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아니야 채훈이 스스로 할 거야
겁만보 짱구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뭐든지 아빠 엄마가 해달라고 졸랐는데, 점점 본인이 하겠다고 한다. 자기 의사가 뚜렷해지는 건 바람직하지만, 중간과정 없이 훅 바뀌니까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다.
일단 방문을 여닫는 것, 형광등 불을 켜는 것은 무조건 짱구가 해야 한다. 혹여 내가 먼저 했다가는, 바로 ‘아니야 째운’을 듣기 십상, 어쩔 수 없이 두 번 방문을 여닫고, 두 번 형광등 불을 켠다. 말만 들으면 양호하지, 본인 가슴을 세차게 치거나, 때로는 내 손을 탁 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손을 씻겨주려고 하자, 고개를 홱 돌려 째려보고는 버럭 "아니야!!"라고 소리를 꽥 지르는데… 순간 진심으로 화나고, 서글프고, 서럽고, 상처받아서 소파로 돌아와 한동안 창 밖을 보며 앉아있었다(또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속 좁은 게 티 날 거 같아서, 금방 괜찮은 척했다).
사실 와이프와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겁만보들이다. 어릴 때부터 개근상은 기본이요 나라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한치의 어긋남 없이 이수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보지 못했던 세계를 마주할 때는 도전의식보다 온몸이 경직되는 게 우선이었다. 나를 둘러싼 울타리 안에서는 자유롭게 춤을 추지만, 그 울타리 안 면적이 코딱지만하다.
자연스럽게 짱구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재단하여 사전 차단하게 된다. 이건 위험해서 안되고, 저건 지저분해서 안되고, 그건 남의 것이라 안된다. 짱구 눈에는 호기심 넘치는 게 수두룩한데,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짱구가 가장 빨리 배운 한국어 중 하나가 '아니야'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놀든, 미끄럼틀 지붕 위에 올라가든 개의치 않는다. 기저귀 패션으로 놀이터 바닥을 빗자루처럼 쓸고 기어다니는 베이비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여기서 베이비들이라 함은, 짱구가 본인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을 지칭하는 말로써, 대략 첫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들을 말한다). 미국 생활 초반에 충격을 받은 장면이 있는데, 14살 남짓 되는 여자 아이가 아파트 2층 높이쯤 되는 놀이터 지붕 위에 올라가 걸터앉아 있는 것이었다(이후로 그 여자 아이가 놀이터에서 보이면 나도 모르게 슬금 피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까지 방치하면 안 되겠지만, 충분히 혼자 할 수 있거나 약간 위험한 상황이라면 되도록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방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넘어져서 조금 다칠 수도 있고, 옷차림을 가볍게 해서 콧물이 좀 나올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이들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걸 이겨냄으로 인해서 아이들은 더욱 성장한다.
하지만 짱구는 모른다. 아니야 아니야를 수천번 외치며 혼자서 의기양양 다닐 때도, 그 뒤에는 항상 엄마 아빠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뛰어갈 때는 항상 그 뒤에서 같이 뛰는 엄마가 있고, 어디 기어 올라갈 때는 항상 그 밑에서 손을 뻗어 상시 대기하고 있는 아빠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나 역시도 그렇게 컸겠지. 나 혼자 잘 자랐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억 1도 나지 않는 그 어릴 때 내 뒤에 졸졸 쫓아다닌 누군가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는게 아닐까(잘 된 모든 것은 오롯이 본인이 이뤄낸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는 와이프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보고 있나).
조금씩 짱구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 형아들에게 조금 밀쳐지거나 뛰다가 넘어지더라도, 순간 도와주려고 몸이 앞으로 나가는 본능을 억누른 채 그대로 놔둔다. 그렇게 짱구는 성장할 것이고, 그렇게 짱구는 나의 도움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
그래도 방심하면 금물이다. 아직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양말 벗기 정도가 전부인 짱구가 언제 이렇게 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야 째운...... 아빠아아??? 아뽜와아아아아아아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