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짱구의 어린이집 친구 조슈안
최근 짱구는 어린이집 친구 중 '조슈안'과 특히 친해진 모양이다(내가 보기엔 '릴리'나 '소피'와도 친해보이지만, 와이프가 질투하는 것 같아서 릴리와 소피 얘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매일 어린이집에서 데리러 오는 길에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라고 물어보는데, 부쩍 조슈안 얘기를 많이 한다. 낮잠시간 짱구 옆자리에서 자는 친구도 조슈안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어린이집에 갈때마다 조슈안이 반갑게 뛰쳐나온거 같다. 그것도 맨발로.
조슈안은 흑인이다. 부모님(일단 여기서는 '부모님'이라고 하겠다)은 두분 다 백인이고, 두분 다 남자다. 다시 말해 동성(同性) 부부이다. 처음 어린이집 부모들 모임을 가졌을때 와이프와 나는 흠칫(사실 많이) 놀랐다. 다른 부모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이길래 우리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을 뿐이었다. 이곳이 성적 소수자들의 수도와 같은 곳이라는 말을 어린이집 부모들 만남에서부터 실감했다.
Bay area,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것을 비롯하여 성적 소수자들에게 관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군 복무하며 동성애자가 된 젊은 미군 남성들이 어차피 고향에 돌아가도 성적 지향 때문에 편견에 시달릴 바에 날씨 좋은 샌프란시스코에 눌러앉겠다! 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의 미치도록 좋은 날씨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음식점이든, 커피숍이든 심심찮게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는걸 볼 수 있다.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동성 커플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사회 곳곳에서 “너희 괜찮아, 응원하고 있어”라고 속삭이는듯 하다.
조슈안의 부모 중 A는 아시아계 남자로서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조금 수줍어하는 친구였다. 다른 부모인 B는 미국 백인 남자였고 수더분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뭐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소수자로 살아가기까지, 거기다가 A도 B도 아닌 다른 인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을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졌다.
남자인 내가 아빠이고 여자인 와이프가 엄마인 것, 물론 가장 흔하지만 당연한 것은 아닌데 이걸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 편견에서 얼마나 힘들까? 안그래도 애 키우는 것만으로 얼마나 힘든데!
아빠와 엄마 중 한 명이 키울 수도 있고, 삼촌이나 이모가 키울 수도 있으며, 조슈안처럼 생김새가 다른 부모와 같이 살 수도 있고, 아님 혼자서도 잘 자랄 수도 있다. 이 모든 ‘다른’ 것들이 흔치 않을 뿐 이상한게 아니라는걸 짱구에게 지금부터라도 가르치……기 전에 나부터 먼저 알고 있으려 한다. 그저 관념적으로 아는척 하는거 말고 정말로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연습. 그렇게 바뀌기 시작하면 언젠가 고 변희수 하사와 같은 말도 안되는 비극은 다시 일어니지 않을거라는 꿈과 함께 말이다.
조슈안, 이 보석같은 아이가 아름답고 용감한 부모와 함께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삶을 영위하길 바란다. 호수같이 깊은 눈망울과 반들반들한 피부를 가진 녀석, 혹여나 사회와 사람들이 너를 품지 못할 때에는 너가 더 큰 마음으로 그들을 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 속에서 Haste 어린이집 동기 동창이자 낮잠 옆자리 짝꿍인 짱구가 너의 큰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다.
못다한 말 : 어린이집 부모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조슈안 부모와 인사를 하는데, 나는 아무생각 없이 "I'm 짱구's father OOO"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부모들은 "I'm OOO"라고 본인 이름만 소개했더랬다. 동성 부부 앞에서 굳이 "아빠"라는걸 힘주어 강조하다니.. 관념적으로만 아는척 하는 전형적인 사람(바로 나..)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인 셈이다. 혹 조슈안 부모를 또 보게 되면 미안함과 존경함을 가득 담아 맛있는 커피와 간식을 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