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홀로 후쿠시마'
한 여름의 무더위가 지상 모든 생명체의 기운을 앗아가는 것 같다. 요새 방 창문에 붙어있는 곤충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힘을 잃어서 더 이상 어찌하지 못하고 그늘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면, 이 열기가 고된 것은 다들 똑같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저 무덥기만 한데, 늦은 봄과 초여름 사이의 온기에는 지금의 열기와는 다른 형태로, 기운이 가득하다. 그 계절에 약동하는 생명으로 가득한 땅 냄새를 맡아보는 것은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든다. 흙은 아직 여물지 않은 온기와 습기를 함께 머금고 있고, 하루 종일 머금은 온기는 곧장 피부로 와 닿는다. 그 온기를 머금은 풀들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생명력이 느껴진다. 왜 그런 것일까. 이따금 부는 실바람에 이파리를 팔랑거리는 모습에 혹한 것일까. 아니면 흙냄새에 취해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이상하게 내가 바쁠 때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가만히 멈춰있는 것 같았고 내가 쉬고 있을 때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였다. 지친 몸으로 그늘에 가 앉아서 멍하게 바라보는 세상은 그런 모습이었다. 다들 살아가는 방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만 그 흐름에 끼지 못한 것 같았다.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멈춰서 휴식을 취하는 일이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는데, 산다는 게 하고 싶은 일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두는 삶의 기준이라고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그 사람만의 삶이었지 따라 한다 해서 내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만의 삶의 기준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생소한 형태의 생각이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고향 땅을 두고 사람들은 여전히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한 사람은 그곳에 있었다.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에서 1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 도미오카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텅 빈 거리와 마을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은 마츠무라 나오토다. 그가 대피 명령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고 이후로 폐허라 생각했던 그 공간에는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하릴없이 남아있는 동물들이 있었다. 소, 말, 돼지, 타조부터 누군가의 애완동물들이었을 개와 고양이까지 수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대피 명령을 듣고 고향을 떠났지만, 동물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오토는 떠도는 동물들을 두고서 고향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에 남았다.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었지만 그곳에 생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생명체가 없었을 뿐이지, 사고 이전이나 이후나 다를 것 없이 동물들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오토는 수도가 끊겨서 물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 즉석식품으로 밥을 해 먹으면서, 그 동물들과 함께 생활한다. 그의 행동을 화면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굶주리고, 텅 빈 마을을 배회하는 동물들에 대한 책임감만으로 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떤 고민을 하고, 결단을 내린 것인지 짐작도 가질 않지만, 그의 행적은 많은 것을 바꿔냈다. 해외에서 초청을 받아 나가기도 하면서, 후쿠시마의 일을 알렸다. 국가적 실책, 사회와 개인의 비극으로 점철된 이야기를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은 그는 후쿠시마를, 도미오카 마을을 대표해 말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당연하게 죽음의 땅이라 생각했던 공간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생명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송아지들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고, 새끼 고양이들도 태어났다. 나오토는 그 동물들에게 밥을 줬다. 태어나는 송아지를 받아내었고, 병에 걸려 죽은 동물들을 땅 속에 묻었다. 나오토의 행동을 보면서 삶의 기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뻔한 질문이지만,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당연하게 못할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오토의 삶은 그동안 누군가의 삶을 결과로만 판단하면서 지내온 내게 큰 충격이었다. 말로는 과정이 중요하다 말했었지만, 스스로도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무엇이든 결과를 위해서 지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에 기준을 두든 과정에 그것을 두든 그저 삶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미처 공감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오토의 행동들은 하나하나 울림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일은 각자도생 하는 길일 것이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모든 과정과 결과라 말할 수도 있다. 삶의 끝은 온전히 혼자만의 것이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오토는 도미오카 마을에 홀로 남았지만, 그에게 있어 사고 이후의 생활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염원 또한 그에게 있었다. 어떻게든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실향민들의 모습은 그들의 일이 그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크나큰 사고와 책임지는 삶. 원전 사고가 발생한 과정과 그것을 수습해가는 과정 모두 배워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의 행동을 보면서 느낀 책임이라는 말의 무게는 천천히, 오랫동안 고민하게끔 만든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나 홀로 후쿠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