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이라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저녁 식사 시간. 분명하진 않지만 찌개를 끓여 내고, 몇 가지 반찬들로 꽤 요란하게 저녁을 먹었던 것 같다. 찌개나 반찬이 무엇인지 기억하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단언컨대 술은 분명 함께 했을리라.
연애시절, 우리는 술을 자주 마셨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데이트를 하게 되면 저녁에 이런저런 메뉴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이 목적이었다기보다 술자리 달곰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겁고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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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몇 번이나 어그러지는 우여곡절 끝에, 처음 소개팅을 했던 날. 그날 아내와 난, 회사 근처 이자카야 집에서 세 시간 반 동안 술을 마셨다. 소개팅 첫날 술 마시는 것이야 흔히 있는 일이지만, 어색함 없이 한자리에서 끊김 없이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더랬다. 어릴 적 소소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험담까지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어댔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부터 잘 통했다.
서로가 잘 맞아서 인지, 연애한 기간만 보면 10개월 정도를 가까스로 채우고 결혼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회생활도 적당히 했고, 나이도 어느 정도 찬 상태에 결혼한 동갑내기. 그때부터 지금까지 먹는 것을 비롯해 성향이나 습관 등 비교적 여러 가지가 잘 맞는다.
물론, 다름이 있긴 하다. 부부로 산 13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다른 환경에서 생활해왔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 없이 잘 맞춰 왔던 것 같다. 잘 맞춰왔다는 건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배려했다는 얘기인데, 무엇을 먹을지 메뉴를 고르는 일도 그런 경우 중 하나다.
13년간의 배려와 함께 그 간의 합 덕분일까? 메신저로 오늘 뭐 먹지를 물을 때마다 서로 놀랄 때가 종종 있다. 보통은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며 무엇을 먹을지 서로에게 되묻는 게 보통인데, 가끔 딱 통할 때가 있다.
OO 떡볶이 & 튀김 사다 먹을까?
ㅎㅎㅎ 나도 지금 딱 생각했는데...
굳이 이를 확률적으로 계산해 보자면, 먼저 아내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이 몇 가지 정도 일지 가정이 필요하다. 보통 저녁으로 선택 가능한 메뉴가 대략 100가지 정도라고 해보자. 주로 먹는 음식의 가짓수는 그보다는 적겠지만, 메뉴의 확장성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그 수가 적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떡볶이라는 큰 범주도 사다 먹을 것인지 집에서 직접 조리할 것인지로 나뉠 수 있다. 더하여, 맛이나 스타일로 보자면 기본으로 시작해 기름, 국물, 로제 그리고 특별한 재료를 넣은 OO 떡볶이로 그 조합이 다양해질 수 있다.
어쨌든, 일단 가능한 선택지를 100가지로 한정하고, 떡볶이와 튀김 두 가지를 선택했으니 확률적 수식은...
4,950 = (100X99) / 2 즉, 4,950 가지의 조합 중 하나를 선택 (0.02%의 확률)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0.02%의 확률이라니? 아까도 말했지만 떡볶이 하면 튀김은 당연한 거 아냐라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떡볶이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요. 또 어느 날은 튀김 대신에 순대, 어묵, 김밥, 치킨 등 꿀 조합 대신에 예상치 못한 뜬금포 음식을 선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하여, 이날은 무알콜 맥주를 마셨기에 술 종류로 인한 경우의 수는 고려하지도 않았으니, 이 확률이라는 것이...
포장해 와서 먹었던 떡볶이 & 튀김
소위 천문학적인 확률이라고 계속 우기고 싶지만, 사실 먹은 지 뜸해진 메뉴들 중에 아내와 내가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조합을 동시에 떠올린 것이다.
부부는 닮아가는 거라는데,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다 보니 절반은 닮아버렸고 또 남은 절반은 상대를 배려하는 맘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게 바로 13년 차 부부의 배려이자 호흡이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