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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Mar 08. 2022

아빠 짜 뿌웅 빠다

번역 : 아빠 차 타고 바다 가자

짱구는 바다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얕은 파도와 모래사장이 만나는 교집합 언저리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 겁이 나서 물속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발목을 간신히 덮을 만한 파도 속에서 깨작거리며 노는데,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마치 본인은 바다 깊숙한 곳에서 모험을 즐기는 마냥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여기 살면 좋겠다 싶은 게 몇 개 있는데, 예를 들면 버려진 땅덩어리, 저렴한 과일 가격, 더 저렴한 골프장 가격 등등 있지만, 가장 부러운 건 '날씨'다. 특히 Bay Area 지역은 1년 중 대부분 바다에 놀러 갈 만한 날씨라서 주말마다 아빠 차 부웅 타고 바다로 간다. 살갗을 따스히 감싸는 햇빛과 대비되는 서늘한 바람, 발바닥에 촥촥 감기는 고운 모래를 밟으며 뛰노는 짱구. 넌 참 복 받았구나!(와이프 잘 만나 휴직하고 놀고 있는 나 자신도 복받았구나!!).




가끔 와이프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생 코스프레하며 캠퍼스를 거닐곤 하는데, 이 천국 같은 날씨 덕분에 패기 있는 남자애들상의입지 않은  가방만 매고 니고, 잔디밭이든 계단이든 아무데나 눕거나 때론 엎드려 부하기도 한다. 공부란  가로 세로 1미터 남짓한 책상에  자세로 앉아서 하는 거라고 알고 있는 나이기에, '저러면 배가 시릴 텐데  공부가 되겠어?  바닥에 엎드리면 배탈 나서 화장실 가야  ?' 삐딱한 시선을 날려보지만, 어떤 기분인지 궁금도 해서 잔디밭 구석에 앉아 한번 따라해 보았다.


떠들고 웃는 20대 어린 애들의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잎이 나불대는 소리 등 갖가지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리는 와중에 햇살 아래 나 홀로 있는 듯한 느낌. 이따금 고개를 들어 나무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하는데,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홀가분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모순된 감정은 무엇일까.




약 15년 전,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속 좁고 예민한데, 당시에는 수험생이라 밴댕이 소갈머리 레벨이 극치에 다다를 때였다. 책상이 벌집처럼 붙어있는 독서실 내부는, 지금처럼 백색소음기도 잘 없을 때라(아, 옛날 사람..) 고요 그 자체 했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휩싸여 가히 심할 정도로 조용함을 유지했다. 독서실 안에서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하려고 발목 관절에 최대한 신경 써서 걸어 다녔는데, 친구는 나에게 '유령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의 소음에는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소음에 신경이 꽂히면 더 이상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조용한데, 저 자는 어쩜 저리도 배려심 없이 큰 소리를 낼 수 있지?'라는 마음에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가 코미디인데, 나도 같이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파국이닷!!!). 연필도 떨어뜨리고 책장도 파워풀하게 넘기고 기침도 막 크게 하고. 아마 상대방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나 혼자 미지의 소음 발생자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어느새 독서실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채 전투에 패배한 사람 마냥 독서실 문을 터덜터덜 나섰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기기도 하고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으이그, 왜 그런 소음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음을 끙끙 앓았나 싶다. 대체 어떤 요소들이 결합하여 밴댕이 기질을 빚어낸 거야! 여기 웃통 벗고 벌러덩 누워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니 조금 알 거 같기도 하다. 공부를 꼭 독서실에서 해야 하는 건 아닌데, 독서실 아닌 곳에서 하면 시험에 떨어질거 같았나. 삶을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데, 매번 몇 개 없는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래서 그 경계가 불분명한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키며 짱구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짱구야, 인생에 정답은 없어. 두려울 것도, 쫄 것도 없어. 저 넓은 바다처럼 마음도 크게 갖고 꿈도 크게 가지렴!"


짱구에게 하는 말이지만, 왠지 나에게 건네는 말 같아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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