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기억력이 없다는 것도 몰랐어.
나한테 얘기하지 마요. 다 까먹을 거야.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 손예진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했던 말이다. 나는 손예진이 아니라서 그렇게 멋지게 말하진 못한다. 나는 작업기억력이 약하다.
작업기억력은 정보를 짧게 저장하고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를 듣고 바로 기억해 누르거나, 머릿속에 숫자를 떠올리며 계산할 때 사용된다. 학습, 문제 해결,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상생활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도 필요하다. 특히 이 능력은 정보를 유지하면서 조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크게 발휘된다. 작업기억력이 약하면 집중력 저하나 시간 관리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작업 기억력이 없는 나는 붕어처럼 살았다. 3초 기억력이었단 말이다. "아, 방금 그게 뭐였지?"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당연히 큰 그림을 볼 수 없었다. 눈앞의 일도 자꾸 잊어버리는데, 어떻게 큰 그림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약을 먹고 나서! 세상에! 내가 달라졌어요!! 어머나!!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한테 말해도 까먹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되니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선 책과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어졌다. 전에는 순간순간 웃긴 장면, 디테일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면서 더 큰 재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콘텐츠는 여러 번 봐야 했다. 한 번 볼 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명작은 명작이라 재미있는건 다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재미있다. 그래서 다시 보고 또 보면서 간신히 소화해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처음부터 재미있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습관이 있었다. 집중이 안되서 영화를 집에서 보면 자꾸 졸거나 끝까지 안보더라구. 그래서 도망갈수 없는(?) 영화관에서 보곤 했었다. 이제 종합적으로 이해가 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OTT가 이렇게 많은 세상에 집에서 영화 즐기기 완전 가능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재미를 원래 알고 있었던 건데, 나만 몰랐던 걸까?
그동안 내가 놓쳤던 게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무심코 흘려보냈던 즐거움들이 이제는 나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고 있다. 하루살이 처럼 하루만 살다가 잠깐만 살다가. 세상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니 진정한 재미와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