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담임의 고군분투 일기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실. 낯설었지만 약간의 교직 경험이 있다는 것을 위로 삼아 몰려오는 긴장감을 애써 달랬다. 부임한 학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남학교라는 것뿐이었다.
3월 직전, 모든 교원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바로 한 해 맡을 학년과 업무분장이다. 내심 1학년이나 2학년 담임을 맡게 되려니 생각했다. 3학년은 입시 지도라는 장벽이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지므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리라.
이전 학교에서 가끔 3학년 교무실을 찾아갈 때마다 담임 선생님들은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도표와 숫자들, 대학교 입학 홈페이지를 띄워놓고 침울한 표정의 아이들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계셨다. 필요한 문서를 전달해드리고 '안녕히 계세요.'라며 문을 닫고 나오는 동시에 대입이라는 중압감을 학생과 함께 견디고 계시는 선생님들께 짧게나마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3학년 담임은 절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회의실 구석 자리에 몸을 구겨 넣었다. 속으로 '1학년일까? 2학년일까?'하며 열심히 헛물켜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3학년 담임으로 호명되었고 정신을 차리니 3학년 교무실에서 수능특강 교재와 각종 수능 문제집을 내 책장에 정리하고 있었다.
삶의 모든 과제에는 단계가 있다고 여겨왔다. 담임 경력이라고는 1학년, 그것도 일 년밖에 없으니 다음에 맡을 학년은 적어도 향후 몇 년간 1학년이거나 2학년이어야 했다. 하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 학교의 첫 교직원 회의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책상에는 '대입전형 자료집', '수박먹고 대학가자' 따위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대학생 때 과외 수업, 모든 교직 경험을 통틀어 남학교는 아예 처음인데다가 3학년 담임이라니? 종합, 교과 등... 대입 입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꿈이라면 깨고 싶었다. 초점 없이 받아든 우리 반 명단에 빼곡히 적힌 아이들 이름이 나에게 이제 그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첫 수업의 교실 문을 열기 직전 마음을 다잡았던 것처럼 할 수 있는 일이니 나에게 주어진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구나 처음은 있으니 모르는 것이 있다면 수단 불문하고 샅샅이 뒤져 공부하고 아는 것을 총동원해서라도 첫 입시 지도를 제대로 해내리라 다짐했다.
입시 지도에도 '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감'이란 아이의 성적과 발전 가능성(공부에 대한 의욕과 최근 성적 변화 추이를 종합하여 알 수 있다), 기존에 적힌 생활기록부 내용과 희망 대학 및 학과의 일치도 등을 파악하여 수시 전형에서 대략 어느 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지, 합격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어림잡는 능력이다. 지금은 학생과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면 약간의 감이 온다. 하지만 이때는 3학년 담임으로서 학생의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했다. 횡설수설 상담을 하고 나면 한 명 당 두 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했다. 매일 야자가 끝나는 종소리와 함께 퇴근했다.
