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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 Feb 19. 2024

인생이 고달플 땐  왜 산에 가야 하는 것인가.

Grand Teton in Wyoming


가끔 힘들 때,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내가 힘들 때, 우연히 나보다 더 힘들고, 더 고단해 보이고, 더 불행해 보이는 타인을 보게 되면 순간적으로 겸허해지는 느낌.


‘ 아…. 저 사람에 비하면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느낄 때 말이다.  


난 산을 볼 때 그런 느낌을 갖는다.


‘ 아, 저 산의 굴곡진 생에 비하자면  내가 지금 힘든 것은 그저 순간, 찰나를 스쳐가는 것.

그리하여 흔적조차도 없는 무게겠구나’


Grand Teton National Park in Wyoming

나와 그녀가 거쳐간 수많은 공항 중 아름답다 손에 꼽 곳은 바로 Wyoming 주의 관문 잭슨 홀 공항 (JAC)이다.

인천 공항 같은 최첨단의 모던함 혹은, 인공적인 웅장함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취향에 동조하기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곳은 공항 이라기보다는 마치 성북동 어디쯤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 비행기가 들고나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그곳에서는 비행기의 움직임마저도 음전하다.


간소하고 소박하나 꾸밈이 없이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에는 화려하게 치장하여 웅장한 그것이 감히 넘보지 못할 우아함이 있다.


다소곳하고, 잠잠하여 아늑한 느낌의 잭슨 홀 공항을 나와, 미국의 최초이자 최대의 국립공원인  Yellowstone을 향해 갈 때만 해도 우리는 짐작하지 못했다.


나와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게 될 그곳이 그렇게호젓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Yellowstone이라는 엄청난 국립공원의 위세에 눌려, 그저 잠깐 들러 가는 곳 마냥 여겨지지만, 쉬이 지나쳐 갈 수 없는 그곳은 바로 Grand Teton National Park이다.


산의 생애도 인간사 마냥 굴곡이 있다면, 누구보다 서러울 굴곡 많은 생을 살아왔을 Grand Teton이다.


개인적으로 미국 내 국립공원 중에 마음의 울림이 가장 큰 곳이 어디였느냐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Grand Teton이라고 답하겠다.


Teton’s Life


자, 이쯤에서 그녀와 나의 취향에 관한 설명은 줄이고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생이 고달플 때 왜 산에 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Grand Teton의 탄생 과정을 들여다보며 풀어내 보겠다.


Wyoming 주 북서부에 위치하며, Yellowstone National Park의 남쪽으로 확장된 영역인 Grand Teton 산맥은 수 백 만년 동안 매우 복잡한 지질 활동을 통해 형성 되었다.  


그렇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뭐 어디, 다른 어떤 산은 그렇지 않은가?!라는 생각.


우리네 인생 우여곡절이 다 같은 것이 아니듯, 산의 탄생 과정도 다 같은 지질 활동이 아니란 말이다.  


인생에 비유하자면, 쓴맛 단맛,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Grand Teton이란 말씀.


그리하여, Grand Teton의 고단하고 파란만장한 탄생부터 지금에 이른 형성 과정이 다른 산의 그것과 비교하여 훨씬 더 혹독 했기에 현재의 Grand Teton의 사납고, 거친 봉우리들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인생사가 세월을 통해 점차 얼굴에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아늑히 머나먼 옛날, 지질 활동에 의해 생겨난 Teton 단층이 동쪽은 더 아래로 , 서쪽은 계속하여 높이 솟아오르면서 정상은 해발 4,197m까지 치솟았다.


그 후 신생대에 이르러 우리가 상상할 수 도 없는 거대한 빙하는 산을 조각하기 시작한다.

솟아 오른 Grand Teton 산들의 봉우리들이 지금과 같이 우악스럽고 신경질스럽게 찌를 듯한 모습을 갖도록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빙하이다.


빙하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빙하는 흙과 돌들을 아래로 끌어내렸으며, 동시에 Grand Teton의 산들을 더욱 날카롭게 조각하였다. 계곡은 U자형으로 깊게 파내어 깎아 냈다.


빙하는 가장 낮은 지대에 흘러 들어와서는 구덩이를 만들고 그곳에서 빙하는 마침내 녹아 빙하호를 만들었다.

투명하게 맑은 빙하호는 Grand Teton의 얼굴을 그대로 비춘다.



다시 그 빙하가 녹은 물은 흙과 함께 흘러 나가면서 말 그대로 구불거리는 뱀 모양의 넓고 긴 Snake River을  만들었다.

강 유역엔 드넓은 퇴적평야가 생성되었다.

바로 이 평야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종류의 야생 동식물의 터가 되어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무려 1천만 년의 시간에 걸쳐 일어났으며, 현재도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나는,

이러한 산의 장중( 莊重)한 생(生)의 과정을 마음에 그려본다.

지쳐 초연 (超然)한 마음으로 산을 본다.

존재의 생명력에 대한 신비로움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세속에서 이고 지고 여기까지 끌고 왔을 모든 번민과 괴로움이 이곳에서 이미 소멸되어 스러져 저 앞에 흩어진다.


