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순 Mar 18. 2022

16. 교차로

꽃을 피우는 사람

찰나의 마주침이 있는 곳에 꽃이 핀다. 장석주 시인은 꽃은 피요 대지의 웃음소리라고 했지만 나는 꽃을 두 개의 다른 파장이 만나는 곳에 에너지가 폭발하듯 생성되는 에너지, 그것이 꽃이라 말하고 싶다. 두 개의 긍정 에너지가 만나야 꽃은 핀다. 오늘 꽃이 피었다.
 
 아주 오랜만에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전에 보내 준 내 책을 다 읽었다 했고, 산책을 하다가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노라고. 난 내 책, 첫 페이지, 밤 새 눈 내린 운동장 같은 노란  공간에 그동안 너무 가까워서 하지 못했던 ‘사랑하고 고마운 언니에게’라고 사인과 함께 적어 보냈다.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지 못하고 살아서 열 자를 적는데도 연애편지처럼 손이 오글거렸다.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언니와 나는 여덟 살 차이가 난다. 일방적인 보살핌을 받았을 뿐, 우린 조용하게도 호들갑스럽게도 속내를 표현하는 걸 일찍이 배우지 않았고 해 본 적도 없으니 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문득 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
 
 "잘 읽었어. 너무 애면글면 살지 마. 너무 열심히도. 책도 너무 열심히 읽지  말고 글도 대충 쓰면서 살아. 언니도 곧 엄마 만나러 갈 때가 되었나 보다. 사는 거 별거 없어. 자식은 손님이라 여기고 오면 환대해 주고 맛난 거 해  먹이고 그러면 돼. 그게 다야."
 ‘고생했다’ ‘잘 썼어’를 기대한 나에게 언니는 대뜸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고 했다. 너무 좋은 엄마 되려고도 하지 말라고. 키워 놓으면 다 손님 된다고. 그러면서 말끝을 흐렸다. 내가 울면서 썼던 문장들이 소화되지 못하고 언니 몸 구석구석을 찌르고 다닌 모양이었다. 코끝이 매웠다.
 
 돌이켜 보니 엄마가 그랬다. 다정하고 따듯한 사랑의 말을 자식들에게 달콤하게 할 줄 몰랐던 엄마는 사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들을 투박한 일상 언어에 섞어 툭툭 던지듯 말하곤 했다. 시집가서 생전 안 해보던 묵 솥을 닦겠다고 나섰다가 고생한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시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듣고는 "이것아, 묵 솥은 며칠 불렸다 닦아야 하는 거야."를 웃지도 않고 반복하시던 우리 엄마. 지금도 묵 솥만 보면 한, 삼 사일 불렸다 닦는 거라던 엄마의 말이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하루의 긴 시간 속에 많은 사람을 교차로에서 만나고 멀어진다. 그 엇갈림의 순간에 그와 나의 에너지가 서로 간섭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지점. 그곳에 꽃이 핀다. 나를 살리는 에너지가 몸 어딘가에서 용솟음치면서 꽃이 만개한다. 모든 마주침이 꽃으로 피어나는 건 아닌데 그건 아마도 서로에 대한 환대가 부족해서겠지.      


사람이  꽃이다.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 꽃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잠시 멈춰 생각한다.  나를 증여하여 세상의 에너지를 증폭시킬 것인가 아니면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피어나는 꽃봉오리의 목을 부러뜨릴 것인가. 나는 꽃을 피우는 사람인가, 꽃을 꺾는 사람인가.  나는 봄인가 겨울인가.
 
 문득 온갖 화초들로 가득한 언니네 꽃밭으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일구어도 좋을 자리에 언니는 온갖 희귀한 꽃들의 씨앗들을 구해 해마다 파종한다. 밭을 매듯 꽃밭에 김을 매며 ‘예쁘게 피어라, 예쁘게 피어라혼자 구시렁거리고 있을 언니의 혼잣말이 들리는 듯하다. 지금쯤 예쁜 여름 꽃들이 만발해 있겠지. 교차로를 건너며 중얼거렸다. “걱정 , 언니. 하나도  힘들어.‘
 
 
 20180718

매거진의 이전글 15. 비닐우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