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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자정리 Oct 24. 2020

신촌 점심 투어

[신촌역 맛집] 청화원 - 대만 우육면

 금요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운 아내가 매번 하는 질문이 있다. ‘내일 뭐 먹어?’, 한 주를 보내고 나서 주말이 되었으니 토요일을 포함해 주말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이다. 나에게 묻는 이유는 간단하다. 요리를 하거나 맛집을 정하는 것의 대부분이 내 몫이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지만, 집안일의 역할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결혼 초부터 음식에 대한 관심도 많고 칼질이나 요리도 내가 더 잘하니 자연스럽게 먹는 것에 대한 결정은 주로 내가 하게 되었다. 내가 요리를 도맡아 한다 하면, 아내는 옆에서 재료 손질, 설거지를 하는 일도 요리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어쨌든 좋아하는 것이니 요리를 해서 아내와 술 한잔하는 것도 TV에 나오는 맛집에 가는 것도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최근에는 토요일마다 신촌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듣는 덕에 점심 투어를 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아내를 만나 근처 맛집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 그리고 운동 삼아 집까지 걸어온다. 매번 아내와 만나서 점심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약속이 없거나 궂은 날씨만 아니라면 점심 투어가 항상 진행되었다.


 가장 최근에 갔던 장소는 신촌에 있는 청화원이었다. 초록색 牛肉刀削面(우육도삭면) 한자와 함께 대만 우육면이라는 한글간판으로 시선을 끄는 곳이다. 특별히 맛집으로 찾아본 곳은 아니고 이전 점심 투어 때 다른 가게에서 나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했던 집이다. 기대보다 다소 실망한 중화요리를 먹은 차여서 깔끔한 외관이 눈길을 끌었고, 대만 요리라는 점에서 관심이 갔었다. 무엇보다 도삭면이라 하니 그곳의 면 탄력이 가장 먼저 궁금해졌다. 자연스럽게 다음 신촌 점심 투어는 청화원으로 내정됐다.

신촌 청화원


 눈에 익은 가게에 들어서니 초록색 풀잎 모양의 벽지가 눈에 띄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원목의 가구다. 그리고 붉은색 네온사인으로 靑華院(청화원)이 보이고 다른 벽면에는 活在當下... (활재당하)로 시작되는 짧은 문장의 한자가 보였다. 한자가 네온사인으로 장식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중화권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자 그제야 주방에서 설컹설컹하는 쇳소리가 귀에 날아 들어온다. 주방을 엿보니 기계가 도삭면을 만들어내는 소리인 듯 했다.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아내에게 수타가 아니라고 말했다. 주문했던 음식 중에 우육면이 가장 빨리 나왔다. 적갈색 빛 국물에 채 썬 파가 적당히 올려져 있고 도삭면과 소고기가 자작하게 담겨 나왔다. 우선 음식의 향을 맡고 나서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맛을 본다. 팔각의 향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팔각을 필두로 우육면의 진한 국물과 각종 양념의 향이 차곡차곡 입안 가득 쌓여간다. 안에 있는 고기는 무척 부드럽고 국물을 잘 머금고 있다. 아마도 사태 부위인 듯하다. 고기와 국물을 함께 먹으니 감칠맛이 휘몰아친다. 더 현지에 가까운 맛과 향을 원했다면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만한 향이면 그래도 현지의 느낌을 만끽하기에는 그리 모자라지 않다.


 도삭면은 굵기가 다소 얇은 것을 제외하고는 무난하다. 수타가 아니었으니 이 정도로도 좋았다. 그렇게 국물, 고기, 면을 하나하나 음미해서 먹으니 나머지 메뉴인 샤오롱바와 향라육슬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먼저 샤오롱바를 오목한 스푼에 담고 조심스레 구멍을 내자 탕즙이 흘러나온다. 한 뜸 식혀 후루룩 탕즙을 먹는다. 그리고 홀쭉해진 만두를 집어 간장에 살짝 찍어 한입에 넣는다. 입안에서 적당히 남은 탕즙과 기름진 고기의 풍미가 강렬하게 혀를 자극한다. 은은한 생강 잔향이 조화롭다. 좀 전에 찍었던 간장에 있던 채 썬 생강의 향이다. 생강은 보통 고기 요리나 생선요리를 할 때 맛을 살리는 식재료로 쓰이는데 이곳은 만두에 넣지 않고 간장에 넣어 은은하게 향으로 즐기게 한다.


 다음으로 향랴육슬로 젓가락을 옮긴다. 젓가락으로 한번 뒤적이자마자 고수의 향과 맵지 않은 고추기름의 향이 벌써부터 코를 간지럽힌다. 기름에 밑간 한 돼지고기와 건고추를 잘 볶아 낸 듯하다. 고기의 잡내도 없고 전체적으로 맛깔스러운 윤기가 흐른다. 호불호가 강한 향신료인 고수. 나와 아내에게는 음식의 궁합에 따라 맛을 배가 시켜주는 향채다. 고수의 특유의 향은 고소한 고추기름의 향과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건고추의 양이 다소 많고 딱딱해서 먹을 때 다소 거추장스럽지만, 밥과 함께하니 늦은 점심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샤오롱바


 요컨대, 아내와 함께한 점심 투어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맛, 가성비도 좋았고 가게의 중화풍 분위기도 만족을 더 배가 시켰다. 나의 특별한 친구 아내와 함께하는 맛집 탐방이자 신촌 투어가 횟수를 더하면 더할수록 만족도가 높아만 간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제 투어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강좌 수업도 두 번 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한 달 정도 후에 이사를 간다. 이사 후, 아내는 ‘이 동네는 어디가 맛있어?’라고 또 다른 질문할 할 것 만 같다. 어서 빨리 새로운 투어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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