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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Jun 20. 2024

나라면 나 같은 여자랑 못 산다

거둠의 미학




곤히 잠든 오빠를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좋지만, 아내로서는 부족한 게 많을 텐데. 오빤 나 같은 여자랑 어떻게 살지?’

뭐 내가 일반적인 아내들에 비해 한두개 부족한 게 아니긴 하지만 우선 하나씩 나열해 보자면. 변덕이 죽을 끓는 건 시간문제다. 나는 변덕이란 죽을 항상 품고 있다. 영화 볼까? 아니다 안 볼래. 이 카페 갈까? 아니다 여기 갈래. 아구찜 먹을까? 아니다 치킨 먹자. 운동 가자, 아니다 피곤해. 오빠를 가장 귀찮게 하는 건 아마도 “이게 예뻐 저게 예뻐”일 것이다. 내가 이미 맘 속으로 정해놓은 대답이 아니라면, 꼼꼼하게 이유까지 따진다. “왜? 합리적인(?) 이유를 말해봐.” 그 단계까지 통과하고서야 드디어 결재 승인이 난다. 며칠 전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왼쪽 머리, 오른쪽 머리를 번갈아 앞으로 꺼내며 물었다. “오빠, 나 뭐가 나아?” SNL 예능에나 나올법한 전형적인 질문에 오빠가 웃음이 터졌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도 아닌 평범한 직업의 남자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또 오빠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내가 무형의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할 때일 것이다. 무엇이든 고민할 때면 같은 질문을 여러 번씩 한다. 하루 그러는 것도 아니고, 하나에 꽂히면 며칠을 그런다. 오빠를 소크라테스 대하듯 대화와 질문을 통해 내 안의 답을 찾는다. 이해가 안 되면 이해가 될 때까지. 평소 ‘강 같은 평화’로 불리며 주변 사람 중에 가장 깊은 인내심을 가진 그도, 어쩔 땐 내 질문 폭격에 급 졸려한다. 기 빨린다..라는 거지. 그래도 오빠는 늘 현명하고 똑똑하단 전제 하에 하는 질문이니, 오빠는 고맙게 여겨야 한다. 남편을 이렇게 100% 신뢰하는 게 흔한 줄 아나? 고마운 줄 알거라!

블로그에도 여러 번 썼지만 나는 집안일에도 젬병이다. 집안일 분담을 면밀하게 따지자면 나는 주로 응원 담당이다. 설거지하는 오빠 옆에서 노래 부르기, 요리하는 오빠 옆에서 춤추기가 우리의 일상이다. 공수표도 잘 날린다. “오늘은 내가 설거지해줄게!” 타율이 낮다는 게 유일하고도 큰 흠이지만. 하지만 나도 노력 중에 있으니 정상 참작이 가능하며, 우리 엄마가 날 귀하게 키운 탓이니 감형 사유 또한 충분하다. 내게 책임을 물으려거든 장모님에게 찾아가야 할 것이다. 옷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다른 덴 딱히 돈을 안 쓰는 것 같은데 옷만큼은 정말 좋아한다. 작은 집이어도 방 하나는 무조건 내게 넘겨야 하니 말이다.

화도 많아서 눈썹이 산 모양을 그릴 때면 오빠는 헉-소리를 낸다. 약간 거친 숨소리에 낮은 어조로 “야”라고 하는 한마디가 전쟁의 시발점인데, 아마 오빠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자 단어일 거다. 목청은 또 어찌나 큰지 이게 (응원 담당으로서) 노래 부를 땐 좋은데 화낼 때도 샤우팅 단계로 넘어가면 내 귀가 아플 정도다.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결혼을 한 후론 화내는 일이 꽤 줄었다. 알고 보니 나는 천상 순둥이였던 거지.

어이도 얼마나 없는지 저녁 먹고 졸리다며 드러누워 놓곤 왜 나를 안 깨웠냐며 칭얼거린다. 거울을 보다가 앞머리가 맘에 안 들어서 잘라놓곤 왜 말리지 않았느냐 찡찡댄다. 오빠가 월드콘을 먹으면 자기도 먹고 싶어서 따라먹어놓곤 왜 나까지 먹고 싶게 만드냐며 따진다. 진짜 내가 생각해도 쉽지 않다. 갑자기 미안해지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부터 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왜 내게 청혼했을까. 내가 오빠였으면 정말정말정말정말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내가 착하고(?) 귀엽고(?) 예쁘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재밌고(?) 신선하고(?) 매력있고(?) 독특하긴 하지만 평생 같이 살라면 힘들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런 나를 거둬 준 오빠에게 감사히 여겨야 할 수도 있다. 부족한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는 오빠가 고맙다. 하지만 나는 나로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것도 사실이다. 막춤도 춤이고, 오렌지가 1% 들어가도 오렌지주스니까, 얼렁뚱땅인 나도 멋진 부인이란 말씀. 결론, 우리는 천생연분이니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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