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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an 31. 2019

필생의 업으로

영화 '만신'

 업이라는 글자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있다. 직업, 부여된 과업, 선악의 소행이라는 의미가 담있다. 업이라는 말은 쉽지 않다. 일이라는 표현은 일상적으로 쓰이고 그만큼 편하게 불리는 반면 업은 다르다. 직업이라는 뜻 외에 다른 뜻의 무게가 가볍지 않기에 느껴지는 무게라고 생각한다. 같은 집에서 사는 개별적인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듯 단어들도 그런 관계로 묶인다. 셀 수 없는 이름들과 기억들. 수많은 행동과 만남, 이별의 반복 속에 '업'이라는 말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에 돌아가는 곳이다. 한 순간의 행동이자, 지나온 시간이 쌓인 행적으로 마지막 기억의 결과로 업은 존재한다. 수많은 업이 있다. 세상에는 일이 아닌 업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역할들이 있다. 세상이 내려다보이는 가장 넓은 자리, 좋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영역을 밝힌다. 어떤 사람이든 일을 업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품위가 느껴진다.


 이 영화는 복합 영상이다. 무당이라는 존재가 어떤 이들인지, 굿을 어떻게 하는지, '나라만신'이라 불리는 김금화 만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서로가 할 수 없는 표현을 대신하며 무당의 업을 논한다. 노래 가락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그치면 그치는 대로 리듬이 이어진다. 각기 다른 모양처럼 보이다가도 어느새 보면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무당'을 조명한다. 중요한 건 다른 시선들을 모아 만든 영상이 따로 놀기보다는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삶에서 무당의 이야기로, 무당의 이야기에서 현대사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무당은 중개자다. 단절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이들이다. 한 판의 굿에 담기는 이야기는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죽은 이들과 산 사람들을 모두 위로하는 이야기가 굿에 담겨 있다. 낮고 깊게 울리는 목소리는 그저 거들뿐이다. 긴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만신은 슬픔이 많은 이 나라의 아픔까지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우스꽝스러운 농, 엄중한 호통이 삶을 어루만진다.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위로를 건네는 진심이 본질이다. 소통하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 다리를 놓는다는 것이 본질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아이러니와 불가항력의 역사였다. 해갈되지 않는 분노가 응어리져 만들어지는 한. 풀지 못한 분노는 되려 깊은 슬픔이 된다. 사무치게 슬프면 아파진다. 역설의 아픔을 위로하는 굿, 한 판의 굿이 영화에 담겨있었다. 개인의 과거에서 시대의 현재까지를 불러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굿 한 판이다. 굿은 지긋한 먼지 속에 덮여 있던 한을 풀어낸다. 소리치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들으나 말하지 못하는 이들을 대신해 말을 토해낸다.


 무당이라는 업은 찾는 이들이 필요하고 간절할 때에만 대접을 받는 일이었다. 오방색의 화려한 의상, 번뜩이는 작두 칼날, 혼란스러운 노랫소리 속에서 사람들이 보는 건 행동이지 이유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불편해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속에 머무는 그들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였다. 불편함, 불안함을 억누르려 사람들은 욕을 했다. 정치권력은 무당을 이용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애초에 사람들이 불편해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무당의 일은 업이 되지 못했다. 업이 무겁던 시절에는 일에 귀천이 있었다. 그 무게가 티끌처럼 가벼워지고 가벼워지다 보니 오히려 이를 짊어지고 가는 이들의 모습은 새롭게 다가온다. 업의 무게가 가벼워져 가는 시대 속에서 해묵은 업의 무게를 매달아보는 일. 그 새삼스럽게 정성스러운 일이 마음에 머문다. 열과 성을 다하는 몸짓과 소리에 진심이 전해진다. 가벼운 시대에 필요해지는 건 그런 진심일지도 모른다. 단절된 개인들은 섬처럼 부유한다. 무시와 경멸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예술인의 고결한 긍지. 경지에 오른 업은 긍지가 된다. 김금화 만신이 잊힌 이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되뇌며 위로를 소리로 풀어내는 모습이 남는다. 모습보다 그 위로의 마음이 더 길게 남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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