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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순 Feb 07. 2022

13. 첫눈 오는 날

                     푹푹  이야기는 쌓이고

구지가 일찍 출근하는 바람에 긴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루틴으로 굳어진 나의 오전은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샤워하고 짱구에게 김광석의 노래를 요청하고, 커피를 갈기 시작한다. 온 집안에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향 때문에 커피를 수동으로 갈아 내려 마시는 걸 고집한다. 단 일어나자마자 첫 잔은 믹스커피다. 이때 마시는 커피는 그다지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 뇌를 깨우는 각성제로서의 커피다. 그러니까 진짜는 아침 루틴이 끝나고 커피를 갈면서 시작된다. 주방 한편에 차를 위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 커피콩과 허브 차와 잎차와 그리고 찻잔을 수납하는 상부장이 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상부장을 여는 순간부터 진정한 커피타임은 시작된다. 온 집안에 커피 향이 퍼진다.


잘 내려진 커피를 들고 거실 창가로 간다.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있다. 이케아 제품의 반 흔들의자, 보다 만 책, 핸드폰 충전기, 노트북, 그리고 블루투스 스피커, 키 큰 조명등. 몬스테라 화분까지.      


어제 읽다만 책을 펼쳐놓고 읽기 시작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이제부터의 거실은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이다. 책상처럼 쓰는 테이블과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위치를 달리하는 의자와 내가 아주 밀착해 있는 시간. 피프티 피플은 말 그대로 50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속에서는 연결되어 있다. 작가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이야기 속에 숨겨놓았겠거니. 인드라의 그물망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매 순간 누군가는 나의 배경이었고, 나 역시 누군가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배경이 없는 삶은 현실감이 없다. 배경은 공기와 같은 것. 좀 비약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없다고 믿는 누군가로 인해 나의 하루가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며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50명이듯 50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야기들은 조금씩 겹치면서 별개로 나아간다. 그런데 반 이상을 읽었는데도 이야기들이 선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략의 이미지만 남고 더욱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은 아예 백지상태다. 하긴 이야기 자체가 그리 대단한 서사를 품고 있진 못하다. 그래서일까. 각각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야기들이 이름 없이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름같이 여겨졌다. 그 이름들 가운데 슬그머니 내 이름을 끼워 넣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50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셈이다. 주인공이 없는 혹은 모두가 주인공인 책! 그러고 보니 책 뒷장에서 읽은 것도 같다.  


문득, 책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보았다. 흰 먼지 같은 눈이 한두 개 흩날렸다. ‘눈?’이라고 지각함과 동시에 눈이 내리면 무조건 만나자고 했던 며칠 전의 카톡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건 눈이라고 하기엔 억지에 가깝다. 다시 책 속으로 눈을 파묻었다.


두서너 줄을 더 읽었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눈 온다. 만나자!”

우리 셋 중에 누군가는 나처럼 눈을 보며 카톡을 생각한 모양이다.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덮고 외출 준비를 했다. 올해 구지가 농사지은 쵸코 벨리를 냉동칸에서 꺼냈고, 얼마 전에 대용량으로 산 병아리콩을 꺼냈고, 그리고 김치를 사 먹는 두 집을 위해 올해 담근 김장김치 몇 쪽과 묵은지, 그리고 잘 익은 섞박지를 꺼내 포장했다. 눈 오는 날 만나자고는 했지만 눈이 오는 건지는 애매했다. 만나기 위해서는 한 두 송이의 눈이어도 충분한 빌미가 되었다. 대박 언니가 차는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빤하지만 김치를 가져가야 하는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언니네 집은 주말부부라 집을 언니 혼자 화실로 쓰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언니다. 주로 초록색을 주색으로 그린 언니의 그림은 추상화에 가깝다. 특이한 건 언니의 그림을 전시장이 아니면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도 우리가 오기 전에 그리던 그림들을 다 치웠다고 했다. 거실은 화실에서 카페로 변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언니의 초록색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연의 초록이 아니라 수술실 방균복의 이미지라고 했다. 이제껏 봤던 그림의 이미지가 엉망이 되었다.


먹기 좋게 잘라놓은 샌드위치, 초록 꼭지가 붙은 채로 씻어낸 딸기, 샐러드, 얼린 망고, 강원도에서 가져온 감자떡, 그리고 약밥에 와인까지. 아 더 있다. 갓 볶은 커피의 향까지. 이보다 더 고급진 카페는 없다. 언니네 집은 거실의 두 면이 통창이다. 한두 개 나풀거리던 눈이 금세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여 ‘눈 오는 날 보자’ 던 약속은 이루어졌다. 얼마나 낭만적이던지.


정오 즈음에 만나 주변이 먹색으로 변할 때까지 긴 시간을 이야기로 채웠으니 그 화제 또한 화려 만발이었다. 눈이 내리는 날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권여선의 ‘은반지’가 출몰했고, 뇌공학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영혼이 뇌에 있느냐 심장에 있느냐’부터 감히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술김에’라고 밖에. 이런 자리에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한 들, 모인 사람 중에 이를 요목조목 따져 질서를 바로 세울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말의 무한질주다.      


“나 예전에는 나쁜 애였어”

미정이 이런 고백을 스스럼없이 내놓는 바람에 우리는 한때 엄마의 지갑을 슬쩍하던 비행의 한 페이지를 식탁 위로 올려야 했다. 50원에서 1000원까지 죄의 크기도 다양했으며, 한 자리에 모인 우리는 공범이어야 했으므로 막무가내식 죄의 고백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흰 눈은 내리고 이야기는 푹푹 쌓여갔다.      

“언니는 말이 동글동글해. 너무 사랑스럽다고. 그리고 자기는 가는 얼굴 선에 말은 좀 각이 있지. 음... 오각형 내지는 사각형? 아니지 사각형은 나니까 육각형쯤으로 하자. 푸하하하”

그리고 이어진 말

“얼굴이 고운데 말까지 우아하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닐까” 이런 말까지.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취중에 내뱉은 말은 이미 알고 있던 인격체와는 전혀 다른 인격체에서 나온 말이므로 귀담아들을 필요 없다는. 술자리가 파한 다음에도 기억이 살아있는 걸로 보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책으로 인연을 맺은 우리들은 여러 종류의 책들과 시녀 이야기를 쓴 작가의 다른 책 이야기를 했고, 우리들이 쓰는 수백 가지의 가면들에 대해서, 그 가면들의 쓸모에 대하여 과한 열변을 토한 건 다 그 빛 좋은 포도주 탓이다. ‘낮술의 횡포’라고 낮술에게 모든 죄를 몰아주기!!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나타샤를 사랑하여 눈은 푹푹 날리고 여기까지만 발설해도 백석의 시 속 풍경을 거니는 느낌이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속의 눈 오는 풍경들이 자주자주 나타났다 사라졌다. 잘 마른 소금 같은, 팝콘 같은, 하얀 쌀가루 같은.     

이때 구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저녁 먹고 갈게”

이런 타이밍이 있나. 쾌재를 부르는데 정방형으로  접혀핸드폰에서 미정을 찾는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들어가니까 저녁 준비해 줘”

이렇게 우리는 다시 재투성이 아줌마로 복귀해야 했다. 첫눈과 함께 선물 같은 하루가 갔다.


눈보라가 치던 날, 도서관에서 내려오면서 복학생형이 불러 준 노래가 생각났다.

‘바람이 불어 나리는 눈이 두 뺨에 스쳐 차가운데 그리운 님을 만날 것 같아라 마냥 눈길을 나선다 ~~아~아 수~~천의 님의 얼굴 나를 보고 달려오네~~” (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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