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크 크레이지'
오직: 여러 가지 가운데서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만.
모든 사랑의 시작이 신나는 음악으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심장이 이와 함께 두근거리는 이유는 어쩌면, 정말 어쩌면, 흔들리는 구름다리를 건너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공포심에 긴장한 머리가 내보낸 정보가 사소한 오류 때문에 '사랑'으로 입력된 것일지도 모른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의 이유에는 수만 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 나는 그 이름들을 거의, 아주 많이 댈 수 있다. 사랑의 출발점을 모를 수는 있다. 정확하게 언제 그런 확신을 가진 것인지는 모를 수 있다. 몇 마디 이야기와 함께, '피'는 평소보다 신을 내서 손가락 사이사이를 뺨을 온몸을 내달린다. 한 순간 '쿵!'하고 떨어졌든 머리를 '쾅'하고 울렸든 심장을 옥죄는 이 느낌이 가리키는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좋아한다는 것.
수없이 많은 날을 함께 보내왔는데, 정작 기뻤던 순간들과 행복했던 기억들은 빨리 감은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몇 시간은 갈 줄 알았던 노래가 이미 끝나 있음을 눈치챈다. 그 정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실없는 농담이나 해보지만,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건 매한가지다. 이미 끝나버린 노래는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정적이 싫다면, 다른 노래를 틀어야 한다.
두 사람은 얼마나 당겨야 하고, 얼마나 밀어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서로 무작정 당기려 했으니 한껏 줄어들었던 거리가 속절없이 튕겨져 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밀려나간 순간의 해방감이나 자유를 만끽하기도 잠시, 원하는 대로 밀어내지 못한 관계는 당길 힘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확신이 사라진 자리에 의심과 불안의 씨앗이 심어졌다. 확인할 수 없는 세상은 굳게 닫힌다. 함께 쌓아왔던 수많은 이해와 약속은 대상을 잃고 표류한다. 모래성은 한 번의 파도에 말끔하게 사라지지만, 이 감정은 깊고 단단하게 파인다.
패인 상처 안으로 한숨이 쌓인다.
만나는 순간도 중요하지만, 이별의 순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별의 순간이 결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라면 방학의 순간, 직장인이라면 출장의 순간, 그게 아니더라도 헤어짐의 순간은 다양하게 찾아온다. 애나의 순간은 비자 문제였다. 사실, 별거 아닌 문제라고 생각했다. 애나와 제이콥도 그랬고, 그 둘을 지켜보는 나도 그랬다. 저 둘을 따라서 나도 같이 눈이 멀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겨우 그런 문제가 둘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을 것처럼 보였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처럼 사랑을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고, 문제는 현실이다. 비행기 표값은 표값일 뿐이다. 표값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만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더 바빠야 하니까. 사랑이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현실도 사랑을 정당화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기 위해서 먼 거리를 달려가기도 하고, 무리해서 이런저런 일을 해낸다. 현실적으로 피곤한 일이거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렇지만 한다. 좋아하니까 그런 일을 '당연한 일'이라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좋아하니까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바쁘니까 연락이 뜸해지는 거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여유롭게 만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좀 참아보라 말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런 일들 또한 '좋아하니까'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같지만, 과정은 다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사랑은 많은 것을 이겨내지만, 시간만큼은 버겁다. 시간은 사랑을 둔하게 만든다.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냐고 따질 수가 없다. 속도는 다르지만 모두들 서서히 무뎌져 간다. 오지 않는 연락에 둔해지고, 읽지 않는 문자에 무감각해지고, 어쩌다 걸려온 전화는 괜스레 받기가 꺼려진다. 오랜만에 전화해서 반갑다는 소리보다는 왜 그동안 전화도 없었냐고 묻진 않을까. 상황도 좋지 않은데 혹시나 오라고 하면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꼭 어떤 식으로 되어야만 하는 관계는 없다. 결국 이 사랑도 내키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맞춰서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시간이 빚어내는 것이 무엇일까. '결과'인가 '결론'인가 아니면, '과정'인가. 때로는 모두가 바라는 끝이 너무 눈이 부시고 힘들어서 서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물 나기도 한다. 그가 헤실거리는 웃음을 떠올리기가 너무 힘이 드는 게, 그 일이 오랜 옛날의 일처럼 느껴지는 게 이젠 그저 막연하게 슬플 뿐이다. 괜히 지금 이 상황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슬프고, 힘들 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에 참지 못하고 엉엉 울 것만 같아서 차마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의 감정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다. 이런저런 음악을 풀어놓으면서 사람들을 홀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랑 영화가 그런 길을 간다. 이 영화는 좀 다르다. 사랑에 빠져드는 순간에는 음악이 느껴지지 않다가,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에 음악이 살아난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눈길을 따라 걷는다.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 부분이 있었다. 배우들의 감정선이 온전히 전해졌다.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찰리 컨트리맨 영화가 감각적이고, 세련된 모양으로 훅 밀어당겼다면 이 영화는 사랑의 역사를 따라 읽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세심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놓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다 보면, 이야기너머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분명, 웃을 수 있는데 눈물이 그냥 난다. 마지막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나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랑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반에다가 반을 더해서 하나가 되는 것일까 둘 나누기 둘로 하나가 되는 것일까. 무엇이 사랑인 건지 모르겠다. 둘의 값은 같지만, 과정은 다르다. 나는 이 과정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방식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나와 부족한 네가 합쳐져서 더해가는 게 사랑일까? 온전한 너와 내가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게 사랑일까? 사랑의 결론과 결과는 같은 걸까? 사랑의 결과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확실하다. 이 사랑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