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미 웅거러 스토리'
이 영화는 '토미 웅거러'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원래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만들어진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는 유독 감독의 애정이 영화에 배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애초에 영화의 첫 장면이 '본 영화는 토미 웅거러의 모든 정성과 마음이 깃든 예술 작품으로 영화를 봤으면 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니 말이다. 이런 애정 어린 당부의 말과 함께 시작하는 '토미 웅거러'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저 그런 동화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프랑스의 국경 지역인 '알자스'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렸을 때에 전쟁을 경험했다. 처음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림을 배우던 것이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있던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가 전쟁의 참혹함과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을 너무나도 이르게 깨달았다고 인터뷰어에게 털어놓는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그 일들 때문인지, 그의 그림에는 다른 아동 동화들과는 조금 다른 주제 의식이 배어 있었다. 그를 아는 지인은 그에 대해서 '그는 좋지 않게 인식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해 온 것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는 한 세대를 위한 아이콘으로 이야기되지도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이 부분에 이르자, 비로소 나는 '토미 웅거러'라고 하는 사람의 호기심이 생겼다. 그 느낌은 예전에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와 동일한 감정이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유년기에 전쟁을 경험한 그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은 그리 멀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아주 어렸을 적부터 '현실 감각'에 눈뜨게 되었다. 전쟁을 경험한 소년은 전쟁이 끝난 후에,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의 문학 서적들을 불태우는 환경을 보게 된다. 살기 위해서 독일어를 배우고, 쓰고, 익혀야 했던 그가 보기에 이 광경은 기이한 것이었다. '파시즘은 무엇인가', '독재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들을 너무 어린 나이에 했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학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상황에서, 그는 낙제하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들고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렇지만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당시에 잡지는 호황이었고, 광고들을 위한 일러스트 작가들은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TV가 없었으니 말이다. 기회를 잡은 그는 다양한 포스터들을 그린다. 독특하고, 그만의 개성을 가진 그림들이었다.
그가 그린 '크릭터'라는 동화가 있다. 그 동화의 주인공은 무려 '보아 뱀'이다. 지금은 동화책에 뱀이 주인공으로 등장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50년대 당시에 '뱀'이라고 하는 캐릭터는 아동 도서의 수많은 금기 중 하나였다. 뉴욕타임스 올해의 최고 책 부문으로 심사위원들에게 이 책이 전해졌을 때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우린 뱀을 그린 책에 투표할 순 없어!'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동 도서들은 귀엽고 착한 주인공들과 밝고 명랑한 세상만이 존재한다. 영화에서도 등장하지만, 그런 동화 속의 배경들은 아이들을 아이들로 남겨 둔다. 보통 혐오하고 기피하는 동물들에게도, 나름의 잠재력은 있다. 만화 속의 영웅처럼, 그들 나름의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준다. 아동 도서와 교육이 '삶의 취향'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있어서 '좋은 내용'만 있는 동화책들은 기준에 맞는 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현실 감각'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시대에 영향을 받았다. 한참 인종 차별 문제가 심했던 시절에, 그는 미국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그래서, 그는 차별에 대해서 그렸다. 베트남 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첨예한 갈등과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분노를 그림으로 토해냈다. 그는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다. 강렬한 감정뿐만 아니라, 위트를 담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 순간에 그렸던 포스터들에는 전쟁의 추악함과, 유머가 담겨 있었다.
차별과 전쟁, 그리고 미국에 불어닥친 또 다른 혁명은 성에 대한 혁명이었다. 그 시대를 건너오면서, 그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그림 또한 수없이 그린다. 그건 그저 그가 이전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다른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 그림들과 '아동 도서 작가'라는 타이틀과 결합하는 일은 그를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아동 도서 협회에서 연설을 하고 나서, '감히 아동 도서를 쓰는 사람이 성과 관련한 그림들을 그려도 되는 것인가!'하고 비난받는다. 그 사건 이후에, 그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가 그렸던 아동 도서들은 금지 도서가 되었고, 그는 떠난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한참 세월이 흐른 후였다. 상황이 진정되고,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데에는 몇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방인으로 등장한 그는 그렇게 다시 이방인으로 떠났다. 그는 알자스에서 독일, 미국, 아일랜드까지. 때로는 일을 찾아서,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서, 때로는 상황이 그저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다른 곳으로 갔다. 그의 딸은 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토미 웅거러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부분이 '정체성의 탐구'라고. 그가 비로소 안정을 느꼈던 것은 아일랜드에 가고 나서부터였다. 이방인으로만 남아있던 그는 그곳에서 안정을 찾는다. 소속감을 느끼게 되고, 다시 아동 도서를 그린다.
그의 그림은 그렇게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유머가 녹아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도, 풍자와 비판으로 그려지는 포스터에도, 포르노 그림에도 그랬다. 영화의 감독이 '절망 없이는 유머도 없다'라고 했었다. 그 말 그대로, 그가 삶에서 느꼈던 공포들이 현재의 '토미 웅거러'를 만들었다. 나는 그의 그림이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던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외면하던 것을 쳐다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문득 그의 그림책이 보고 싶어 졌다. 일종의 시험처럼 그의 그림책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나면 과연 '나는 무엇을 외면하려 하는가'를 느낄 수 있을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토미 웅거러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