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당연지사.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퀄리티가 유지되고 있는 제품군일 경우에는 조금 더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피, 땀, 눈물을 갈아 넣을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맛집이라 불리기 위한 맛의 차이도 어쩌면 조금 더의 차이일 뿐, 맛집과 평범한 집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인 맛에 대한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가끔 TV 나오는 방송 맛집의 경우 국물 감칠맛을 내기 위해, 면의 탄력을 주기 위해, 진한 특급 소스를 만들기 위해 기상천외 한 과정들을 보여주곤 한다. 방송이다 보니 다소 과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모든 맛집의 주인장들은 작은 맛의 차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합정의 카레시도 유명한 방송에 나온 맛집이다. 달인이라는 방송에 나왔다고 하는데, 실제로 방송은 보지 못했고 우연찮게 가게 되었다.
카레시 간판 그리고 메뉴판 (매운 정도를 고를 수 있다.)
재작년, 아내와 근처를 걷다가 큰 간판을 보고, 조금 이른 저녁 호기심에 들렸던 것이 첫 대면이었다.
삿포로 장인에게 직접 전수받은 오리지널 스프카레
눈길을 잡아 끄는 간판을 보고 가게에 들어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프카레'. 당시, 케이블 방송에서 즐겨보던 고독한 미식가에서 관련 에피소드를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개인적으로 카레를 좋아하기도 하고, 고독한 미식가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다소 낯선 스프카레가 궁금했던 터였다. 그런데, 때 마침 원조 장인으로부터 스프카레를 배웠다며 당당하게 써놓은 간판을 발견했으니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처음 접한 카레시의 스프카레는역시나 훌륭했고, 덩달아 진짜 원조까지 궁금하게 했다.
고독한 미식가 시즌 6의 3화 - 야채 약선 카레 (출처 - 방송화면)
스프카레의 원조는 삿포로에 위치한 아잔타의 약선카레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카레가 보통 되직한 형태의 카레라면 동남아의 묽은 커리를 일본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만든 것으로 원조 가게는 아직도 일본에서 영업을 하고 있고 EBS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약선 카레를 스프카레라 부르기도 하며, 이제는 삿포로뿐만 아니라 도쿄나 타 대 도시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많은 음식 중에 맛의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차이가 크지 않은 음식이 꽤 있다. 우리나라 카레는 특히나 강황을 가장 주재료 쓰다 보니 노랗고 맛도 대체로 유사하다. 또, 3분 카레라는 이미지 덕에 인스턴트라는 개인적인 편견이 있기도 하고, 혹자는 카레가루로 아주 쉽게 만드는 음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예전의 내가 그랬다. (브런치 참조 - 카레가 달라졌어요. https://brunch.co.kr/@nky25/26)
카레라는 음식은 그런 면에서 특정 향신료의 향을 빼면, 맛 만으로 짜릿한 만족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맛이란 각자의 취향의 차가 있는 법인 데다가, 그런 취향의 차이를 차치하더라도 절대적 우위를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압도적 차이는 아니지만, 카레의 맛이 훌륭했던 카레시를 며칠 전에 아내와 재방문을 했다. 나는 야채 스프카레에 구운 닭다리가 들어간 메뉴로 지난번과 동일한 메뉴를 골랐다. 아내는 지난번과 다르게 해물 카레를 선택. 역시나 30분 정도 시간 후에 메뉴가 나온다. 이곳은 달인의 가게답게 조리에 정성을 다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집의 유일한 단점이자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과정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맛 자체가 엄청나게 짜릿한 감동은 아니지만, 스프를 한 숟가락 떠먹으면 짭조름하면서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육수를 베이스로 한 카레의 작은 맛 차이가 입안에서 잔잔하게 퍼지며, 카레의 향이 감돈다. 이곳은 매운맛의 정도를 고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카레의 향과 맛을 위해서는 2 신 정도가 딱 좋았다.
작은 차이를 넘어 짜릿한 압도적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구운 야채에 있다. 특히, 구운 브로콜리의 풍미는 신세계에 가깝다. 어떻게 구워야 그런 맛이 나는지 비법이 궁금하다. 먹고 난 직후, 주방에서 다음 테이블에 나갈 카레를 조리하는 주인장께 큰소리로 묻고 싶을 정도. '토치로 그냥 구워도 되나요?', '어떻게 이런 풍미를 만들어 내죠?', '사전에 밑간을 하거나 전 처리가 있나요?'
묻고 싶은 것은 한 가득이지만, 그저 생각뿐.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풍미의 브로콜리였다. 개인적으로는 브로콜리가 압도적이었지만 취향에 따라서는 가지, 호박, 버섯 등도 충분히 맛있었다.
아내가 시킨 해산물 베이스 카레는 신선한 해산물을 넣어서인지 해산물의 향이 차고 넘쳤다. 사실, 카레의 고유의 향을 가릴 만큼의 진한 해산물 향으로, 오늘은 해산물의 너무 먹고 싶어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면 육수와 카레의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야채카레를 추천한다.
카레소스 추가 주문 가능 (단, 베이스 카레라 깊은 맛은 부족) / 카레를 다 먹고 나면 공주님을 만날 수 있음
떠먹는 카레로 국처럼 밥과 먹는 카레시의 카레는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해 보고 싶은 곳이다. 아주 다르지는 않더라도 미묘(微妙)한 차이를 충분히 느끼리라. 두 번째 방문에도 작지만 큰 맛의 차이를 입안 가득 느낄 수 있었고, 언제가 삿포로의 원조 가게에서도 그 차이를 느껴보리라.
P.S. 그나저나 사장님은 왜 가게 이름을 '카레시', 남자 친구라는 의미의 일본어를 지었을까? 카레라는 발음 때문에 그랬던 걸까? 괜스레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