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이거 내 거야(It's mine)
짱구 나이가 되면 보통 '내 것'에 대한 의식이 부쩍 생긴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 것도 내 것, 남의 것도 내 것이다.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한참 재밌게 놀고 있어도, 옆에 친구가 비행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치면 얼른 달려가 비행기를 뺏들어야 직성에 풀린다. 그냥 세상에 있는 전부 다아아 내 걸로 하고 싶은 거나 진배없다.
반면 짱구는 또래에 비해 조금 늦게 소유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이 뭐 달라고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내어주고, 조금 심할 때는 남이 다가오는 기척만 느껴도 먼저 건네주곤 했다. 이웃 부모들은 짱구가 너무 착한 거 아니냐고 칭찬을 했고, 와이프와 나는 싸워보기도 전에 백기 투항하는 순둥이 같은 짱구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놀이터에서는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과 그 가족들 수백 세대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는데, 아이들이 본인 장난감을 가지고 왔다가 집에 들어갈 때에는 그냥 놀이터에 놔두고 간다. 장난감이 쌓이고 쌓여 이게 누구 것인지 모르는 경지에 이르게 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 있는 어느 장난감이든 가지고 놀아도 된다. 전설적인 장난감들은 고대 그리스 유물처럼 대대로 전해져 내려와 1년 전 유학 다녀왔던 분도 '놀이터 그 장난감!'이라고 하면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이다.
동네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놀이터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짱구가 모래밭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하길래 바로 옆에 있던 부모에게 물어봤더니, "It's part of the park"라는 답변을 받았다. 여기서도 주인 신경쓰지 않고 장난감 갖고 놀아도 문제 없었다.
짱구는 굳이 장난감을 많이 살 필요가 없게 되어 경제적으로도 흐뭇했다. 물론 우리가 직접 산 장난감들도 금세 다른 아이들이 갖고 놀고 가끔은 없어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오늘도 며칠 전 구입한 짱구 자전거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다양한 장난감을 사용해서 얻는 이득이 컸다.
이렇게 되면 희한한 게, 묘한 공동체 의식 같은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놀이터는 모두가 주인인 곳처럼 느껴지면서 옆에 있는 아이의 부모에게도 괜히 믿음이 간다. 마치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우더라도 처음 본 그 부모에게 내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신뢰는 놀이터에서 마을 전체로 확장되어, 비단 우리 집 현관문이 아니라 마을 입구에만 들어서더라도 우리 집에 온 것 마냥 편안해진다.
최근에서야 짱구가 "It's mine"이라며 내 것이라는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늦어진 건 놀이터에 나뒹구는 수많은 장난감 덕분일까? 나 역시 다른 친구들 장난감 덕을 보고 있으니 반대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관대해질 수 있다는 걸까? 이런 분위기라면 내 것을 잘 챙기든 잘 못챙기든 걱정할 바는 없어보였다.
놀이터에 각자 장난감을 놔두고 가는 거뿐인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향력이 퍼져 나가 이웃과 마을에 대한 신뢰가 높이지는 기적을 경험해보는 중이다. 그래서 1년 후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도 먼저 동네 놀이터에 짱구의 장난감을 한 아름 놔두고 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