나서 당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고, 글로 써왔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이렇게 적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했을까?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현상은 불변이니, 그걸 극복하는 건 마음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고 해석할 자신이 없었다.


융모막검사 결과지를 받고 염색체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소름이 돋았다.
왜 하필 나인 거냐고 묻지 않았다. 왜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아니까.

21번 염색체가 3개

그냥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

어떤 스토리텔링도 무력하다. 어떤 의미나 해석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염색체 이상은 존재 그 자체다.

- 염색체에 이상이 있어요. 
결과는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염색체 이상을 갖고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



'감사'라는 행위를 거부한 적도 있다.


감사 일기를 쓰는 모습이 나에게는 고행처럼 느껴지는 거야.



12월이 되고 나서 연말을 빌미 삼아 많은 사람하고 인사를 주고받았다. 내가 받았던 호의, 관심 등이 떠올랐고, 2023년에 불행한 일들이 있었지만 2023년이 불행했던 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게 된 건 '다른 이들' 덕분이다.


무겁고 불편한 내용에도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과 댓글을 남겨주신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 해가 바뀌었어도 유산 후 일지는 계속 쓰려고 한다. 마무리를 하고 끝내고 싶다. 


당시에는 애도를 위한 목적으로 글을 썼다면, 이제는 회복을 위한 글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벌어질 일이고, 이 글들이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내가 수많은 중기유산 글에서 위로를 받았듯이. 유산은 나이를 불문하고, 노력을 불문하고, 간절함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12월이 지나갔습니다. 


되돌아보면 올해에는 유산이 아니고서도 힘든 순간들이 많았는데요.


이렇게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살아냈다기보다 삶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 덕분이었어요. 저를 떠올려 주시고, 말과 행동에 진심을 담아 기꺼이 손 내밀어 주시고, 힘을 나눠준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기 좋은 계절에 고마움을 나누며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니 마음이 채워지고 용기와 여유가 생겼어요.


치이고 상처받고 버티면서, 나는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받는지, 타인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회피하지 않고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저를 황당하게 하거나 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건넸던 이들도 용서가 되더라구요.


유산 이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준 많은 분이 생각나는데요.

한 분 한 분 떠오르면서 어떻게 다 갚지?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마음을 받았어요.


5분 후면 바뀔 24년에는 저도 누군가의 회복, 인간관계,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나누려구요. 따뜻한 마음을 돌고 도는 법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에요)


24년에는 간절히 바라고 뜻하시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함께 바랍니다.


임하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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