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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Feb 19. 2019

덜 자란 어른이라 그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내 마음이 자라는 속도는 몸에 비해 배는 늦었다. 덩치는 산만해도 스스로 느끼기에 여전히 애 같은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키는 원하는 만큼은 컸다만 마음은 그만큼 큰 건지 모르겠다. 구태여 표현하지 않는 아이에게 사람들은 의젓하다 표현하지만 생각해보면 그처럼 아이답지 않은 말도 없다. 사람들은 주로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니까. 의젓한 아이들은 대개 본인이 원해서 조용하고 점잖기보다는 눈치를 보면서 주변 상황에 본인을 맞춰가는 쪽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는 줄곳 의젓하다는 말을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른에게는 '의젓하다'는 표현이 어색하고 아이들을 부를 때에는 자연스러운 건 어른스러움이 기준이라는 뜻일까?


 의젓하다는 표현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 건 전적으로 이 영화 때문이다. 어떤 시선과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는 언제나 그 표현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다. 정식으로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시선의 높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상대방의 시선에서 내 위치가 어떤지를 고민하게 된다. 사진을 찍는 내가 구겨질수록, 더 낮아질수록, 힘들어질수록 잘 나온다. 인터넷에 보면 예쁜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이 무척 많은데 내 기준에서 가장 예쁜 사진은 상대의 눈높이에 맞춘 사진이다. 대화를 할 때처럼 상대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건네야 한다. 사실, 어떻게 찍든 사진 하나에 대고 사람들은 가타부타 말이 많아진다. 본인의 감정을 찾아내고 생각을 덧입혀 감상을 빚어 붙인다.


 의젓하다는 말은 전적으로 어른의 시선에서 붙이는 단어다. 토 달지 않고, 사고 치지 않고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는 아이들에게 붙이는 훈장 같은 말이다. 무니는 정말 가끔 의외로 의젓한 아이다. 자주 그렇진 않다. 자주 그렇게 하기에 무니는 너무 심심한 곳에 살고 있었다. 무니의 집은 디즈니랜드 주변에 있는 모텔이다. 디즈니월드가 집 근처인데 심심하다는 표현도 웃긴 이야기지만 그랬다. 팔에 차는 입장권 없이는 디즈니월드의 그림자에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무니는 즐거웠다. 친구인 스쿠티와 젠시랑 있을 때에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뛰어다니고, 구르고,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욕하고 놀리면서 놀았다. 돈 들이지 않고 재밌게 놀러 다닐 수 있었다. 가끔 운이 좋으면 아이스크림도 얻어낼 수도 있었으니까.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른스러운 아이, 의젓한 아이는 어른들을 오히려 슬프게 만든다. 아이다운 모습이라는 건 어른들의 고민을 모르는 거다. 그냥 하루하루를 힘차게 어떻게 놀지 궁리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가장 아이다운 모습이다. 어떤 아이들은 이따금 연기를 한다. 해맑게 아무것도 모르는 양 행동한다.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정확하게는 몰라도 그 편이 어른들을 믿게 만드니까 그렇게 한다. 아이들은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는 몰라도 본능적으로 눈치를 보고, 모른 척 적당히 행동한다. 연기하는 어른과 아이는 역으로 서로 반대의 입장에 선다. 연기하는 어른은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는 어른처럼 어른을 대한다.


 진득한 빛깔의 모텔들은 마냥 아름답기만 한 집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랜 부분을 덮기 위해 과하게 밝은 색을 더한 느낌이 들었다. 모텔은 애초에 집의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편한 공간은 아니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그곳에서는 매일, 매주 삶을 갱신해야 한다. 인생을 되돌아볼 공간은 아니다. 버티는 삶, 그마저도 수입이 불안정하면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다. 갱신해야 살아갈 수 있는 위치에서 시간은 그 자체로 날이 바짝 선 틀이 된다. 틀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쩍 예민하다. 여유를 낼 수 없는 위치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어른이라 짐작하는 불안은 극이 진행될수록 커진다. 아이들의 눈치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살을 파고드는 숫자의 세계다. 결과에 맞추기 위해서 과정의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들의 연속, 삶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삶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의 끝을 예상하는 것은 너무도 쉽다. 그건 디즈니월드 입장권처럼 사야만 쓸 수 있는 행복이다. 무니와 스쿠티, 젠시 같은 아이들이 그것까지 알지는 못했다. 마음이 무척 복잡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행이라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영화는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을 보여주지만, 화면 밖의 어른은 다가올 비극을 직감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보고 난 마음이 무척이나 헛헛하다. 모텔 매니저인 바비가 했던 것처럼 적당한 거리두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아니 어쩌면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아이들을 쳐다봐서 너무 깊게 마음이 뺏긴 탓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는 무니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철없게 울어야 할지, 아니면 용감하게 손을 붙잡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무니와 스쿠티, 젠시가 뛰어다니는 플로리다의 하늘은 더없이 예뻤다. 마음이 비틀거린다. 이 모든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건 아직도 내겐 어려운 일이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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