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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Dec 07. 2017

예술은 폭발이다

영화 '천국으로 가는 계단: 차이 구어 치앙의 예술 세계'

 예술가 차이 구어 치앙.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폭발, 그것이 그의 국적이자 정체성이다. 차이 구어 치앙은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예술의 길에 들어선다. 화약, 폭죽, 불꽃놀이, 폭발 그리고 서예와 수묵화.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의 나열이, 중국인 ‘차이 구어 치앙’을 만난다. 예상하지 못한 접점에서 폭발은 연쇄충돌을 만들어낸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폭발음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 화려함과 소리에 매혹되어 스스로를 잊게 된다.


 차이 구어 치앙의 오랜 염원은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불꽃 다리'였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프로젝트는 1994년부터 시작한 기획이었다. 예술가의 '일념'은 수 차례의 난관 속에서도 본인이 피워낼 '꽃'을 향한다. 과정의 힘듦은 으레 예술이 그렇듯이 퉁치고 털어 넘길 일이었다. 30년의 과정쯤이야 뭐.

 한 사람의 예술가를 알아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시대의 역사와 함께하는 일이다.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성장 배경을, 성장 배경을 보기 위해서는 환경을 알고 있어야 한다. 차이 구어 치앙은 중국의 현대사와 함께했다. 문화 대혁명, 개혁·개방을 겪으며 자랐다. 동네 유명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 전통과 혁신의 딜레마. 본인의 예술관을 넓히기 위해서 그는 새로운 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그가 발견한 것은 ‘폭죽’이었다.


 폭발이 일궈내는 순간의 자유로움은 그의 예술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다. 유화에 화약을 뿌리고 불을 붙이는 일. 자기 작품을 폭파해버리는 일은 본인이 배웠던 관습을 넘어서고 역사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폭파의 순간, 그 순간을 지칭해 예술이라 부르는 것. 그것이 그의 예술이었다. 아버지를 좋아하고 그의 그림을 배우는 것과는 별개로 예술가로서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서 다른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했던 마음 또한 이런 생각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도에, 깊이를 더하고 싶었을 것이다. 단지 새로움만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예술가의 시작은 본인만의 것, 확고부동한 본인의 영역을 찾는 일에서 출발한다.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하고, 다시금 세상을 향해 계단을 쌓아 올린다. 스스로를 찾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본인 바깥의 것에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긴다. 수십 년을 쌓아온 그의 예술 세계는 그렇게 확고부동한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그 무엇이 와도 흔들 수 없는 본인만의 것. 시작은 외부 세계의 관습을 부수는 것이었지만, 차츰 본인의 예술 세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고민하게 된다. 명성이 쌓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이미지가 확고해진다는 것이다. 이미지가 확고해지면, 더 이상의 참신함은 없다. 이미지에 스스로가 갇히게 된다. 그 상황 속에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도 없다. 세월의 관습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일을 무엇으로 비할 수 있을까. 본인이 구축한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그렇게나 모순적이다.


 화약도 출생부터 그랬다. 화약은 불로장생을 염원하던 비약의 실패작으로 탄생해서, 사람들을 다치게 만들고 죽게 만드는 약이 되어버렸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서 소소하게 흥미로웠다. 얼마 전에, 폭죽이 만드는 공해에 대한 기사를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차이 구어 치앙은 바로 그 폭죽으로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부분에서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에게 ‘하고자 하는 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표현의 방식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 차이 구어 치앙은 항상 그 부분에서 충돌을 겪었을 테니까.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다큐멘터리는 친절하게도 폭죽을 활용하는 장면에 ‘생분해성 염료’를 사용했다는 부가 설명을 집어넣는다.

 규모와 화려함. 폭죽을 녹여낸 차이 구어 치앙의 세상은 지극히 중국적이다. 한 호흡에 붓을 놀려 글자를 써 내려가는 서예가의 자세나 수묵화의 감성 모두를 담고 있다. 폭죽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대중들에게 보이는 퍼포먼스는 화려하고 크다. 단지 불꽃의 크기가 크다던가, 폭죽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압도'한다.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주제가 중국이라는 배경 속에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하늘에 닿을 듯 높다란 불꽃 사다리를 이어보려는 시도 또한 그랬다. 견고하게 구축한 본인의 세계에서 탈피한 저 높은 곳으로 가려는 듯 높다란 불꽃 길은 그의 할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본인의 작품에 대한 간절한 고집이었다.


결국, 예술은 폭발이다. 폭발은 예술이다. 차이 구어 치앙의 예술은 폭발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스카이래더: 디 아트 오브 차이 구어 치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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