1천만 년이 흘러 잠시 내 눈앞에 있는 Grand Teton의 역사는,

태어나서 생명을 얻어가는 과정이었을까?

아니면, 가혹한 변화와 파괴됨 속에서 사멸되어 가는 죽음의 과정이었을까?


인간이 태어나서 삶은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을 얻어 가는 여정일까?

아니면, 죽음을 향해 가는 일련의 과정인가?


일몰을 보는 또 다른 방법


그녀와 나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을 즐긴다.  

따라서 미리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놓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보통  선셋을 보기 위한 좋은 위치는 적당히 높거나 시야가 뚫려 있어 넘어가는 해가 잘 보이는 곳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Grand Teton의 석양을 보는 장소는 뜻밖의 위치였다.

산에 올라 서가 아니라 산 밖의 평지에서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서 Grand Teton의 산맥과 봉우리들을 바라보는 의문스럽게 애매한 위치.


장막처럼 높은 산맥이 양 옆으로 장렬히 넓게 뻗어 있다.

위로는 하늘의 구름을 뚫고 솟아 있으니 해가 도통 어느 쪽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주변이 수상해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고 나서야 일몰이 시작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될까싶다.


산과 우리의 사이에 넓은 평야가 가로질러 있다.

이름 모를 풀들이 빼곡하다.

바람이 일렁이니 일제히 바람결을 타고 일어나 서걱 인다.

바람결이야 어떻든 간에 풀들은 무심상하여, 매우 절제가 있는 일렁거림이다. 

고요함을 더욱더 정적이게 하는 몸짓이다.


그녀는 무성한 풀 가운데로 발을 살포시 들여본다.

마치 그곳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도 찾아볼 요량인 듯이.

그녀는 조심스레 아슴아슴 풀 속 가운데로 차츰 멀어진다.


출처: https://www.nps.gov/index.htm

나는 고개를 들어 산 봉우리를 본다.


여름이지만, 저 위  Mount Moran의 봉우리는 만년설로 덮여있는 것인지, 하늘의 구름이 걸려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며 가는 산신령들이 그들의 하얀 가운을 살짝 걸쳐 놓고 간 것인지 부드럽지만 무심하게 걸쳐져 있는 흰색의 그것들이 날카롭고 차가운 암석 봉우리가 허전해 보이지 않게 덮어져 있다.


봉우리 위를 도는 바람은 필시 아래의 풀들 사이를 지나는 부드러운 바람결과는 다를 터이다.


빙하의 서슬에 깎이어 제 몸이 떨어져 나가고,

쓸쓸하게 처연한 그 자리를 바람은 품어 주기는커녕 서럽게 건드려 더욱 제 몸이 견디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과연 이것이 삶이었다 말할 수 있을까?

죽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뿌윰한 붉은빛이 뒤로부터 번져 온다.

번지는가 싶더니, 칼 춤을 추듯 훨훨 붉은 불길이 인다.

풀밭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가 돌아본다.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도 붉게 번들거린다.


해가 붉은 화를 뿜어낸다.
붉은 해가 탄다.
해가 산을 태우며 삼킨다.


얼마나 오랜 세월,

얼마나 수 없이 너는,

빙하에 깎이고, 바람에 흔들렸을까.

무시무종 (無始無終)의 영원한 세월을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너는 이토록 벌겋게 되어 삼켜지고,

머지않아 싸늘히 식어 창백해지길 거듭하였구나. 


여태 보아 온 일몰의 모습은 아름답고 따듯한, 그렇지만 애잔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일몰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스산하고, 잔인하고, 쓸쓸하며, 격정적이게 참혹한 일몰의 느낌.


붉은 해를 받은 Grand Teton의 모습에서 고통에 절규하는 얼굴이, 괴로움에 지쳐 아스러지는 듯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오른 힘겨운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만 같았다.


해는 산을 이리저리 마구 불태우더니 물러선다.

이제 하늘은 박명을 드리운다.

산은 싸늘하고 차갑게 식어 어둠 속으로 조금씩 멀어져 갈 것이다.  


그녀는 이미 풀 속을 헤쳐 나와 어느새 나와 나란히 산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산을 연신 되돌아보며 멀어진다.


산은 말없이 일러준다.


나를 들어 올려준 대지를 어찌 탓하랴.
내 몸을 깎아내던 서슬 시퍼런 빙하도
그저 한 시절이었다.
어제도 불고, 오늘도 부는 바람일진대,
이제와 새삼 원망할까.
그저, 지는 해가 나를 붉게 태워 줄 때 비로소 내일이 올 것을 기약하게 되니
그것이 곧 생명이자 죽음의 표상이다.


우리는 말없이 끄덕인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죽음에 눈을 감고 삶에 몰두하는 것에 의해서 충실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마다 죽음으로 선구 하면서 자신의 삶이 죽음 앞에서도 그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 무조건적이고 진지한 의미를 갖는 삶이 되도록 항상 깨어있는 것에 의해서 충실한 것이 된다.

<< 하이데거 읽기>> (박찬국,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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