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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Apr 10. 2018

그가 보아온, 당신이 보게 될

영화 '쿠바와 카메라맨'

[쿠바의 첫인상]

 오래된 카메라에 어렴풋이 잡히는 사람들의 일상은 후덥지근했다. 한 여름의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모습들. 쿠바라는 공간의 얼굴은 그랬다. 후덥지근하게 올라오는 습기와 열기 속의 미소, 그 이빨들이 얼마나 하얗게 보이던지. 묘한 매력이 있다. 순수하다고 표현을 해야 하나,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그곳에는 있다. 여행지가 아닌 삶의 터전으로 바라보는 쿠바는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존 앨퍼트 감독은 언제나 넉살 좋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넌지시 묻고, 반갑게 대답한다. 그렇게 담아낸 세월이 자그마치 40년이다. 수 차례씩 카메라맨은 카메라와 함께 쿠바에 도착했고 쿠바는 미묘하게 변해갔다. 건물과 거리는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변해갔다. 사실, 적응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변했다.


[피델과 쿠바]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고발의 기록이다. 위험한 순간들을 넘나들며 변화에 대해 소리친다. 카메라맨의 눈에 비친 쿠바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국가에서 시도하는 무료 의료 보험과 의무 교육, 주택 공급. 냉전의 위기로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카메라맨은 쿠바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 들어보고 싶어 했다. 처음 그들이 도착했을 때, 75년의 쿠바는 활기찼다. 복지 제도 속에서 사람들은 맘 편히 살고, 학생들은 저마다의 꿈을 꿨다. 상점에는 제품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카메라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풍족함과 여유로움을 보았다. 그들은 당당했다. 첫 공산당 의회에서 사람들은 연신 '피델!'을 연호했다.


 '피델 카스트로'라는 사람의 카리스마는 사람들을 압도했다. 혁명의 불길은 사람들을 집어삼켰고, 눈에 불을 담은 사람들은 쿠바라는 기준을 벗어나는 이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라는 그들의 세상 모든 것이었다. 이민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으리라. 그래서 더 심하게, 과격하게 비난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마음들을 헤아려 보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들이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들은 이미 개개인이 하나의 나라라는 생각을 품고 살게 된다. 그 생각을 가진 이후로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세계를 보게 된다.


 쿠바라는 세계의 균열은 소련의 해체와 함께 일어났다. 풍족하게 꿈을 누릴 수 있던 시절은 지나가고, 그저 내일을 위해 버텨야 하는 시기가 왔다. 기르던 가축들의 피골은 상접하고 사람들은 지쳐갔다. 그렇게 열정적이고 힘차게 웃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전혀 다른 상황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곤궁한 삶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의 맑은 미소뿐이었다. 희망보다는 포기에 가까워 보였던 그 맑은 미소. 그를 보며 카메라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무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Cuba Libre]

 카메라로 담아내는 쿠바의 모습은 더욱더 선명해진다. 역설적이게도, 더 좋은 카메라로 촬영되는 쿠바의 모습은 점점 더 야위어간다. 카메라는 좋은 화질로 더 자세하게 현상을 묘사하는데, 사람들은 점점 희뿌옇게 변해간다. 40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히 길었다. 갈라져 있다고 생각했던 세계는 하나의 질서로 통일되었고, 사람들의 삶의 터전은 여행지가 되었다. 존 앨퍼트 감독에게 쿠바는 단지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에게 쿠바는 오랜 고향 친구였다. 가끔 들러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쿠바와 함께 나이 들었다. 가장 최근에 촬영을 위해 쿠바에 갔을 때, 그는 크게 바뀐 쿠바의 모습에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나 미지의 세계에 품는 동경이 있다. 카메라맨이 처음 쿠바에 관심 갖게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나의 시점으로 미지의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으리라. 미지의 장막이 걷힌 지금의 쿠바는 어떤 동네일까. 카메라맨에게 여전히 흥미로운 공간일까? 문득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을 고향으로 기억할 수 있는 힘은 공간이나 사물보다 사람 자체에 있기 때문에, 카메라맨은 그곳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 가면 그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반겨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가끔 술도 한잔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풍족하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만족했던 시간과 공간이었다. 감독의 눈에 언뜻 비쳤던 쓸쓸함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그 눈빛을.

 

 '인생은 짧죠. 모두 조금씩 사라져 가요.'

 그러니, 우리는 지금 좀 더 애써 끌어안을 필요가 있어요.


사진 출처: IMDB 'Cuba and the Cameraman(2017)', 'Fidel Ca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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