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 놀이터 가자!
여기, 내가 사는 동네에는 놀이터가 아주 많다. 조금 과장해서 블럭마다 하나씩 있다. 미국이야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동네라고 해도 그렇지, 고속도로 옆 빈 공터에 놀이터가 있고, 도저히 사람 사는 동네라고 볼 수 없는 곳에도 놀이터가 있다. 이쯤되면 '00평방미터 이상 면적의 무계획 부지에는 놀이터를 설치한다'라는 법이라도 있는게 분명하다.
그래서 짱구가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주말에는 도장깨기 하듯 주변에 있는 놀이터를 탐방하고 있다. 구글 맵에 검색하면 별점과 함께 놀이터들이 후두둑 뜬다. 이번 주말은 여기, 다음 주말은 여기,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고 미끄럼틀, 그네, 시소(이하 '미·그·시')가 놀이터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등산코스에 있는 놀이터에는 커다란 바위 모형이 있어서 아이들이 기어올라간다. 바닷가 근처 놀이터에는 모형 배가 있어서 한번쯤 선장실에 들어가 운전대를 잡아봐야 한다. 캘리포니아 과학센터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는 수학기호나 도형을 형상화한 듯한 기구들이 즐비하다. 미니 회전목마에서 하루종일 돌고 있는 아이도 있고, 인공 시냇가에서 수로를 만들고 있는 아이도 있다.
연령대별로 놀이터를 구분해놓기도 한다. 3세 이하를 위한 놀이터는 높이가 낮은 기구들 중심이고, 놀이터에 들어가는 문 손잡이도 바깥쪽에 위치하여 어른들만 문을 열수 있다. 물론 3세 이상을 위한 놀이터는 좀 더 다이내믹하다. 다만 어느 놀이터든 외부와 철저히 분리하여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일은 거의 없다.
놀이터가 이 정도이니,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은 실로 으마으마하다. 오감을 사용하여 체험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붓으로 조각품에 색을 칠하거나, 직접 모형을 조립하고, 미끄러운 바닥에서 양말을 신고 마음껏 스케이팅 놀이도 한다.
하지만 여기와서 가장 놀란 건, 금문교(Golden Gate Bridge)가 멋드러지게 보이는 땅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어린이 박물관(Bay Area Discovery Museum)이었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또는 쇼핑몰이 아니라, 어린이 박물관이라니! '이 부지에 어린이 박물관을 짓겠습니다'라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나, 그걸 좋다고 결재한 사람이나, 대체 어떤 뇌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일까?
문득 한국의 놀이터가 떠올랐다. 집 앞에 놀이터가 있었지만 기구가 몇 없거나 바닥이 딱딱했다. 철봉과 평행봉도 같이 있었으니,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 겸 어른용' 놀이터인 셈이다. 같은 동네에 있는 아주 비싼 아파트의 놀이터도 가보았지만 미·그·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주택 머머, 안전 머머 법령에 따라 만드는데 급급했으리라.
1년 뒤 짱구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안전하고 다채로운 놀이터에서 뛰어놀기를 바란다. 내 조카들과 짱구의 친구들, 그 또래 아이들 모두 그러하길 바란다. 그건 결국 정책입안자와 결정권자 등 '어른들'의 몫이겠지.
나도 아내도 이 마음 고이 간직하여 한국에 돌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만약 된다면, 되기만 하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수십개 짓겠다 라고 서로 약속했다. 그래서 난 오늘도 짱구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어김없이 슈퍼에 들러 파워볼 몇 장을 구매했다. 이번주 1등 당첨금액은 $172 million(환율이 약 1200원이니까, 약 2천어..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