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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Dec 04. 2018

밤의 깊이

영화 '어둠에 관하여'


 시간은 당신의 눈 속에 머문다. 눈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매 초, 매 분마다 빛은 조금씩 달라진다. 빛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느낀다. 눈부신 새벽부터 경계를 허무는 밤까지. 눈은 우리의 시작이자 끝이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눈을 뜨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마친다는 일은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다. 원하는 때에 시간을 확인할 수도, 다른 사람의 반응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잠을 잘 때에만 눈을 꼭 감는다. 그 순간,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순간에만 눈을 감는다. 우리들은 마음 깊숙이 빛을 받아들이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빛으로 차 있으니까.


 1980년대 초, 신학자 존 헐은 시력을 잃자 오디오 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며 느끼는 세계는 눈으로 봐왔던 이전의 세상과는 무척 달랐다. 미소 짓는 일도 예전 같지 않았다. 상대의 반응을 볼 수 없으니 무척 조심스럽게 입 근육을 움직인다. 이렇게 지은 미소가 상대에게 자연스러운 웃음처럼 보일까?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의식을 하게 된다. 그러다 이내 미소 짓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상대의 반응을 볼 수 없으면 더 편하게 의식할 필요 없이 행동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존의 이야기는 반대였다. 더 조심스러워진다는 말은 무척 슬펐다. 마냥 아무렇게나 행동할 수 없기에 그랬다.


 우리는 기억조차 눈으로 담아낸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의 추억인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보면 된다. 녹음은 익숙한 단어지만 낯선 행동이다. 생각보다 녹음할 일이 별로 없다. 굳이 그럴 일이 없다. 동영상에는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소리가 담기기 시작했다. 편리함과 익숙함에 잊고 있던 감각은 생소한 행동을 통해 되살아난다.


 '나는 실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의미를 찾는데 관심이 있다. 또한 내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도 관심이 있다.' 삶을 배우는 이의 결의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결기가 존 헐의 말속에 뭉쳐있다. 발화를 통해 세계는 더욱더 단단해진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건 감정들이다. 순수하고 강렬한 감정들은 세상의 토대가 된다. 존은 그 순간들을 본인의 목소리로 기록했다.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생겼던 일들, 주변 사람들의 반응, 무력함을 느꼈던 순간들을 온전히 남긴다. 사진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세세하게 담아낼 수 있으니까.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 기록을 남겼는지를 들어볼 수 있으니까.


 기록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 부분이 충격이었다.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세계를 인지하는 감각 자체가 시각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시각은 당연하게 일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일상을 채우는 빈도가 다른 데에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이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빛의 속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어둠이 얼마나 일상적인 일인지를. 밤의 깊이를 온전히 직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에둘러 풀어내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은 과한 몰입을 막아 세우고 적당한 거리에서 온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마냥 무작정 동정하지도, 그렇다고 메마르고 건조하게 관찰하는 것만도 아니다. 저 상황 속에서 나를 돌아보게끔 이야기한다.


 소박하게 생각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어떤 관점에서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행복이나 결과들이 이미 우리가 가진 것을 바탕으로 피어난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며 느꼈던 만족들은 내가 앞을 볼 수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당연한 성취들이 노력해도 닿지 못할 수준의 이야기라는 자각이 드는 순간에 세계는 부서진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가족의 사랑과, 희망이라는 별은 발작 같은 우울에 잠식된다. 행복하다가도, 만족하다가도 이따금 미치도록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 지는 날이 오기 마련이다. 물밀듯이 간절함이 스치고 지나가면 씻겨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없다. 그가 본인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은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규칙을 다시 쌓아가는 일이었다. 그의 옆에 가족이라는 중심이 없었다면 그조차도 어디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방향을 분간하지 못했으리라.


 세밀한 감정들과 현실적이라 아팠던 상황들이 다큐멘터리에 온전히 드러난다. 넷플릭스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우연하게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추천을 통해 전해 들은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어디서도 이 영화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세심하고 좋은 연출로 잘 살려낸 이야기가 너무 조용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핑계로 나는 영화를 추천한 적이 별로 없다. 그저 내 생각을 이야기해줄 뿐이었다. 한 번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머릿속에 들어와 있던 적은 없는데 이 영화는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면 분명 당신 심장에 이 이야기가 남을 것이기에 조심스레 권해본다.


 앞을 볼 수 없기에 조심스럽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을 들여 환경을 관찰한다는 의미다. 편리하게 가다 보면 항상 사람을 놓친다. 더 편해지려고 바꾸는 것들 중에는 사실, 자주 활용하지는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건이나 방식이 있는 법이다. 불편한 방식이 필요가 없는 방식인지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다루는 도구들, 자주 활용하는 표현의 방식들, 통틀어 삶의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편리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무언가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더 가벼워지는 만큼 삶을 느끼는 일도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구태여 무거워질 필요는 없지만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빛의 안온함에 어둠을 망각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어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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