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선선한 밤저녁에 마실 가듯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술 마시는 이야기. 뭐가 그리 감성적인가 되물을 수도 있는 이야기는 참으로 기기묘묘했다. 선문답 하듯 조응하지 않는 질문과 응답을 지나 사람들을 만나는데 거리에 걸쳐지는 말에는 신기하게도 뼈가 있다. 이리저리 에둘러 말해도 본심은 그 안에서 빛을 발한다. 정작 이 이야기는 술을 담아내는 술잔 같은 이야기다. 그동안은 술과 같은 선문답은 숱하게 있어왔어도 '잔을 고르는 이야기'는 없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사람들은 기연으로 연결되고, 술을 타고 사람들은 흘러간다. 그녀의 행보를 따라 걷는 이들은 기꺼이 술잔을 든다.
검은 머리 아가씨는 술을 따라간다. 가다 보니 즉흥적으로 술친구들도 만들게 되고 공짜술도 얻어먹는다. 밤공기는 서늘하다. 술자리는 끊어진 대화를 잇고,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진다. 술을 마시는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술로 여는 마음에는 빗장이 없다. 개중에는 괴이한 농담도 많다. 억지 만발 토론장에서 나오는 궤변들이 그렇다. 반한 사람과 안 반한 사람 중 누구랑 결혼하느냐 하는 이야기도 술에 취해 듣게 되면 어딘가 그럴싸해진다. 반한 경우엔 정확한 판단을 못 하지만 안 반한 경우엔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니, 긴 인생의 동반자로 합리적인 선택은 반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소리. 궤변은 꿈의 논리다.
일견 궤변은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진실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궤변에서 나온 조각은 생각보다 날카롭다. 마치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만들어진 미로와 같다. 투명하게 보여 헷갈릴 일은 없지만, 정작 끼어들고 보면 나갈 길을 찾기가 어려운 그런 미로. 그 속에서 잔뜩 취한 사람들이 걷고, 쉬고, 먹으면서 점점 술이 깬다. 얼떨떨한 취기는 남아있으되 순전히 진심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때가 온다. 진심으로 빚어낸 단어들은 하나같이 순수하다. 늦은 밤까지 열리고 있는 축제의 공기는 습윤하고 매캐하지만 눅눅하고 탁한 연기 뒤로는 때깔 좋은 음식도, 즐거운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을 머릿속으로만 두고 생각하던 이들의 행동과 말로 본심이 나온다. 한바탕의 술자리가 끝나면 으슬으슬해진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너무 길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감기나 사랑이나 매한가지다. 그러잖아도 사람들은 사랑의 열병을 앓듯 하나 둘 감기에 걸려간다. 둘 다 하나의 절대적인 처방전은 없다. 편할까 싶어 이리저리 물어봐도 어디에나 통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각자 저마다의 비법과 비결로 몸을 잘 추슬러 털어내길 바라는 수밖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이들에게는 별다른 틈이 없다. 세계에 균열이 생기질 않으니, 다른 이들이 그 안에 침투할 겨를 또한 없다. 오만의 끝에 틈이 생기듯이 언제나 자신만만하던 세계는 예상치 못한 한 순간의 장면으로 흔들린다.
예전에 이자카야에서 한 번 술잔을 직접 쟁반에서 고른 기억이 있다. 단순한 행동이고 크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럼에도 왠지 적어두고는 싶어서 핸드폰을 열고 '잔을 골라라'라는 표현을 썼다. 내가 마실 잔을 내가 고른다는 것. 그 사소한 행동에 '당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표현하라'는 감상이 덧붙여진다. 그래, 잔은 홀로 채우고 비워선 안 되니까. 직접 눈으로 보고 잔의 생김새를 생각하고 골라야만 한다. 선택은 무수한 가능성을 하나의 시점으로 관측하는 일이다. 선택한 기회는 필연으로 거듭난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과 우연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사랑을 이루는 건 필연이다. 종착역이 있을 것이고, 새벽은 멀지 않았다. 밤은 짧고 사랑을 위해서는 늦지 않게 다음 발걸음을 내딛어야만 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