업무를 끝내고 상담을 하다가 눈이 뻑뻑하여 시계를 보면 밤 10시인 나날이 비일비재했다. 정규 수업에, 방과후에, 야자 감독에, 상담에 몸이 축났지만 아이들 앞에서 '잘 모르겠다, 어렵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 싫었다. 인생에서 손꼽힐 정도로 중요한 관문인 '대학'을 목전에 둔 아이들에게 모든 역량을 소진해서라도 담임으로서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고3 담임이 가장 바쁜 시기는 8월 중순에서 9월 초,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다. 학교별로 학생들이 주로 대학에 진학하는 전형의 비중이 상이하겠지만 재직 중인 학교의 학생들은 절대 다수가 수시 종합, 교과 전형으로 진학했다. 수능 비중이 100%에 육박하는 정시 전형 지원을 희망하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부족한 과목은 더 공부하도록 옆에서 조언만 해 주면 된다. 하지만 수시 전형 중 오로지 내신 등급으로만 합격이 결정되는 학생부교과가 아닌 종합 전형 지원을 희망하는 학생이 대다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학교별 수시 접수 일정, 지원 가능 횟수(3회까지 지원 가능한 학교도 있고 6회 모두 같은 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학교도 있다), 작년 모집 인원과 올해 모집 인원의 차이, 3년치 합격자 평균 등급 및 최하 등급, 경쟁률 변화 추이, 면접과 자기소개서 유무, 최저 등급 유무, 추천서 유무, 학과 명칭 변동 여부, 생활기록부 기재 내용과 지원 대학 및 학과의 적합성, 지원 대학들의 면접 날짜가 겹치지는 않는지 등... 합격 가능성과 지원 가능 영역을 점치기 위해 알아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것들을 파악한 상태로 학생과 이야기한다면 훨씬 효율적인 상담이 가능하겠지만 입시가 처음인 담임교사는 학생의 내신 등급과 지원 희망 대학, 학과만 달랑 적힌 종이 한 장을 쥐고 앞서 설명한 모든 것을 학생과 함께 차근차근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상담을 하면서도 마음에 확신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답답하고도 슬픈 일이다. '대입 상담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안내하고 있으니 여기를 지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며 원하는 대학에 지원할지 말지의 판단은 네가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라 당부해본다. 이렇게 서툰 상담에도 '선생님을 믿어요.'라는 아이들의 한마디에 무한한 책임감이 솟아올라 아이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기 위해 다시 수험생 시절로 돌아간 듯이 최선을 다해 입시 전형과 지원 전략을 공부했다.
성적 산출 방식, 지원 가능 횟수, 자기소개서에 들어가지 말아야 할 내용 등 모르는 것이 하루에 꼭 한두 개씩 생겼으므로 혼자서 끙끙대지 않고 대학 입학처에 수시로 전화했다. 밤 아홉시 쯤, 적막한 교무실에 홀로 남아 몸이 부서질 것 같다는 체력적 한계가 느껴질 때마다 내가 투자한 이 한두 시간이 아이들의 앞날을 조금이라도 더 환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명감이 들어 박카스 한 병을 쥐고 피곤을 삼키며 다음 아이를 불러내 함께 끝없는 고민 속에서 허우적댔다.
다크써클이 턱밑까지 내려와도 정신줄을 잡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반 아이들 덕분이다. 너무나 착하고 호의적이며 성실한 아이들을 만났다. 입시지도, 생활지도에 있어서 일관된 모습을 보이면 좋았으련만 정보 부족으로 급작스럽게 노선을 틀어 다른 방향을 제시해도 고분고분히 담임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 따라주었다. 대학 문턱 앞에서 아이들은 자신감이 넘쳤으며 상향 지원에도 망설이지 않고 당당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좋은 기운을 얻었다. 종합과 교과는 어떤 비율로 지원해야 합리적인지, 종합 전형에서 어떤 대학, 학과를 지원해야 가능성이 높은지 헤매는 담임을 아이들은 차분하고 의젓하게 기다려주었다.
수시 상담,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준비, 정시 상담 일정이 밀려와 마음이 조급해질 때면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그저 맡은 소임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반 아이들 전체가 다 원하는 대학의 합격증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간절히 바라던 대학의 입학을 허가받은 아이들도 있지만 높은 대학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 아이도 있다. 그래서 1지망인 학교에 합격한 아이들의 기쁨을 마음 놓고 함께할 수 없었다. 수십, 수백 번의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롤러코스터를 아이들과 똑같이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와 똑같은 대입 수험생이라는 마음으로 대입, 입시라는 막막함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애썼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아이들은 한결같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해왔다. 아이들과 일 년을 함께 울고 웃던 담임 교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내가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은 나는 또 다시 아이들에게 큰 빚을 지게 되었다.
반딧불이는 폭풍에도 빛을 잃지 않는다.
빛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
– 스와미 바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