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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빛 Oct 22. 2021

대학원은 왜?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면

'대학원'은 학부 시절부터 궁금했던 미지의 세계였다. 사범대 학부생일 때는 전공 공부가 너무나 버겁고 힘들어서 '이 공부를 또 하러 대학원엘 간다고? 일단 난 안 갈 듯.'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고차원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매일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이 열릴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며 늘 동경해 왔다.


 대학원에 대한 궁금함은 4학년 때 생각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임용 공부가 너무나 막막하고 힘겨웠던 탓이다. 물론 학부생 때 임용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전공 서적과 수많은 임용 강의 책들, 기출문제, 스터디 자료만 늘어놓고 공부에는 그렇게 충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무늬'는 임용고시생을 표방했다.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저녁 늦은 시간에 동기들과 전공 스터디를 할 때마다 졸업한 선배들이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오시며 스터디를 하는 우리를 보고 가끔 힘내라는 말도 건네 오셨다. 물론 대학원에 다니는 선배들은 임용에 합격하고 현직에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여유가 넘쳐 보였다. 나는 임용되고 나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업무나 민원에 시달리게 될까? 여유롭게 모든 일을 해내고 한가함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니, 김칫국 마시기 전에 먼저 오늘 강의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전공 모의고사부터 완벽히 끝내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닦달하고 채찍질했던 임용 재수, 삼수를 끝내고 기간제 생활을 거쳐 현직에 자리잡고 나니 잊었던 대학원에 대한 열망이 다시금 피어났다. 자꾸만 대학원 전기 모집 공고 게시글을 들락날락했다. 원서를 넣으려고 해도 학교 생활도 버거웠기에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해 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했던가.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때 도전해 볼 걸.'이라고 아쉬워하기는 싫었다. 기간제 교사 경력을 모두 포함하여 만 3년이 되는 해, 모교와 같은 교육대학원에 국어교육전공으로 원서를 쓰고 마침내 그토록 궁금해하던 대학원생이 되었다.


  대학원 원서를 쓴 시기는 2019년 가을이었다. 수학계획서를 제출하고 간단한 면접을 보면 입학에 필요한 절차는 모두 끝이었다. 만 3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현직이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었으므로 경쟁률에 대한 부담 없이 입학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은 재직 중인 학교에서 자차로 왕복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광역시에 있었다. 호기롭게 원서를 작성하고 합격을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막상 통학하려고 하니 퇴근 시간의 어마어마한 교통체증과 피로를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였다. '닥치면 해 내겠지.'라는 막연한 긍정적 마인드로 새학기를 맞이하자 예상치 못하게 통학 문제가 해결되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 초유의 사태이지만 전례없는 온라인 수업의 활성화로 직장이나 집에서 대학원 수업을 받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이동 시간은 벌었지만 대학원은 대학원이었다. 매주 쏟아지는 과제와 실시간 강의, 토론, 발표로 일주일에 두 세번은 시간에 쫓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끔 대면 위주로 강의를 개설하시는 경우도 있어 꼼짝없이 왕복 3시간을 달려 수업을 듣고 밤늦게 녹초가 된 몸으로 귀가하기도 했다.


 강의 내용은 학부 때 배웠던 것과 많이 겹쳤다. 물론 배운 내용이 모두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4년의 학부 시절에는 처음 맞닥뜨리는 전공 지식과 높은 난이도의 시험에 매 학기 허덕이며 그저 교수님의 말을 구절 단위로 알아듣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면, 다년간의 수험 생활과 몇 해의 교직 경력을 거친 지금은 수업 내용이 전혀 어렵다거나 버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아 신선한 기분이 들었고 수업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이미 체계가 잡힌 전공 내용, 현직 생활을 통해 몸으로 체득한 교육학적 지식을 대학원 수업 내용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학점을 따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은 강의 주제에 대한 진정한 나의 생각을 천천히 되물을 수 있게 했다.


 대학원에  것은 주변 사람들의 많은 궁금증을 유발했다. '국공립 교사여야 대학원 졸업하면 승진도 되고, 의미 있는거 아냐?', '사립학교 교사는 대학원 가는  의미 없다던데?'. 이러한 질문들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와 목표를 되짚을  있게 했다.


 아하, 나는 '승진' 관심이 없는 사람이구나. 순수하게 학문하고 지식 속을 파고드는 열의를 다시금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와 학업 실력을 겨루는 집단 안에서 탁월함을 드러낸 적은 여태  한번도 없었다. 그저 남은 인생에서 이뤄내고 싶은 과업  하나가 대학원이었을 뿐이다. 


 '대학원생' 현재 진행 중인 나의 정체성이다. 졸업하려면   조금 넘게 남았다. 주어진 역할을 하고 던져지는 과제를 하나씩 수행하고 있을 뿐이지만  훗날 지금을 되돌아봤을  '그래도 배우길  했다. 수고했어.'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다.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음을 느끼며 단단해진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다.



생각은 곧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습관으로 굳어지고,
습관은 성격이 되어
결국 운명이 된다.
–찰스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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