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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18. 2020

[DAY108(2)]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되는 여행

지수 일상 in Amsterdam


두시가 넘은 시각에 먹은 점심. 배불리 먹고 나서 그제야 그다음 행선지를 정하는 사람, 저염! 사실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일반적인 호텔이나 호스텔, 에어비앤비를 숙소로 삼고 있지 않다.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기 한 달 전쯤? 비행기 티켓을 결제한 후 유랑 카페에 글 하나를 찾고 있었다. 바로 함께 에어비앤비를 공유할 여자 여행객. 평소 같았으면 혼자서 사용할만한 곳을 찾았겠지만 워낙 암스테르담의 평균 물가가 높아서 오롯이 혼자 감당하기에 부담되었다. 숙박비를 N분의 1로 나누기 위해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남긴 글을 찾아보고 비슷한 글을 보면 댓글을 남겨 숙소를 공유하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그런데 며칠 후, 나의 쪽지함에 하나의 쪽지가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한 유학생이 자신의 집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것! 사실 많이 의심도 하고 고민도 했는데 연락 온 유학생분의 신원도 분명했고 꽤 가격적인 메리트도 있었다. 심지어 미술을 전공하는 그녀 덕분에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웬만한 미술관을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는 것! 그게 사실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는 결국 그녀의 집에 3박 4일 동안 머물기로 했고 반 고흐 미술관을 거쳐 두 번째로 미술관을 방문하며 패스 카드의 뽕빼고 있다.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과 달리 이곳에서 내가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설명이라곤 역시나 영어밖에 없었다. 그래도 설명이라도 해 주는 게 어딘가. 현대미술, 조각 등이 많이 있었던 이 곳. 사실은 패스카드가 있어서 큰 기대 없이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유명한 작품이 많아서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다. 수많은 바이올린을 아크릴 판에 넣어놓은 작품이 있었는데 보자마자 중고겠지? 중고 이어야만 해,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도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사람인가 보다. 



회사에 가기 싫은 직장인을 뜻하는 건가? 아침마다 정장을 입고 회사로 향하는 좀비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시실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그 유명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도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도발적인 포퍼먼스를 하는 예술가로 유명한 그녀는 유튜브에서 '퍼포먼스 도중 22년 만에 만난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한 영상으로 인해 한국사람들에게 제일 잘 알려져 있다.(실제 퍼포먼스의 이름은 '예술가는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2010))') 이 영상에 등장하는 그녀의 연인 울라이(Ulay)와 함께한 작품이 꽤 많은데 이곳 미술관에서 본 작품 대부분도 그가 등장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특히 가장 오른쪽의 사진은 '정지 에너지(Rest Energy)(1980)'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인데 이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미술관 곳곳에 위치한 의자들. 관람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잠시 생각을 할 수 있게, 또 아픈 다리를 쉬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쉼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술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병원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공부를 해서 일까 의료폐기물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정말 너무나도 많았다. 아마 이것도 사실 대학병원이라고 하면 하루 이틀 치밖에 안 되는 양이겠지? 수많은 장갑과 주사기, 그리고 차트와 거즈까지. 정말 쓰레기를 만들어야만 세상이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The Drawing if closest to the IDEA. 확실할까?



가장 와 닿았던 작품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살 때는 그 누구보다 카톡이나 SNS를 열심히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되도록이면 항상 연결되어 있고 싶어 했고 약속이나 연락이 없으면 그것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고 나니 그게 나를 갉아먹는 벌레가 되었다. 차라리 짐이었으면 지고라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외국으로 나왔다는 핑계로 SNS를 멀리했다. 특히 카카오톡을! 처음은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금단증상처럼 연락이 왔을까 괜히 궁금하고 안절부절 못 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사람들과 연결되어있지 않다는 것에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을 나에게 집중했다. 이런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하루에 미술관을 두 군데나 갔다 왔더니 너무나도 지쳤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약간의 리프레시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럴 때는 아이쇼핑만 한 게 없지. 오늘도 어김없이 COS에 들러 어여쁜 옷들을 입어봤다. 스페인에서 할인하던 걸 봐서 그런지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할인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 옷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 하지만 입어보자마자 입어보고 나왔어야 했다. 더 이상 할인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한국에 와서 이 옷을 찾으니 한 군데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에휴 역시 타이밍이 답이라고 하더니?



이날은 우연히 연락이 닿은 한 언니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와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날뿐더러 관심사가 굉장히 비슷한 게 많기도 해서 꼭 만나고 싶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기 위해 공원 하나를 지나가게 되었다. 풀밭만 보이면 일단 눕고 보는 이곳 친구들, 괜히 이 친구들만 보면 나도 눕고 싶어 진다. 하지만 너무 더러워... 너희들도 알면서 모른척하는 거지?



오늘 처음 만난 진주 언니는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하다가 나처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유럽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유럽에 산지 나보다 오래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라들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말 근래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술을 잘 못 마셔서 그렇다고 이해를 해보며 언니에게 라들러를 소개해주었다. 다행히 무알콜 라들러를 팔고 있어 음료수 겸 주문을 했는데 다행히 언니의 입맛에도 맞아 맛있게 마셨다. (솔직히 이거는 내가 언니다 그렇지?) 립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우리는 결정 장애답게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는 립 컬렉션을 주문했다. 우리 테이블 옆에는 한쌍의 커플이 먼저 와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나오는 걸 보고 매우 부러워했다. "와우 이걸 시킬 껄 그랬어" 이러면서 말이다. 약간의 너스레를 떨며 아쉽다, 나중에 한번 주문해봐 라고 말한 뒤 우리는 배가 터지게 먹었다. 한 두 개 정도 줄걸 그랬나?



배도 부르고 진주 언니가 가지고 온 DSLR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혼자 여행하면 자신의 모습을 찍기가 꽤 어려운데 나(한국인)를 만난 김에 실컷 찍고자 산책을 나섰다. 그나저나 이곳 암스테르담, 너무나도 예쁘다. 예쁜 배경에 나를 세워놓으니 조금 망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제 이곳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겠냐는 생각에 철판을 깔고 렌즈 앞에 섰다. 사진 장인인 진주쓰의 노오력?



물이 흐르는 곳으로 길게 늘어선 운하를 따라 걷는 게 최고다. 골목골목 안까지 예쁘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노을도 슬슬 지고 토요일 여유로운 하루가 저물어 가는 저녁, 여행을 하면서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은 많았지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본 거 같다. 그런데 이 곳은 정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몰라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과 함께 와서 그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주말 오후를 자기 집 앞 계단에 앉아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노는 모습을 봐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행복의 모습이 있었다. 자전거의 나라인 이곳, 배만 안 불렀으면 언니와 맥주를 마시며 더 놀 수 있었는데 아쉽다. 둘째 날도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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