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장

by 노준성

어스름한 함평천 안갯속을 헤치고

안부 섞인 첫마디가 장터를 깨운다

나비보다 먼저 날아온 엄다댁, 학교댁 보따리 안에

간밤에 서리 맞고 단맛 든 배추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흙 묻은 손마디는 이미 싯누런 세월을 이고 왔다

목포 바닷길 물어물어 올라온 먹갈치 은빛 비늘에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어물전

가위질 소리 엇박자로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엿장수 장단에 구경꾼들 어깨춤은

덤으로 얹어지는 장날의 양념이다

소가 떠난 우시장 빈터엔 이제 서운함 대신

달큼한 비빔밥 냄새가 이정표처럼 들어선다

놋그릇에 꽃으로 피어난 함평 육회비빔밥

고추장 한 술에 시름을 비비고 나물 한 점에

정을 비벼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달래주니 그것은 한 끼 밥이 아니라

뜨끈한 위로의 성찬(盛饌)이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보따리를 싸는데

빈 소쿠리 들고 돌아가는 할머니 등에 업힌 노을이 붉다

투박한 사투리 속에 섞인 약속은 저울질할 필요 없는 진심

함평 5일장은 그렇게 떠난 것들의 그리움까지 한데 모아

사람 마음을 사고파는 전래 동화였다

월, 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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