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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ul 10. 2019

옷 속의 이야기

영화 '맥퀸'

 깔끔하게 세련된 이미지들은 잘 차려진 귀하게 대접받는 식사, 정찬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가 여느 다큐멘터리와 매우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로 보면 전형적인 이미지들의 연속이고 편집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그들이 갖고 있는 재료 자체로 할 말을 다 한다. 기술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면모가 극하게 줄어들면 템포와 구성으로 호흡을 가져와야 하는 법이다.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맥퀸'은 잘 몰랐지만, 어느 책에선가 주워 들었던 '새비지 뷰티'라는 표현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기에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우선은 표현이 매력적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접합체처럼 느껴졌다. 그는 고전적인 형태의 아이디어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중세 귀족 초상화에 등장했던 해골 소품처럼 희미한 기억 속에 미장센으로 스며드는 형태로.


 한 사람을 설명하는 제각기 다른 시간대의 증언들은 정교하게 직조되어야 한다. 마치 옷을 재단하고 재단하는 것처럼. 그 사람을 온전히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영상을 보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 영화에서는 불러내는 대상이 맥퀸이니 만큼, 그의 의상처럼 극적인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터뷰들이 이어졌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개별적인 프로젝트, 쇼 단위로 콘셉트가 확실하다 보니까 테마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훨씬 재밌었다. 일상 속의 주제로 옷을 골라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고민의 출발점이 달랐다. 옷이라는 도구는 표현의 소재였다. 쇼에서는 끊임없이 인물들이 튀어나오고, 들어가면서 제 옷을 통해 이야기를 전했다.


 틀에 박히지 않아서 기준에 따를 필요가 없던 이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저 기준을 내리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알고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스스로가 설득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다듬은 것이다. 방식은 쉬울 수 있지만, 과정을 그만한 수준까지 따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극기처럼 느껴지는 이해와 배움, 창의적인 재해석은 무술 고수들이 보여주는 그들만의 초식과 다르지 않다. 고수들은 언제나 한계를 돌파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경쟁 상대를 꺾어가며 강해지며 마지막까지 가보면, 비로소 자신만이 남는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맥퀸의 모습은 상대가 없는 고수의 외로움이 보인다. 그는 항상 개인적인 이야기를 대중적인 공간에서 풀어냈지만, 이를 사람들이 온전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분명한 식사였다. 눈으로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 그대로 입안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이야기에 몰입하면 할수록, 조금이나마 그를 알아간다는 생각이 들수록 달라졌다. 원초적인 디자인 속에 내재된 무척 개인적인 '리'의 이야기. 농밀한 색깔 속, 화려한 겉치장 속에 숨겨진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오히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낱낱이 해체되는 느낌에 가깝다. 조금씩 안전한 발판에만 발을 디뎌가며 자신을 수용한다. 아픔의 이유 따위는 생각지 않던 과거의 모습조차 받아들인다.


 이만큼이나 표현에 솔직한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되고 싶은 사람을 그려보는 일에는 익숙하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일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끝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는 자신을 찾는 걸 포기해버린다. 일을 하게 되면서 부쩍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찾게 된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돌려보고 글로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재밌는 상황들이 많이 나온다. 일을 하면서 알아낸 가장 첫 행복의 조건이자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다고 느꼈던 행복의 조건은 인정이었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한다. 그게 조직도 상에서 아래이든, 위이든, 옆이든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사벨라는 맥퀸의 입장에서 자신의 관점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떠났을 때 그는 상실감, 아픔, 슬픔 이런저런 감정을 떠나서 세계와의 연결고리가 툭 끊어진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까 싶다. 금단의 영역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풀어냈던 그조차도 대면해서 풀기 어려웠던 말. 아마도 옷을 통해서 표현해왔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 옷 속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맥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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