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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Jul 04. 2024

내가 네게 배운 것

존중이 제일 어렵다는데




생각해 보건대, 나는 스펀지 같은 면이 있는 것 같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타인의 영향을 잘 받고 또 상대방의 특징을 잘 배운다. 이는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존경스러운 오빠를 닮아간다는 측면에선 아주 큰 장점이다. 오빠를 만나 배운 것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지금, 여기를 살게 된 건 오빠의 덕분이다. 이따금 후회되는 과거나 걱정스러운 미래로 향하던 내가, 오빠를 만나고 현재에 집중하게 됐다. 오빠랑 있으면 과거, 현재, 미래가 아닌 그저 오늘이 된다. 오늘은 열심히 살았고, 오늘을 열심히 살고, 오늘도 열심히 살 것이다. 성실한 하루, 보듬는 하루를 보내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 오빠와 내가 하는 대화를 한 문장씩 센다면 하루에도 5,000마디는(수포자 주의) 거뜬히 넘을 것이다. 수많은 대화가 오감에도 오빠가 내게 먼저 상처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즐거움을 기반으로 소통이 된다는 감각을 주고받는다. 오빠를 만나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때때로 올라오는 찌질한 마음을 도저히 인정하거나 마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턱끝에 탁 걸린 그 감정들을 보여주면 오빠는 늘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한다. 유치한 감정까지 품는 오빠를 보면 나라면 못할 텐데 참 대단하다 싶다.

나에게 집중하기와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그들과 어떤 에너지를 주고받을 것인가. 이 두 가지 화두는 요즘 내 최대 관심사다.

오빠를 만나 마음 챙김에 대해 알고,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간헐적으로나마 실천했다. 이를 통해 내 깊은 무의식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남을 의식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남의 표정이 아닌 내 마음의 표정을 바라보기. 남의 생각을 추측하기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경청하기. 누굴 만나고 온들, 바깥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든, 언제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오빠를 통해 배웠다.

또 뇌과학 채널에서 말하길, 어릴 때 상처가 많은 사람, 기질이 엉망인 사람도 어른이 되어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좋은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한다. 20대 중반까지를 어린 시절이라고 친다면, 나름대로 상처와 함께 자랐다고도 볼 수 있지만 요즘엔 그런 생각마저 별로 하지 않는다. 누구나 힘든 부분이 있고 어려운 시절이 있다. 눈물을 하도 흘렸어서 건조해진 건지 시간의 약으로 아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힘들었던 때가 떠올라도 감각이 꽤 무뎌진 걸 느낀다. 내 상처가 제일 커, 내가 제일 힘들어라며 우울의 어스름에만 빠져있는 건 어찌 보면 자기 연민에 취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힘든 일이 있으면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진 다음 정신을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오빠를 보며 깨달았다. 그래서 현재는 '그땐 그랬지, 이젠 괜찮아'라며 어깨를 으쓱이는 정도가 됐다. 이렇게 천천히 어른이 되나 보다.

​​

오빠의 가장 대단한 점은, 앞서 언급했듯 인생을 더 재밌고 알차게 사는 방법을 모두 알지만 딱히 내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고, 질문하면 방향과 구체적인 방안을 알려주는 식이다. 그리고 충만한 일상으로 본인이 가진 삶의 태도를 직접 증명한다. 오빠를 만나고 자존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는 것도 포함된다. 나라는 존재(=인간)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타인(=또 다른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것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이렇듯 튼튼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 옆사람을 어떻게 존중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오빠를 만나는 n년동안, 내가 자기 효능감과 자신감, 자기애는 가득하지만 자기 확신과 자존감은 노력이 필요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인식한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노력으로 노력으로 내가 선 땅을 단단히 다지고 있다. 그 덕에 곧잘 불안하고 꽤 천방지축이던 성정이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다듬어졌다.

어찌 보면 남들보다 느린 걸 수도 있는데. 이런 내가 안 답답한가? 가끔 묻는다. 오빠는 내가 이런 구석이 있는 것도 괜찮았느냐고. 오빠는 답한다.

"아니, 나는 잇다가 조금씩 성장하는 걸 보면 되게 신기하고 멋지다고 생각해. 그리고 답답하지 않아. 잇다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점점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걸- 난 잇다를 믿으니까!"

활기차고 발랄한 답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어떤 사랑은 신뢰로 답하고, 어떤 사랑은 존경으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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