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회자정리 Feb 24. 2022

김치는 판단의 조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다. 특히, 같은 팀 동료가 아니라 협업이나 프로젝트로 필요에 따라 결성된 조직 내 사람들과는 아무래도 어색하기 마련이다. 친분이 덜 쌓여 어색하지만, 직책이나 나이가 좀 더 많다는 이유로 화제를 꺼내 이야기를 주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뻔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가장 덜 친한 사람에게, '어디 사는지?',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정도로 가볍게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에게 부담되지 않은 선에서 몇 가지를 더 물어본다. 분위기가 좀 더 자연스러워지면, 부모님하고 같이 사는지? 또는 혼자 살거나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간혹 음식은 직접 해 먹는지?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상에 대한 질문들을 이어간다. 


이미지 출처 [pixbay.com]


그렇게 질문을 하다 보면 상대도 나에게 유사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팀장님도 요리하세요?’라고 말이다. 나로서는 원하던 바이자, 화제를 끌어오기 좋은 주제다. 


요리는 아내가 아니라, 제가 담당이죠.


살짝 웃으며 답을 하면, 질문을 한 사람은 포함하여 같이 듣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업무 스타일 때문인지 혹은 인상이 그런지 요리를 즐겨할 것 같은 인상은 아닌가 보다. 


뭐랄까? 내 스스로는 나름 섬세한데 같은 팀원으로 같이 일을 하지 않으면 섬세한 쪽보다는 센 쪽으로 보이는 듯하다. 지극히 혼자만의 착각인지도. 어쨌든, 놀라고 난 다음 십중팔구는 꼬리를 물듯 이런 질문을 한다.


무슨 요리를 가장 잘하세요?


나에게는 가장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자주 하는 음식도 있고, 자신 있는 요리도 있긴 하지만 그중 단 한 개를 고르는 것은 조금 과장을 보태 인생에 있어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대답은 항상 애매모호하다. '뭐, 그냥 이것저것 다 해요. 웬만한 건 다 하죠.'




작년, 신규 서비스 구축 프로젝트로 개발팀과 같이 밥을 먹는 자리였다. 그 전에도 일적으로 꽤 오래 같이 일해 친분이 있던 개발팀장도 함께였다. 하지만, 팀원들 중에는 친분이 있는 팀원보다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았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대화. 


자연스럽게 몇몇 개발자들과 대화를 하며, 똑같은 질문이 날아왔다. '무슨 요리를 가장 잘하세요?' 그때, 개발팀장이 툭 끼어든다.


가장 간단하고 쉬운 질문이 있지. 김치도 담아 본 적 있어요?


마침, 백오이가 싸 오이소박이 김치를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자신 있게, '김치요? 있죠. 어학연수할 때도 그랬고, 집에서야 자주 하지는 않지만, 최근에 마침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어서 했었는데...' 슬쩍 핸드폰에서 찍어 놓은 사진을 내밀었다. 


직접 만든 오이소박이 김치




모두들 '오!'라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정말 요리에 관심이 많고 잘하는구나 인정해주는 눈치다. 그렇게 김치는 요리를 잘하는 또는 좋아하는 판단 조건으로 충분했다. 올해, 오이 제철이 돌아오면 또다시 오이소박이를 담가 볼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