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날의 치근거림이 싫은 이유는 내 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경계를 허무는 불쾌함이다. 건조하게 말라있는 상태에서는 경계가 확실하다. 몸의 곳곳으로, 온몸으로 내 신경이 곤두서 있고 이를 감각할 수 있다. 나의 경계는 습기를 머금으면 속절없이 허물어진다. 그게 싫어서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경계의 당혹감은 인간관계에서 발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눈물 콧물 흘리며 감정을 교류하는 사람들. 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 보면 무척이나 습한 사람들이다. 습한 사람들은 경계를 허물며 더욱더 커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남의 경계는 확실해야 한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확실한 건 개인의 위치다. 꼭 엉겨 붙어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는 건 싫다.
무개성한 덩어리들. 집단주의가 해체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색을 얻었고, 이제는 전과 같은 크기로 돌아가지는 못할 거다. 사람들은 색을 얻었고, 결코 전과 같은 형태로 뭉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디 가지고 있던 색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이전에 써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힘이 작동해야 한다. 연결 가능성이다. 연결해야 무지개가 만들어질 수 있다. 내 색으로 전염시켜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서 커져야 한다. 융합의 가치는 서로의 색이 섞이며 덩치가 커지는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써 서로의 색을 섞으려 들지 않아도 우린 충분히 조화로울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앞으로의 세계는 내가 가진 도구, 정체성을 활용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느냐가 힘이 될 테니까.
습한 날은 갔다. 지난한 장마 전선은 물러섰고, 이젠 차분하게 서늘한 계절을 앞두고 있다. 바짝 말라서 더는 나를 치대는 꿉꿉한 감정도 없다. 이유 모를 불쾌함을 떨쳐낸 삶은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