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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Mar 27. 2022

아지, 깡!

번역 : 강아지

짱구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우리 부모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돌이 막 지났을 무렵부터 봐왔고, 여기 미국에서도 주변에 반려견을 키우는 이웃이 많아서 그런지 친숙한 모양이다.


그런데 짱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아지를 '아지, 깡'이라고 불렀다. 이유인즉슨, 짱구가 강아지라는 말은 따라 하지 못하고 아지(아저씨를 의미하고, 자세한 내용은 지난 에피소드 중 '아지, 아지' 참고)라는 말만 할 줄 알길래, “짱구야, '아지' 에다가 '강'만 붙여봐!”라고 했더니, 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아지, 깡!!’이라고 자신 있게 소리쳤다.


아니 그게 아니라고, 아지 앞에 강을 붙여서 말해야 한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씩 웃는 거 봐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미국식 first name - last name 구조에 익숙해진 건지 도통 모르겠다.




여하튼 강아지를 비롯한 모든 동물을 좋아하는 짱구에게 집 근처에 있는 농장은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이다. 돼지나 소, 염소 등을 눈앞에서 보고, 집에서 미리 싸들고 간 야채를 직접 먹여보기도 한다. 때론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양 옆에 펼쳐진 들판에서 거닐고 있는 말이나 소를 보곤 하는데, 울타리라는 게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정도로 드넓은 초원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동물 한 마리당 차지할 수 있는 면적이 족히 논, 밭 하나는 되어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짱구가 동물을 좋아해도 동물원에 데리고 가는 건 조금 망설여졌다. 짱구가 보는 동화책 중에서 백이면 아흔아홉은 동물이 주인공이라(예를 들어 뽀로로는 펭귄, 포비는 북극곰, 에디는 사막여우) 책에서 나온 동물들을 짱구에게 직접 보여주고픈 게 부모의 당연한 욕심일 텐데, 과연 동물원 우리에 갇혀있는 동물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한지는 고민이 되었다.


솔직히 짱구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환경오염이나 자연보호, 생물의 다양성 같은 류의 이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덜컥 짱구가 생기고나니(우리는 계획하지 않았다!) 위의 이슈들은 눈앞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적어도 짱구가 이 세상에 나오게끔 한 사람이라면 짱구가 나이 들어서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산과 바다, 공기와 동식물 친구들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책임감'과 과연 그때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감'에서 비롯된 것이, 동물원에 가야 할지 여부를 고민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결국 가까운 오클랜드에 있는 동물원에 한번 가보았다. 까불딱거리는 원숭이와 연신 되새김질하며 입을 움직이는 기린을 지나 코끼리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런데 덩치 큰 코끼리가 금방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좌우를 살펴보니, 저 구석에 코끼리 두 마리가 관람객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러니까 관람객을 보지 않은채 그 반대편으로 서서 벽만 주구장창 보고 있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먹이를 던져도 꿈쩍하지 않는 코끼리의 뒷모습이 처연하고 쓸쓸했다. 내가 어릴 때 보던 동물원보다 넓은 공간이겠지만, 코끼리가 원래 살던 야생에 비할쏘냐. 미안한 마음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뒤돌아보는데, 같은 마음의 와이프가 짱구에게 차분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짱구야, 코끼리는 원래 여기 사는 아이들이 아니야. 여기보다 훨씬 넓은 들판에서 마구 뛰어놀며 사는 아이들이야."



그 이후로는 동물원에 가지 않았다. 샌디에이고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물원이 있다고 들었지만 깨끗이 포기했고, 리조트에서 하는 돌고래 체험 쇼에는 일부러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만 안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만은, 그래도 찾는 사람이 줄어들면 동물원이나 동물 체험도 서서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우리의 행동을 위안해보았다.


간혹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에 치어 길가에 쓰러져있는 동물들을 보게 된다. 순간 눈살이 찌푸려지고 안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원래 너희가 사는 동네인데 괜히 도로를 만들어 이렇게 되었구나 싶은 마음이다. 사람이 길가로 치운 건지, 아님 동물 친구들이 도와준 건지, 아님 스스로 마지막 힘을 짜내어 옆으로 빠져나온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새 쌩 지나가고 애도하기에도 너무 짧은 1~2초 사이에 명복을 빌고 계속해서 액셀을 밟는다.


앞으로도 나는 뒷자리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운전대에서 손을 뗄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운전대를 잡은 열 손가락 중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내어 성호를 그으며 마음 아파할 것이고, 최대한 동물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운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게 짱구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대안 : LA 있는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of Los Angeles County)을 다녀와서 하는 말인데, 실제 동물과 감쪽같이 똑같은 모형으로도 충분한 교육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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