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엔 뿌옇게 보였던 것들이
눈이 좋아서 뭔가가 잘 보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쁜 걸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다.
식물 뒤에 숨은 거미줄, 지저분한 먼지들,
더러운 오염물, 그리고 나쁜 사정들까지.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약을 먹고 나서 인지가 전보다 또렷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초점이 맞는 느낌이 든다.
잘 보이고, 더 많이 알게 되는 그런 느낌.
그런데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힘들어지는 이유들을 더 자세히 알게 되니까.
그래도 뭐,
나를 괴롭게 하는 게 뭔지 알아야 피할 수 있으니까.
결국, 잘 보이는 게 꼭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른 채로 사는 것보단 낫다.
결국 내가 겪어야 할 건
내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
피하지 않고 알아보려한다.
맞서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