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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Jun 13. 2024

색깔

회색도시 알록달록 모난 돌




오빠와 이 이야기를 나눈 지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늘상 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며,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색깔이 너무 강하다' 뭐 색깔이 강하고 흐리고의 기준도 사람 나름이지만, 내 기준엔 내 색이 너무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색이 강해서 안 좋은 점은 호불호가 심히 갈린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거 하나만큼은 정확했다. 이 사람이 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의도를 아무리 숨긴다 한들, 상대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피부로부터 느꼈다. (당연히 내게 관심 없는 사람이 제일 많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유난히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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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스타는 빠와 까 모두를 미치게 만든다는데, 나한테 스타성이 있나...는 개소리고, 아무튼 여러 인간관계를 통해 기쁘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피곤한 날들도 적잖이 있었다. 누군 안 그렇겠냐만은 다른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인간 군상의 다양성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무튼 내가 좀 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자 갑자기 약간의 두려움이 일었다. 회색 도시에 알록달록 모난 돌 같았다. 이래도 되나? 이렇게 나를 드러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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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빠는 거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나는 집안일을 한다며 이방 저 방 돌아다니던 어느 날. 심각해지는 게 싫어서 진지하지는 않은 투로 오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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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나는 왜 이렇게 색깔이 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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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약간 진지해짐 ㅋㅋㅋㅋㅋㅋㅋㅋ (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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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개성 있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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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있는 건 좋아. 근데, 그것 때문에 어떤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도 하잖아.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뿐만 아니라 선생님, 교수님한테까지도 호불호가 갈렸어. 심지어 직장 상사들한테도 그래. 어떤 이는 내가 직장을 떠나도 몇 년이 지나도록 연락하고, 어떤 이랑은 싸우기도 하고. 참 어떤 일을 하면서는 내 팬이 됐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어! 그래서 다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안 그런 친구들도 많더라? 누구의 열렬한 응원도 미움도 없이 평온하게 사는 사람들 있잖아. 그런데 가끔 나는 아무 의도도 없었는데 내 말이나 행동을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슬프고 속상해. 내가 말을 묘하게 하나? 1년에 한 명씩은 꼭 생기는 것 같아, 통계적으로다가(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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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면(색이 강하지 않은) 편안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잇다는 그게 매력인 걸. 잇다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무색무취라서 가지는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있을 거야. 뭐가 맞다 틀리다랄 건 없지만, 잇다가 바라는 모습이 그런 느낌은 아닐 것 같아. 잇다만 해도, 그런 친구랑 잘 지낼 순 있어도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잖아.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잇다만의 개성을 누르고 싶니? 그리고 어차피.. 잇다는 웬만하면 다른 사람한테 상처 주지도 않아. 소통 방식을 다듬는 것과 개성은 별개의 문제야. 혹시 잇다가 '내가 말을 이상하게 하나?'라는 고민이 든다면, 그런 부분은 개선하면 돼. 내가 보기에 잇다는 충분히 잘 의사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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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 나도 개성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매력이 있는 거잖아. 사실-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아,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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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ㅎㅎ 그리고 잇다야, 잇다가 가려는 길(작가라든가)은 뾰족해야만 해. 아주 예리한 감각이 필요한 일이야. 마케팅 책에 보면 그런 말이 있어. '모두의 취향을 고려한 물건은 아무도 사지 않는다'였나, 모든 이의 취향을 고려하다간 누구의 취향에도 맞출 수 없게 돼. 예를 들어 잇다가 쓰는 글이 세상 사람들의 니즈에 맞춘다고 생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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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겠다. 그건 교과서야.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지만 흥미가 떨어지는 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 뭐 어떤 사람들은 그런 교과서가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글은 쓰고 싶지 않아. 욕을 먹더라도, 누군간 불편해하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은 펼쳐보고 싶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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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인간관계도 비슷해. ㅇㅇ이나 ㅇㅇ이나 ㅇㅇ언니가 잇다를 계속 찾고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거야. 색이 있음으로 사랑받고, 색이 있음으로 미움받을 수도 있다는 거지. 마냥 사랑받기만 하는 색은 없어. 잇다가 정말로 원하는 건 누가 잇다를 싫어하든말든 잇다만의 개성을 지키고 싶은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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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맞아. 그럼 앞으로도 내 색을 잘 가꾸어야겠다!! 뾰족한 글도(?) 많이 많이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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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안방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색깔. 개성. 매력. 교과서. 평범함. 호불호. 미움. 뾰족한 글. 사랑. 팬과 안티. 줄여서 팬티(!). 응원. 인간관계. 친구.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벽지를 타고 천장에 올랐다가 벽 너머로 사라졌다가 어떤 글자는 내게로 돌아왔다. 각자 매력이 있겠지만 내가 추구하는 모습은 아무래도 나만의 색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 사람이 항상 단편적으로 색이 강하거나 무색무취이거나 이 둘로 나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언제고 여러 모습을 꺼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게 뭐든, 뭐가 됐든 모두 나였다. 어떤 나든 사랑해줘야지. 어떤 나든 소중히 여겨줘야지. 흰 천장에 동그란 얼굴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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